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선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라는 작가는 전작 '늑대의 제국'을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 톱니바퀴가 맞물려가는 듯한 정교한 플롯을 노련하게 구사하는 그의 필력에 반해 곧바로 그 이전작 '돌의 집회'와 또한 영화를 통해 이미 보았던 '크림슨 리버'까지 모두 구매했던 전력이 있다. 이렇게 뛰어난 작가가 2004년에 발표했다는 본작이 이제야 번역판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의아하다.

그만큼 이 작가에 대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반갑게 구매했던 점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근래들어 '마이클 크라이튼', '존 그리샴'과 같은 서구의 초대형 작가들이 슬럼프 또는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에 실망하다가, '토머스 해리스'의 '한니발 라이징'에 이르러서는 더이상 기대할 곳이 없어진 듯한 느낌마저 든 게 사실이다. 최근들어 일본 추리물들이 그 대안으로 등장해 때아닌 붐을 일으키고 있는 것도 어쩌면 이와 무관하지는 않을 듯 하다.

요즘은 일이 너무 바빠 책읽기가 힘이 든다. 저녁늦게 퇴근하면 피곤해서 잠을 청하기가 바쁘기 때문이다. 이 책 역시 몇 페이지를 넘기다 떨어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비몽사몽 헤메다가 결국 잠에 곯아떨어지기를 며칠간 반복하고 말았다. 영화도 그렇지만 책을 자꾸 중간에 끊어 읽게 되는 것은 정말이지 나에게 고문과도 같은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준비해놓은 '흐름'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니 말이다.

본의아니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대여섯새 만에 힘겹게 2권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오늘 새벽 4시경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마지막 장을 덮었다. 정말 무시무시하고 짜릿한 밤이었다. 천근만근 무거웠던 나의 눈꺼풀도 중반이후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그의 경이로운 필력앞에 꼼짝없이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이렇게 진정한 '몰입'의 경지를 느껴본게 얼마만인지...

요즘 스타작가들은 집필과 함께 영화화를 염두에 둔 듯한 작품을 내놓는 경향이 있는듯하다. 그와 함께 작품성의 밀도가 현격하게 떨어지는 부작용 또한 많아진 듯도 하고... 물론 그 정점은 한니발 라이징이라고 생각한다. 그랑제 역시 이미 대형 스타작가의 범주에 드는 것으로 알고있다. 영화판권 또한 그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일 것이고... 문제는 순수한 소설로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냐 하는 점이 독자에겐 작가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일 것이다.

본작 '검은선'은 적어도 내가 읽어본 그랑제의 소설 중에서는 최고다. 즉 그는 갈수록 더 좋은 작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한 문장도 허투루 쓰여진 것이 없을 정도로 치밀한 계획아래 독자를 공략하고 있다. 소재와 발상 자체도 기발하지만, 독자를 정말 무호흡 속으로 빠져들게 할 듯한 서스펜스를 엮어내는 솜씨는 가히 예술의 경지다. 난 르베르디가 탈출한 순간부터 정말 호흡곤란을 일으킬 정도로 무서움에 떨며 페이지를 넘겼다. 

이미 발간된 그의 다음작품이 하루빨리 번역되기를 간절히 기다린다.

<사족> 이세욱 씨의 번역은 정말 탁월해서 마치 우리나라 소설을 읽는 듯 하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란 말이 있다면 그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