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코를 위해 (스페셜 리커버 에디션)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모모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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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읽었던 '소문'처럼 여고생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이 책들이 요즘 고등학생들에게 화제가 되고있는 것일까... 공교롭게도 동일한 출판사에서 최근에 재출간된 책이라는 점도 재미있다. 


이 책은 소문보다 훨씬 더 오래된 무려 30년전인 1993년에 나왔던 옛날 작품이다. 국내에는 거의 20년이 지난 시점인 2012년에 처음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최근 2017년에 작가가 출간된지 약 25년이 지난 이 책을 몇군데 수정한 후 일본에서 '신장판'이란 이름으로 개정판을 낸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작년인 2020년 이 신장판을 기준으로 재출간을 했고, 올해에는 스페셜 리커버 에디션이란 명목으로 표지를 또 새롭게 바꾸었다. 역시나 반전을 비롯하여 각종 광고문구가 요란하다.



작가 노리즈키 린타로는 1964년생으로 현재 50대 중반이다. 출판년도에 비해 생각보다 나이가 많지않은 것으로 봐서 상당히 이른 나이에 작가로 데뷔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는데, 나중에 작가후기를 보니 역시나 20대 중반인 대학생때 이 작품을 썼다고 나온다. 본명은 야마다 준야(山田純也)이고 이 노리즈키 린타로라는 이름은 필명인데, 무슨무슨 '~타로' 로 끝나는 에도시대에나 유행했을 법한 고풍스런 이름에서도 옛날 정서를 좋아하는 듯한 작가의 취향이 살짝 엿보이는 부분이 있다. 


극중에서 1989년에 죽은 요리코는 17살의 고등학생으로 묘사되고 있으니 나와 비슷한 동년배에 해당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고등학생때를 떠올리며 되도록이면 그 시절의 느낌으로 읽으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오래된 작품은 당시의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 그리고 사람들의 의식수준 등, 아무래도 그 시대의 상황을 이해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만 봐도 요즘 정서로는 말도 안되는 행위이고, 미필적 고의니 무책임한 결말이니 하면서 온갖 비판이 쏟아질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고전추리소설의 정서로 읽는다면 또 그럭저럭 용납되는 부분이기도 한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실제 작가의 필명과 동일한 이름의 탐정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1930년대를 풍미했던 엘러리 퀸이 이런 스타일로 유명했었다. 아마도 작가가 개인적으로 엘러리 퀸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작품 전반부에 사건의 개요를 알려주는 노리코 아빠의 수기가 나오고, 그 다음부터는 주인공 탐정이 등장하여 이 수기를 단서로 해서 사건의 비밀을 하나씩 역추적해나가는 구성이다. 즉, 초반에 작가가 독자들에게 퍼즐조각을 뿌리듯이 거의 모든 힌트를 알려주고, 이후에는 독자가 탐정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전형적인 고전추리기법이다. 철저하게 주인공 탐정의 시점으로만 진행이 되기 때문에 탐정과 독자는 모든 정보를 공유하며 마지막까지 페어플레이를 하게되는 것이다.


확실히 고전적인 스타일을 추구한 작품이라 더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내용이 어떤 정형화된 틀 안에서 인위적으로 짜여져있는 느낌이다. 범인은 누구인가 그리고 범행수법은 무엇이었나에 모든 촛점이 집중된 방식이고, 탐정이 만나고다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용의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독자들이 수수께끼를 풀기위한 단서를 주는 용도 이상으로는 등장하지도 않고,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행동들이 단순히 기능적으로만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 아가사 크리스티의 작품들에서는 실컷 뜸을 들일대로 들이다가 마지막에 포와로 탐정이 굳이 모든 용의자들을 전부 불러모아서 앉혀놓고, 또 굳이 사건의 전모를 장황하게 설명한 후, 그제서야 범인을 지목하곤 했었다. 그에 비하면 이 작품은 생각보다 탐정이 진범을 밝혀내는 타이밍이 좀 빠르다(사실 장편이라기엔 중편에 가까울 정도로 분량이 짧은 점도 한몫하고있다). 예전에 나왔던 고전들보다는 확실히 군더더기없고 스피디한 진행이지만, 상대적으로 너무 퍼즐풀기에만 급급해서 여유가 없는 아쉬움이 있다. 좋은 아이디어를 노련하게 포장하는 관록이나 노련미는 확실히 부족하다.



예를들어 이런 '담배연기로 직조된 장막'이나 '찰나의 노스텔지어' 또는 '속마음을 상형문자화하는 듯한 동작'같은 문장들은 작가가 글이 밋밋하게 보이지않도록 문학적 표현을 넣으려고 애쓴 부분들이다. 그런데 군데군데 나오는 이런 표현들이 오히려 좀 과한 느낌이다. 억지로 쥐어짜낸 듯한... 마치 앳된 여고생이 성인처럼 보이려고 너무 진한 화장을 한 느낌이랄까...


이 작품은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분명 부족하고 아쉬운 부분이 조금씩 보이지만, 불과 약관의 나이에 썼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부분 눈감아주고 싶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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