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 The Good, the Bad, and the Weird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이 영화의 제목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씁쓸한 느낌은 지금도 여전하다. 'Once Upon A Time In The West'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서부극이 바로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이기 때문이다. 물론 '세르지오 레오네'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이고...

제목을 왜 저렇게 달았지? 설마 무단도용은 아니겠지? 하는 의문점들이 꼬리를 물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 신선한 제목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1960년대에 발표되었던 영화를 그대로 흉내낸 것이란걸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역시나 씁쓸하다.

제목뿐만 아니라 스토리까지 흉내냈는가 했더니, 다행(?)히도 이 영화는 아무 내용이 없었다. 마지막 삼자대결을 비롯한 몇몇 장면들이 위에 언급한 영화들에서 따온 것이란 건 보자마자 알겠는데, 단지 그뿐이다. 고전영화를 새롭게 재해석한 것도 아니고, 레오네 감독에 대한 특별한 오마쥬도 아니고, 이건 뭐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삼자대결을 아주 새롭고 참신한 발상이라 평하기도 하던데, 그저 쓴웃음만 나온다.)

이 영화는 오로지 멋진 화면을 위해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를 억지로 만들어내었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다. 바로 김지운 감독만의 스타일이다. 이것은 전작 '달콤한 인생'을 보면서 확신하게 된 점인데,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거꾸로 써나가는 타입이다. 영화관계자가 아니라서 잘은 모르지만, 보통의 경우는 시나리오가 먼저 존재하고, 그것을 토대로 콘티를 짜고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 상식적인 순서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의 경우엔 화면에 표현하고 싶은 멋진 시퀸스를 먼저 구상한다. 예를 들자면 이병헌이 기차 세우는 장면, 칼던져서 벌레 잡는 장면, 송강호의 잠수헬멧, 정우성의 샷건돌리기 같은거... 이런 단편적인 장면들을 머리에 먼저 그린 다음, 그러한 장면들을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기 위해 그제서야 시나리오를 만들어넣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그렇기때문에 그의 영화에선 시나리오의 탄탄함이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 명색이 보물지도를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인데 극적 긴장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이러한 메카니즘에서 쌓아올린 당연한 결과이다.

이병헌은 제대로 된 나쁜놈을 만들어 보겠다고 의욕이 넘쳤는지 싸이코같은 인상만 쓰고 있는데, 오버스러워서 보기가 좀 민망하다. '번지점프를 하다' 이후로 자꾸 퇴보하는 느낌이다. 정우성은 어찌나 한결같은지 정말 할 말이 없다. 송강호와 같이 연기하면서 배운 것도 없었나? 그나마 송강호가 아니었으면 영화 말아먹을뻔 했을 것 같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들을, 아무런 의미도 없이 그저 천연덕스럽게 이용만 해먹었다는 점에서 살짝 기분이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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