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메이드
프리다 맥파든 지음, 김은영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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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다 맥파든은 출판사의 소개에 의하면 뇌손상 전문의 출신이라고 한다. 구글을 검색해도 프로필이 더이상 자세히 나오지는 않고 심지어 나이도 알 수가 없는데 홈페이지 사진을 보면 생각보다 젊어보이긴 한다. 많아봐야 한 40대 초중반? 어쨌든 뇌손상 전문의라는 프로필에서 벌써 이 작가의 스타일은 대충 짐작이 된다. 주로 정신분열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이상심리자를 다룰 것 같은 느낌이 딱 오는 것이다. 홈페이지 대문에도 Psychological Thriller 즉, 심리 스릴러 작가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건 그다지 특별할 건 없다. 2010년대 초반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가 엄청난 성공을 거둔 이후 제2의 길리언 플린을 꿈꾸는 여류작가들이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영미권에서는 이런 류의 소설이 거의 대세로 자리잡은 분위기인데다가 우리나라에도 무슨 아마존 1위 또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1위 따위의 홍보문구를 앞세운 생소한 여류작가들의 작품이 그동안 심심찮게 소개되면서 나도 그중에 상당수를 광고만 믿고 사서 읽기도 했으니까...


나의 경험상 이런 류의 소설은 대부분 몇가지 비슷한 특징들을 보였던 것 같다. 등장인물들이 주로 부부, 가족, 친구 또는 이웃으로 한정된 소수인원이고, 사건이 벌어지는 무대도 그들이 사는 집이나 근처 술집, 식당 등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FBI나 경찰 같은 공권력의 개입도 거의 없이 보통은 그냥 등장인물들끼리 사건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마무리짓는 패턴이다.


그래서 이런 작품들은 스케일도 작고 전문성까지 떨어지는 약점 때문에 특출난 아이디어나 매력포인트가 없는 한 그저그렇다는 인상을 받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별다른 사회경험이나 전문지식도 없이 전업주부로 있다가 특정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떤 영감을 얻어서 살짝 변형시킨 아이디어만 가지고 마치 나도 한번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에 글을 쓴 것 같은... 그런 의심이 드는 함량미달의 작품도 적지 않았다.


이 작품 역시 '하우스 메이드'라는 제목에서부터 이미 짐작이 되는 스케일과 분위기 등, 여성작가의 심리 스릴러에 흔히 나타나는 여러 지표들이 너무 뻔하게 보여서 사실 아마존의 인기를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전혀 살 생각이 없었던 책이었다.


요즘 영화값이 예전에 비해 너무 올라서 말들이 많은데 이런 장르소설류의 책값도 그동안 알게모르게 야금야금 인상을 거듭해왔다. 이 책만 하더라도 정가 16,500원에 10% 할인해도 15,000원돈이다. 나중에 중고로 반값 정도로 떨어지면 모를까 한번 읽고 말 장르소설을 새책으로 이 돈 주고 산다는 건 너무 아깝다. (참고로 중고책은 출판심의위원회 규정때문에 출간된지 6개월이 넘어야 풀린다.)


어쨌든 부담스러운 책값 때문에 제발 재미있어라... 재미있어라...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초반 몇페이지 딱 읽자마자 이번에 제대로 골랐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일단 이 작가는 필력이 상당히 좋고 인상적이다. 비록 오랜 세월동안 글을 써온 베테랑 작가들에게서 보여지는 문장의 고급스런 테크닉 같은 것은 부족하지만 요즘 세대들에게 확실하게 어필이 되는 개성있고 스피디한 스타일이 살아있어서 자신의 약점을 커버함과 동시에 엄청난 가독성을 자랑한다.


특히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이 작가는 아주 특출난 재능을 보이는 것 같다. 여기에 쓰여진 대사들은 별다른 수정없이 그대로 영화 시나리오로 바꾼다해도 전혀 위화감을 못 느낄 정도로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정말 깔끔하게 잘 짜여져 있다.


'당신에게 고백할 게 있어요'라는 대사에 '네?'라고 되물으면서 고백이라고?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독백이 바로 이어지는 식의... 말과 생각이 뒤섞이면서 간결하고 감각적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연출력이 일품이다.



모든 시퀀스가 딱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한 선에서 끊고 연결해주는 리듬감과 호흡도 좋고, 센스있는 유머감각과 개성있는 캐릭터 구축력도 수준급이다. 2023년 현재 최신 장르소설의 트렌드는 과연 어떤 스타일인가 하는 질문에 이 작품이 그 정점을 보여주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번역도 최근 장르소설의 경우 워낙 수준이하가 많아서 거의 운에 맡겨야 될 정도인데, 이 작품은 고맙게도 흠잡을 데 없이 매끄럽게 처리되어 있어서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적절한 어투설정과 표현법으로 원작의 맛깔스러운 대사를 굉장히 잘 살려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 책의 중반부가 넘어가면서 '히든 페이스'라는 스페인 영화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현재 넷플릭스에도 올라와 있고 충격적인 반전 영화로 제법 많이 알려져있는 영화다.) 작가가 정말로 그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중심이 되는 설정이 유사하다는 점에서는 약간 김이 새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었다. 후반부에 '그건 옳지 않아요'라는 대사가 몇번 나오는데 나는 혹시 그 영화의 결말에 빗대어 쓴 대사가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부에서 전형적인 헐리우드 스타일로 두루뭉술하게 너무 클리셰적으로 대충 덮고 넘어가는 점도 역시나 좀 아쉬운 부분이다.


이렇게 후반부로 갈수록 점수를 깍아먹는 지점들이 몇군데 존재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군더더기없고 스피디한 전개와 실감나고 흡인력있는 대사들이 그러한 단점들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아마존 No.1 베스트셀링 작가라는 호칭에 걸맞는 정도의 읽는 재미는 확실히 보장해준다.


그동안 숱하게 접해오던 이런 류의 심리 스릴러 작가들 중에 이 프리다 맥파든은 자신의 색깔과 존재감을 확실하게 어필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신작이 나오면 또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즘 15,000원 주고 그저그런 영화 한편 보느니 차라리 같은 돈 주고 이 책 사서 읽는게 훨씬 즐거운 시간이 되리라 장담한다.


내 생각에 이 작가는 길리언 플린처럼 차후에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도 활약을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대사를 워낙 맛깔나게 잘 쓰니까... 이 작품 역시 조만간 영화화될 예정이라고 한다. 하긴 저예산 영화로 만들기 딱 좋은데 안 만들 이유가 없다.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VKKGpNF3BI

[블로그] https://blog.naver.com/joonjoo2/223176296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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