B컷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9
최혁곤 지음 / 황금가지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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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임권택 감독으로 위시되었던 한국영화는 2000년대에 들어서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JSA' 등을 기점으로 영화의 만듦새가 차원을 달리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왔다. 그것은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자연스런 세계화의 흐름과 함께, 헐리우드의 월등한 영화들을 보면서 높을대로 높아진 국내관객들의 눈높이에 부응하기위한 영화계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국내 추리소설계의 경우엔 7~80년대 김성종씨를 필두로 상당한 활약을 펼치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 이후론 정말 참담하다고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마이클 크라이튼'이나 '토머스 해리스' 같은 걸출한 해외작가들의 작품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독자들의 안목은 비약적으로 높아졌지만, 그것을 충촉시켜줄 만큼의 실력을 가진 국내작가가 없다보니 이 분야의 시장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어준 꼴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사장되다시피 했던 추리문학계에 드디어 새로운 바람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 최혁곤이란 생소한 작가의 작품을 읽고나니, 한줄기 희망의 빛이 보이는 듯하다. 솔직히 유치한 수준에 불과했던 이전세대 작가들의 글과는 확연히 틀리다. 그동안 국내 추리소설가들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라면 바로 기술적인 측면에서 문학성의 결여였다. 순수문학쪽보다는 오히려 무협지쪽에 가까운 질낮은 문장력은 이 장르 자체의 수준을 떨어뜨리는 주범이었다.

스릴러라는 장르의 특성상 저급하고 거친 표현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이 작가의 글에는 순수문학에 필적하는 문장력의 기본기가 분명히 살아있다. 물론 작품속 여러 상황들이 확실한 고증이나 자료조사에 의거했다기보다, 오히려 여러 영화나 다른 작가의 소설에서 영감을 얻은 듯 다소 사실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

예를들어 킬러가 처음으로 살인훈련 겸 복수하는 씬에서, 위기의 순간에 스승이 단검을 던져 적을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던진 단검이 이마에 박히고, 그걸 뽑자 피가 분수처럼 솓구쳤다고 나온다. 시체를 해부할 때조차 전기톱으로 절개해야만 하는 딱딱한 두개골에 과연 손으로 던진 단검이 박힐 수가 있을까? 게다가 두개골 안에는 뇌가 들어있을터인데 과연 피가 뿜어져나올까? (작가가 직접 실험해봤다면 할 말은 없다) 보는 관점에 따라선 사소한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때론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디테일적인 측면이다.

하지만 몇가지 아쉬운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만큼의 완성도로 뽑아낸 작가의 역량은 충분히 인정할 만하다. 작가의 소개란을 보니 나와 같은 나이다. 나역시 한 때 추리작가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던 만큼, 묘한 동질감을 느끼며 앞으로의 행보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사족> 최근 영화계의 소재고갈과 맞물려 추리스릴러계의 인재들이 절실히 요구되고있다. 비싼 판권료를 지불해가며 철지난 일본의 추리물들을 뒤늦게 영화화하는 모습 등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길이 없었는데, 좀더 많은 실력자들이 자극받아 이 분야의 개척에 도전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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