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칵테일, 러브, 좀비 ㅣ 안전가옥 쇼-트 2
조예은 지음 / 안전가옥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작년 4월에 첫 출간되어 1년반이 지난 지금까지 국내 장르소설 분야에서 꾸준하게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하며 인기몰이를 계속하고있는 작품이다. 언제부턴가 인터넷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이 책이 줄곧 눈에 띄길래 결국 궁금증을 못이기고 최근 구매목록에 포함시키게 되었다.
그런데 배송박스를 뜯고 실물을 본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단편소설집이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해서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까지 작고, 얇고, 허접한 제본 상태일 줄이야... 크기가 일반 핸드폰 사이즈보다 살짝 큰 정도이다. 세로로 길쭉한 기이한 판형에, 활자와 여백의 비율도 미적감각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정말 소장하고싶은 생각이 1도 들지않는 이 책의 정가는 1만원... 아마도 그냥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때와 장소에 상관없이 가볍게 읽다가, 다 읽고나면 미련없이 버려버리는 문고본이나 포켓판의 컨셉으로 제작한 듯 하다. 그렇다면 그 컨셉에 걸맞게 책값도 5~6천원 정도였어야 딱 적당한 수준이 아닌가... 요즘 책값 정말 터무니없이 비싼 것 같다.
이 책은 약 160페이지 정도에 한 작품당 약 40페이지 내외의 분량으로 총 4편의 단편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예은 작가는 생소한 이름이라 찾아보니 1993년생으로 이제 20대 후반이다. 미대 출신으로 금속공예를 전공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작가로 전향한 케이스로 나온다. 그래서인지 첫번째 단편인 '초대'에서 금속공예에 관한 장면이 잠깐 나오기도 한다.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경험부족이라 아직 미숙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무색하게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작가의 필력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문장에서 젊은 작가다운 사유와 재기발랄함이 깊게 묻어나온다. 작가의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런 단편이라는 형식 안에서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감각적인 표현들이 어우러져 매력있게 발산되어있는 느낌이다.
특히 두번째 단편인 '습지의 사랑'은 창의적이면서도 기발한 상상력과 함께 그것을 사회문제와 엮어서 은유적으로 처리하는 노련함까지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이 책이 인기있고 잘 팔리는 이유를 확실히 납득하게 되었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라면 역시 마지막을 장식하는 네번째 단편인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이다. 타임슬립이나 타임루프는 그동안 너무나 많이 다뤘던 식상한 소재이지만, 단편이라는 짧은 형식에 맞추어 간결하고 스피디하게 엮어가는 솜씨가 놀라웠다. 정말 이 작품 하나만으로도 책값은 충분히 뽑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기승전결의 구조에서 자유로운 단편의 특성이 작가와 잘 맞는다고나 할까... 물론 떡밥만 이리저리 던져놓고 별다른 통찰없이 흐지부지 마무리지었다 해도, 단편이라는 형식이 거대한 그늘막이 되어서 작가의 약점을 덮어주는 느낌도 있다. 호흡이 긴 장편소설이라면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 책에서는 장점이 더 많이 보이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점점 침체되어가는 서점가에서 이런 젊은 작가들이 새롭게 활약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그래서 흐뭇한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