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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권일영 옮김 / 모모 / 2021년 9월
평점 :
큰 딸이 고등학생인데 최근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소설이라고 한다. 불과 한달 전에 출간된 책이라 당연히 최신작이겠거니 생각했으나, 알고보니 일본에서는 무려 20년 전인 2001년에 발표되었던 작품이고, 국내에는 2009년에 한번 번역되었다가 절판되었던 것을 올해 재출간한 것이었다. 추리소설 쪽은 늘 관심을 두는 분야라서 베스트셀러는 웬만하면 다 아는데, 이 제목은 처음 들어봤을 정도이니 당시에는 그다지 화제작이 아니었을거라 짐작한다. 이 작품이 현재 일본에서도 다시 역주행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년이나 지난 지금 우리나라에서 뒤늦게 주목받는 상황이 좀 의아하기도 하다.
그런데 막상 실제로 읽다보면 그냥 요즘 나온 책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작품의 소재와 배경이 올드하다거나 구닥다리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 유명한 아이폰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해가 2007년이다. 이 책이 쓰여진 2001년은 아직 2G 폴더폰에 인터넷은 윈도우 98을 쓰던 시대였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고생들은 요즘 사람들의 SNS활동과 전혀 다를바없이 단순 통화기능 이상의 용도로 휴대폰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작가가 마치 스마트폰의 시대가 올 것을 미리 예측하고 아예 미래를 배경으로 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시대를 앞서간 소재와 통통 튀는 대사들이 인상적이다.
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일본의 추리작가들은 거의 상향평준화되어 있기때문에, 국내에 번역소개될 정도의 작품이라면 아무리 생소한 이름의 작가라 하더라도 어지간하면 평타 이상 치는 정도의 완성도는 보장한다고 봐도 된다. 이 작가 역시 처음 접하지만 대단히 안정적이고 높은 수준의 필력을 보여준다. 특히 일본작가 특유의 지나치게 디테일한 묘사는 개인적으로 질려하는 부분인데, 이 작가의 경우에는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조율되어 있는 점이 좋았다. 물론 중반부 경찰의 수사과정이나 부서간 신경전 등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는 늘어지는 부분을 좀 걷어내고 스피디한 진행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인물들간의 대사들이 각 캐릭터의 성격을 나타내는 역할과 함께 잘 짜여져있고, 군데군데 튀지않는 유머도 적당히 배치되어 빈틈없고 노련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책의 가장 강력한 세일즈포인트는 역시나 '반전'이다. 마지막 한 문장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거나 일본 역사상 최고의 반전이라는 소개란의 떠들석한 광고는 책을 읽기도 전에 흥분과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렇게 궁금하던 마지막 문장에 이르면 확실히 어떨떨해지기는 한다. 그냥 평범했던 추리소설이 마지막 반전 하나로 좀 더 특별하게 변한 것은 분명한데, 그 반전으로 인해 정말 광고처럼 모든 것이 뒤바뀌는 정도는 결코 아니다. 작가가 보너스 개념으로 슬쩍 끼워넣은 장치라고나 할까... 마치 영화가 끝난 뒤 나오는 쿠키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단지 그 쿠키영상이 본편보다 더 강렬해서 쿠키만 기억나는 케이스라 할 수도 있겠다. 어떻게보면 없어도 그만인 반전이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소문'이란 매개체를 통해 젊은 세대들을 이용했던 기성 세대가 확대 재생산된 소문으로 인해 도리어 몰락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되고있어서 나름 의미심장한 부분이 있다.
책에 묘사되어있는 20년 전 일본 여고생들의 모습은 요즘 우리나라 여고생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급변하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부모와 자식세대가 소통이 잘 안되는 웃픈 상황과 서로가 서로를 이용해먹는 악순환을 그저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착찹한 상황 등, 이 책은 일본 추리물답게 그 시대의 사회상을 통해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겉으로는 마냥 삐딱할 것만 같은 학생들이 실상은 크고작은 마음의 상처와 어른들이 미처 파악하기 힘든 '순수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놓치지않고 보여준다. 덕분에 미운오리새끼같은 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