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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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추리 미스터리 분야에서 꾸준하게 상위권을 유지하고있어서 계속 눈에 띄었고, 한국소설이 이 정도라면 분명 뭔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구매를 했는데, 막상 책을 받아보니 2013년에 처음 나왔던 꽤 오래된 작품이었다. 나온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 왜 갑자기 지금 역주행 하고있는걸까 하고 궁금해서 살펴보니 이 작품이 올해 CWA라는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대거상을 수상했다는 문구가 있어 의문이 풀려버렸다.



CWA는 The Crime Writers' Association 이라는 글자그대로 추리작가협회였다. 홈페이지를 보면 1953년에 설립되었고 전세계의 범죄스릴러 장르문학과 작가들을 홍보하고 지원하기위한 목적으로 운영된다고 소개되어 있다. 과연 어느 정도의 권위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에서 주는 상 이름이 단검을 뜻하는 대거(Dagger)상이고, 올해 21년 대거상 목록을 보니 Crime Fiction in Translation Dagger... 즉, 번역판 범죄소설 부문에 윤고은의 'The Disaster Tourist'가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쨌든 이 수상소식 덕분에 뒤늦게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처음 접하지만 작가 윤고은은 이미 등단한지 15년이 넘은 중견작가이며 여러 문학상 수상경력과 함께 고정팬들도 많이 확보하고있는 인기작가인 것 같다.


이 작품의 주요한 소재는 '여행'이고, 주인공 역시 여행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있다. 이 책이 처음 발표되었던 2013년 즈음에는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은 그야말로 그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읽었다면 훨씬 공감할 부분들이 많은 내용을 담고있는데, 요즘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아련한 추억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좀 서글프기도 하다. 특히 베트남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더 그렇게 느껴질 것 같다. 나도 아는 곳인데... 나도 가봤는데... 하면서...


이 작품의 주요한 여행지가 바로 베트남의 '무이'라는 곳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아무래도 '무이네(Mui Ne)'가 정식 명칭인 것 같은데, 소설 속에서는 그냥 '무이'라고만 하고있고 또 작은 섬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는 판티엣이란 항구도시 끝자락에 있는 어촌마을인데 말이다. 하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흰모래사막과 붉은모래사막 등 주요 배경소재들이 실제 무이네의 유명 관광명소들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작가는 현실 공간을 살짝 비튼 가상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재난여행'이라는 여행상품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당시 호황기를 등에 업고 별의별 기상천외한 여행상품들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소설 속에서 묘사하는 재난여행은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가 없는 상품이다. 작품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이 재난여행이라는 설정 자체가 현실성이 떨어지다보니 전체적으로 약간 판타지 소설에 가까운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 초반부 회사 조직 내의 갈등상황이나 그 이후 가이드를 통한 여행 등의 묘사는 분명 현실과 맞닿아있어 감정이입과 함께 몰입도가 높은 편이지만, 중반부 주인공 요나가 여행지에 낙오되면서부터 겪게되는 일련의 상황들은 현실과의 거리감이 점점 멀어지면서 그 이후부터는 급격하게 공감도가 떨어진다.


약 230페이지 정도의 분량에 판형도 작은 편이어서 사실상 이 작품은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소설에 가깝다. 그러다보니 긴 호흡으로 디테일하고 치밀하게 서사를 쌓아가기보다는 오히려 단편소설처럼 설명을 생략한 상징과 은유가 많이 깔려있는 스타일이다.


마치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는 '폴'의 존재라든지 발음은 비슷한데 다른 의미로 쓰이는 '파울'은 결국 끝까지 설명되지 않는다. 그리고 규정에 따라 고객들에게 매몰차게 환불을 거절하던 주인공이 나중에는 도리어 역지사지의 상황으로 몰리는 아이러니한 장면이나 관광객들을 위해 연기를 하는 현지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이라든지 여러가지 현실을 풍자하는 듯한 은유가 곳곳에서 느껴지기는 하는데, 궁극적으로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도를 넘어선 상상력과 함께 인위적으로 재난을 만들려고 하던 사람들이 진짜 재난으로 허무하게 무너지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낱 무력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음을 말하고자 했던 것일까... 주인공과 현지인의 다소 생뚱맞은 러브라인도 좀 그렇고... 역시나 모르겠다...



작가의 필력도 여성작가 특유의 감수성과 경력에서 오는 노련미는 보이지만, 문장의 깊이감이나 개성, 그리고 기교 등에서 특별히 뛰어나다는 느낌은 아니어서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내 생각과는 별개로 이 작품에 대한 독자들의 평은 굉장히 좋은 편이다. 어쩌면 기발한 상상력과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가 어필이 된 것일 수도 있겠고, 내가 미처 캐치하지 못한 숨은 메시지를 읽어낸 것일 수도 있겠지... 뭐 각자의 느낌은 다 다른거니까...


한가지 첨언하자면 이 작품은 추리 범죄 스릴러가 아니다. 영국 추리작가협회에서 왜 Crime Fiction 부문의 상을 줬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뭏든 이것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엉뚱하게도 추리 장르로 분류되고 있는 상황이 좀 황당하기도 하다. 전에 리뷰했던 조예은 작가의 '칵테일, 러브, 좀비'도 사실 스릴러 장르에 해당되는 작품이 아니었듯이... 인터넷 서점에서 이런거는 빨리 수정 좀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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