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밤
할런 코벤 지음, 노진선 옮김 / 문학수첩 / 2020년 7월
평점 :
절판


할런 코벤은 그동안 관심을 끊었던 작가였다. 2000년대 중반 그가 국내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두 작품 '마지막 기회'와 '단 한번의 시선'을 읽고 너무나 큰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15년 가까이 지난 지금, 그의 작품을 다시 구매한 것은 번역가가 노진선이란 이유 하나 때문이다. 요 네스뵈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알게된 번역가인데 정말 실력이 좋다. 영미권 장르소설 번역가들 중 이세욱씨 같은 특별한 경우와 요즘 활동이 뜸한 유소영씨를 제외한다면 현재 가장 믿을 수 있는 번역가라 생각한다.

 

노진선씨의 번역은 군더더기없이 꽉차고 감기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현지인이 아니면 이해하기 힘든 부분도 정확하게 캐치하여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꼭 필요한 주석을 달아주는 센스도 훌륭하다.

그동안 할런 코벤의 작품들은 대부분 최필원이란 번역가를 통해 소개되어왔다. 오래전부터 믿고 거르는 번역가... 언제나 최소 30% 이상 작품의 질을 깍아먹는 조악한 날림번역을 보여주는 사람이다보니 분명 할런 코벤이라는 작가의 실력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의심이 늘 있었다.

역시나 이 작품을 읽어보니 내가 알던 할런 코벤이 아니었다. 이렇게나 필력이 좋은 작가였다니... 그동안 스릴러의 제왕 어쩌구 하던 광고문구가 허위과장이 아닐까 생각해왔는데, 이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작가가 느린 호흡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사건 전개에 많은 디테일을 부여하는 스타일이다보니, 번역가의 능력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재미와 만족도의 편차가 엄청 클 수 밖에 없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이렇게 뛰어난 작가를 이제야 알아보게 되었다는 사실에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이 작품은 설정 상의 구멍이 몇 군데 보여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인물들간의 대사처리나 세련되고 튀지않는 유머코드라든지 마지막 클라이막스 부분의 서스펜스를 연출하는 솜씨는 베테랑다운 노련함이 물씬 느껴지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고전적인 하드보일드와 정통 추리소설이 어우러진 듯 해서, 오랜만에 마치 웰메이드 드라마를 보는 듯한 즐거움으로 기분좋은 책읽기를 경험한 것 같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좋은 번역 덕분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