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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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된 지 불과 두 달 정도 밖에 되지않은 신작인데, 현재 추리 미스테리 장르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있다. 인터넷 서점에 소개된 이 책의 광고문구는 상당히 강렬하고 또한 호기심을 자극한다. 한국 미스테리 역사상 최고의 반전이라는 찬사와 함께 스포 금지를 당부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충격적 반전이라는 광고 자체가 이미 스포일러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반전이 의식되어 읽는내내 신경이 쓰이고 집중에 방해가 될 수 밖에 없다. 반전 미스테리는 반전이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아예 모르고 읽는 것이 가장 좋다.



일단 이 작가는 필력이 나쁘지 않다. 문장의 구성이나 단어의 선택 등에서 안정감과 무게감이 느껴지며, 적당한 충격과 함께 호기심을 자아내는 각 챕터의 연결방식도 세련되게 구사한다. 정교하게 짜여진 사건과 경찰의 수사과정이 적절히 배치되어 몰입감을 높여주고, 사체의 부검이나 CCTV 분석 등 전문적인 수사과정에 대한 묘사도 어설프지않아, 작가가 충분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글을 썼다고 느껴진다. 스토리가 계속해서 흥미롭게 이어지고 군더더기없이 비교적 짧게 끊어지는 문장들로 인해 가독성이 높아 페이지가 정말 빨리 넘어간다.


반전 미스테리의 역사는 이미 오래되었다. 특히 일본 추리소설들 중에서 놀라운 반전으로 화제가 되었던 작품들이 많다. 우타노 쇼고의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같은 유명한 작품도 생각나는데, 이런 작품들은 대부분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영화처럼 그야말로 반전에 올인을 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내용이 마지막 반전을 위한 정교한 밑그림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마지막 반전에 이르러서야 독자들은 완성된 그림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 마지막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강한 충격과 짜릿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이런 정석적인 반전 미스테리들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요란하게 광고했던 것처럼 마지막에 의외의 반전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내용 전체에 막대한 영향을 줄 만큼의 파급력을 가지고있지는 않다. 물론 그 반전으로 인해 몇가지 의문점이 해소되는 부분도 있으나, 주인공을 제외한 주변인물들을 작위적이고 소모적으로 사용하면서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는 그들의 행위와 동기를 반전으로 퉁치는 듯한 느낌도 든다. 게다가 일본 추리물을 많이 접했던 사람들에겐 어디서 본 듯한 느낌과 함께 이 반전 트릭이 그다지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다가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교사와 형사를 맡은 두 주인공의 캐릭터 구축력은 나무랄 데가 없다. 특히 시간이 따라 차츰 다양한 내면의 모습을 드러내는 교사 김준후에 대한 묘사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부분이었다. 기본 뼈대가 되는 스토리 자체가 충분히 흥미로운 요소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반전을 위해 주인공을 제외한 주요인물들의 묘사를 축소한 점은 많이 아쉽다.



제목에 홍학이 들어간 이유는 책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알게되는데, 막상 이 홍학에 집착하는 인물에 대한 서사가 빈약해서 감정이입이 힘들다보니 그냥 근사한 제목을 위해 끼워맞추기 식으로 상징성을 부여한 느낌이 있다. 네덜란드의 아루바 섬은 실제로는 중남미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해있는데, 소설에 언급된 것처럼 홍학과 함께 할 수 있는 플라멩고 비치가 유명한 모양이다.


이 작품은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지만 강력한 흡인력으로 단숨에 읽게 만드는 페이지터너 또는 킬링타임용이라는 측면에서는 확실한 만족감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반전의 특성상 이 작품이 영화화될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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