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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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어보는 해리 홀레 시리즈인데 이번에 나온 이 책이 어느덧 시리즈 12번째 작품이었다. 1997년에 첫작품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평균 2년에 1편 꼴로 꾸준히 발표된 셈인데, 세어보니까 나는 이 책까지 포함하면 그 중에 8편을 읽었더라... 노진선씨가 번역한 작품들은 다 사서 읽었지만 중간에 번역가가 바뀐 이후로는 읽는 재미가 급격히 떨어지는 바람에 신작이 나와도 영 땡기지가 않아서 안 샀더랬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은 제목이 주는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호기심에 구매를 해봤다. 우리는 또 이런 '칼' 같은... 짧고 강하고 뭔가 느낌있는 이런 단어에 약하지 않나... 출간 기념으로 천원만 추가하면 작가의 사인이 들어간 버터나이프를 준다고 해서 또 얼른 신청해서 받았다. 천원짜리 치고는 괜찮은 것 같다. 덕분에 최근 마트에서 장볼 때 일부러 버터도 한 덩어리 사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시리즈 9탄에서 11탄에 해당하는 이 작품의 전작들을 안 읽었기 때문에 그동안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기왕이면 이 시리즈의 세계관을 잘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어도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으로서 완성도와 재미를 충분히 보장하는지 또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하는 점에도 괜한 오지랖을 부려가면서 읽어보았다.


결론적으로는 전작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어도 한 편의 추리 스릴러로서 이 작품을 즐기는데 있어 그다지 큰 지장은 없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작가가 이미 그런 부분 정도는 당연히 고려해가면서 쓰는 레벨이라서...


하지만 이 노련한 작가는 기존의 시리즈를 잘 알고 좋아하는 팬들을 위해서도 특별하고 차별된 만족감을 주는 설정들을 확실하게 마련해 놓았다. 주인공 해리에게 라켈이라는 여성이 어떤 존재인지 잘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 이번 작품을 받아들이는 느낌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일 수 밖에 없다. 전작들을 읽어왔던 독자라면 당연히 해리 못지않은 충격과 상실감에 함께 아파하면서 디테일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 '레드브레스트'라는 작품에서 요 네스뵈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어떤 방식으로 묘사하는지 보면서 정말 탄복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도 라켈의 죽음을 수사하는 과정을 꿈이라 생각하면서 꿈에서 깨지 않으려 애쓰는 해리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명불허전의 필력과 함께 캐릭터를 구축하는 일관성까지도 놓치지않는 치밀함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요 네스뵈의 이 해리 홀레 시리즈는 '후더닛'과 '하우더닛', 그리고 '와이더닛'이 골고루 잘 섞여있고, 의외의 범인이라는 반전이 있으면서도 범인은 무조건 초중반부터 등장해서 독자들이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정통 추리소설의 규칙 또한 철저히 따르고 있는 등, 기본기에 충실하다는 점이 굉장히 큰 매력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주인공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피해자라는 것 자체가 허탈함마저 느껴질 정도의 워낙 충격적인 설정이어서 이 정도 비중의 피해자라면 웬만한 범인으로는 그 상실감을 채울 수가 없다는게 문제였다.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범인 후보라고 해봐야 불과 서너명 뿐인데다가 그 중에 누가 범인으로 밝혀지든지 간에 아무래도 좀 미흡하고 찜찜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작가가 도대체 어떻게 마무리를 할 생각인지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역시 이 작가는 소잡는데 소잡는 칼을 쓰는 무서운 저력을 보여준다. 피해자의 중요도에 걸맞는 범인을 만들기 위한 작가의 고뇌가 느껴질 정도로 어떻게보면 거의 막장 수준으로 억지스러운 설정의 반전이기도 해서 이 시리즈를 사랑해온 팬들이라면 충격이 상당히 클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긴 세월을 이어져 온 시리즈의 마지막을 고하는 듯 하기도 하고 어쩌면 세대교체와 함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듯 하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작품의 희생자와 범인, 그리고 주인공의 행보를 보면서 왠지 이것으로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듯한 느낌이 자꾸만 들었다. 마치 팬들을 위한 가슴 먹먹한 선물같은 작품이라고나 할까...


특히 '성민'이라는 한국계 형사의 등장은 사실 좀 뜬금없고 의외인데 작가가 한국 팬들에게 남다른 감사의 마음을 담은 나름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처럼 이 작가도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걸까... 어쨌든 만약 이 시리즈가 계속된다면 점점 더 비중있게 나올 것 같기는 하다.


번역은 우려했던 것에 비해서는 무난했던 것 같다. 하지만 딱히 좋다는 느낌도 없어서 번역가가 바뀐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만이다.


참고로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의 순위를 매겨본다면 '레드브레스트'와 '레오파드'가 우열을 가리기 힘든 1,2등이다. 3등으로는 '스노우맨'... 그 다음으로 이번 작품 '칼'을 넣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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