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났음의 불편함
에밀 시오랑 지음, 김정란 옮김 / 현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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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밀 시오랑은 1911년에 태어나서 1995년에 사망한 루마니아 출신의 철학자다. 대충 살펴보니 20대에는 베를린에서 칸트, 헤겔, 니체, 쇼펜하우어 등의 독일 철학을 탐구했고 30대부터는 파리에 살면서 프랑스어로 쓴 책들을 발표하며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으로 나온다. 



이 작가의 글은 대부분 아포리즘에 기반을 둔 스타일로 쓰여지는 특징이 있는데 아포리즘(Aphorism)은 격언, 잠언, 경구 등으로 해석되는 짧은 글귀를 뜻한다.



본작 '태어났음의 불편함'은 1973년에 발표되었고 역시나 아포리즘으로 채워진 책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막연하고 추상적인 글귀는 취향이 아니라서 심지어 시도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본의 아니게 이런 스타일의 글을 접하게 되니 첫대면은 살짝 당황스러웠다. 아주 오래전 우리나라에 칼릴 지브란의 책들이 인기를 끌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 책을 처음 펼치면서 문득 지브란이나 혹은 크리슈나무르티 같은 작가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태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미 비극이라는 뉘앙스로 시작하는 이 책은 가면 갈수록 작가의 특이한 사고방식에 도무지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론 그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어떤 통찰에 압도당하는 듯한 특별한 느낌도 있었다.


일단 이 작가는 독일 철학은 물론 바흐의 음악과 도스토옙스키와 셰익스피어를 비롯한 문학, 그리고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등의 각종 종교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축적된 자신의 가치관이나 일상적 상념들을 다소 현란한 스킬의 함축적인 언어로 담아내기 때문에, 한번은 고사하고 두번 세번 읽어도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지만 신중하고도 오랜 담금질 끝에 뽑아낸 언어 조합의 결과물이란 점 또한 충분히 느껴진다.



책 초반에 나오는 글귀 중 하나로 언뜻 보면 도대체 이게 무슨 현학적인 말장난인가 싶기도 한데 천천히 반복해서 읽다보면 그 '진실'이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만큼 이 작가는 태어났다는 것, 존재한다는 것, 살아있음 그 자체를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좋고, 심지어 사산아를 부러워하기까지 하는 작가의 성향을 마주하다보면 그 극단적인 염세주의적 또는 회의주의적 또는 허무주의적 사고방식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솔직히 이 정도면 작가가 일찌감치 자살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신기한데 자살은 너무 늦은 선택이기 때문에 소용없는 짓이라는 알쏭달쏭한 견해를 보여주기도 한다.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고 하며 이 책에서도 잠과 밤에 대한 언급이 많은 편이다. 깨어있을 때 해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으므로 차라리 잠들어 있는게 훨씬 낫다고 여기는 작가에게 밤에 잠이 오지 않는 증상 또한 정말 치명적인 고통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 살수록 살아있다는 것이 쓸데없는 일처럼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뭔가를 하려고 애쓰는 것 보다 낫다... 나는 모든 것이 덧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 탁월한 능력이 있고, 그래서 나의 장점은 쓸모없는 인간이 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잃었다... 만일 내게 아이들이 있다면 당장 목 졸라 죽일 것이다... 태어남이 실패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될 때, 삶은 견딜 만해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는 나를 견딘다...



아뭏든 이 시오랑의 염세주의는 거의 인간혐오 수준으로 너무나 극단적이어서 정말이지 쇼펜하우어도 울고 갈 듯 하다. 


그건 그렇다고 쳐도 이 책에서 얼핏얼핏 감지되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여기에서 말하는 진보가 정치를 넘어 훨씬 광범위한 의미를 포함했을 것이라 애써 부정해봐도 히틀러에 대해 다소 후한 평가를 내리는 견해를 보노라면 씁쓸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이문열 작가가 꼴보기 싫은 극우 인사라 해도 그의 찬란했던 문학적 성취까지 폄하하는 성격은 아니기 때문에 비록 동의할 순 없어도 그냥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 성향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보다는 오히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 언급된 부분 등에 더 눈길이 사로잡혔는데, 이렇게 극단적이고 까다로운 시오랑을 매료시킨 포인트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해서 다음에 꼭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말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보는 진부한 명제가 아닐까 싶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진 것이 많고 매일매일이 행복해서 영원히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삶이 고달파서 죽지 못해 살거나 천국같은 다음 생을 기약하며 매일 기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처럼...이라는 나훈아의 노래가사도 있듯이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조금씩 비워내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사실 나도 어지간히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마치 비관주의의 끝판왕 같은 이 시오랑 작가 덕분에 거울치료를 받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삶과 죽음에 대한 보다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접근으로 시야가 넓어지면서 성공과 실패, 행복과 불행 등 잘 살았냐 못 살았냐 따위를 구분짓는 온갖 기준들은 어차피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허상일 뿐이라는 위안과 함께 뭔가 치유를 받는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작가의 생각과는 대척점일 수 있는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란 말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았는데, 편견없이 마음을 비우고 읽다보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철학적 명제에 대해 각자 여러 방향으로 활발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제공하는 책이란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작가가 특히 프랑스어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정제된 언어로 글을 쓰는 스타일로 알려져있는 만큼 이 책의 번역도 그 뉘앙스가 온전히 전달되는 명징한 문장으로 다듬어져 가독성이 높고 이해를 돕는 꼼꼼한 주석 등 대단히 훌륭한 완성도로 처리된 느낌이다.


나는 그가 생전에 한번이라도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생겨서 구글 검색으로 웃는 모습이라도 한번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 정도가 가장 밝은 표정이더라...



아무리 염세주의를 연구하고 그런 사상에 동화되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학문적인 영역일 뿐 시오랑의 실제 삶은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희로애락을 골고루 겪으며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본 경험도 많았으리라 믿고 싶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jR7mvl9IPKg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80605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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