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김웅 지음 / 부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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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가진 사람 하나 쯤 필요하다고 한다.

 

살다보면 재판에 연루되는 일이 생기게 되고, 그럴 때 큰 도움을 받게 된다나.

 

나의 경우 미천한 집안에 소박한 학벌인지라 지인 중에 “사”자 들어간 사람이 없다.

 

이런 내가 재판에 휘말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고액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할테고,

 

재판에 지기라도 하면 이중으로 돈을 잃을 것이다.

 

잘못하면 감옥에 갇힐 수도 있다.

 

변호사 비용이 너무 고액이니 변호사 숫자를 늘리면 어떻게 될까?

 

고등학교 때 배운 경제 지식으로는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은 낮아진다.

 

그런데 주변에 로스쿨에 진학하겠다고 하는 사람에게 왜 좋은 회사 때려치고

 

학비 비싼 로스쿨에 가냐고 물어보면 월급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현실에선 어떻게 작동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미국에서 실험해 본 결과 변호사들의 연봉 상승으로 이어졌다.

 

심지어 민주당 출신 대통령이나 후보들은 거의 변호사들이 차지하게 되면서

 

정치 권력까지 차지하게 된다.

 

(물론 공화당은 아빠가 부자여야 대통령이나 대선급 후보가 될 수 있다.)

 

초창기 미국 이민자들은 변호사를 혐오했다.

 

1645년 미국 버지니아 주는 변호사의 법정 변론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1740년 메사츠세스 주 전체의 변호사 수는 15명이었다.

 

1850년 미국 전역의 변호사는 2만1979명에 불과했다.

 

그러던게 20세기 초에는 11만명으로 증가했고 21세기 초에는 100만명이 넘었다.

 

변호사 공급이 늘었으니 비용이 낮아졌을까?

 

아니었다.

 

늘어난 변호사들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야 했고,

 

동창들보다 훨씬 더 많은 연봉을 받아야만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변호사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말도 안되는 소송과 고소를 진행하게 되고,

 

미국에서는 다리미에 “옷을 입은 채 다리미질 하지 마시오”,

 

수면제 주의사항에 “졸음을 유발할 수 있음”이라는 경고문을 붙여 놓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 중 변호사들이 찾아낸 최고의 먹잇감은 의료계였다.

 

의료계는 돈도 많고, 의료 사고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지고 와서 보상금이 어마어마했다.

 

 

가령 헬기로 긴급 이송을 하지 않아 평생 반신불수가 된

 

못 배우고 가난한 유색인종이 변호사를 잘 만나서 재판에서 이겨

 

고액의 보상금을 타내게 되면 정의가 실현되고 사회 전체가 행복해질까?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소송에서 지게 된 병원과 보험회사는

 

자신들의 연봉이 2억에서 1억으로 줄어드는 고통을 감수하지 않았다.

 

의사와 보험회사 직원들도 갚아야 할 학자금, 자동차, 주택 대출 금액이 엄청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재판 패소 비용을 다른 환자의 진료비나 보험비를 더 걷어서 해결한다.

 

또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기 때문에 재판 이후 발생한 모든 환자는 헬기를 태워서

 

병원으로 이송해온다. 헬기 이송 비용은 당연히 환자가 낸다.

 

 

이렇게 미국의 의료계는 넘쳐나는 변호사들에 의해 붕괴한다.

 

“법대로 하자”라는 말을 좋아하는 한국인들도 조심해야할 대목이다.

 

우리나라 사법제도를 로스쿨 업생의 선의와 양심에 맡기지 말고,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통해 사법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55p 세상에 비싸면서 안 좋은 것은 흔하지만 싸면서 좋은 것은 드물다

63p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마땅히 쉼 없이 구멍을 메우고 차오르는 욕심을 퍼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욕심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논리와 이성을 지켜내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 결과 아무리 허술한 속임수라도 피해자의 욕심과 만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지구온난화를 해결해주는 무한동력 에너지 사업도, 200세 인생을 가능케 하는 세포재생 사업도, 바르기만 하면 100달러자리 지폐로 변모한다는 마법 잉크도 모두 가능해지는 것이다. 개미귀신은 늘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개미귀신이 개미에게 뿌려대는 모래는 내 마음속의 탐욕이다. 누구도 자신 안의 탐욕을 이길 수는 없다.

86p 1960년부터 탄자니아에서 침패지를 연구했던 제인 구달의 연구도 이를 입증한다. 구달에 따르면 침팬지 무리가 다른 무리를 공격할 때는 영토를 침범당하거나 위협을 당할 때가 아니라고 한다. 그 무리가 약할 때라는 것이다.
19세기 초 남태평양에 살고 있던 모리오리족은 해협을 건너 침략해온 뉴질랜드 원주민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며 선의와 평화를 청했다. 하지만 무기를 버린 그들은 결국 살해되고 노예가 되었다.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102p 진정서들은 대개 비슷하다. 다들 절박하다. 그러나 응급실 의사들이 매일 삶과 죽음을 겪으면서 둔감해지듯 나도 늘 보는 절박함 앞에서 무덤덤해졌다.

103p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은 큰 위기다. 재산을 비롯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욱이 사람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사람들이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부침에 불과한 것을 크나큰 위기였던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유는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108p "정화빌딩이 선생님의 것입니까?"

하늘이 두 쪽 나지 않는 한 그렇다고 했다. 그 땅을 누구에게 구입했는지 물었다. 그 정도는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중계약서는 언제 어디에서 작성했느냐고 물었다. 당황하기 시작했따. 은행에서 대출받을 때 누구와 상담했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설계는 누구에게 맡기고 토목은 누구에게 맡겼느냐고 물었다. 그후로 이 씨가 전혀 답하지 못하는 질문만 30분 넘게 해댔다.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을 우습게 여기고, 세상 우습게 여기고, 검사를 우습게 여긴 대가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 해주는 데는 한참 부족한 시간이었지만 너무 심하게 무너지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는 해주었다.

"하늘이 두 쪽 났네요"

87p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우리 또래 중년남자들이 친구들을 만나면 입에 달고 사는 소리이다. 이놈의 회사에 꽃다운 청춘을 바친 것이 억울하다며, 회사 때려치우고 목 좋은 곳에 커피숍이나 차려 여유롭게 살겠단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진심으로 가소로웠다.

일단 우리에게 꽃다운 청춘이란 것은 없었다. 꽃다운 청춘이란 드라마 주인공이나 누리는 것이다. 우리는 젊었을 때도 지금처럼 구질구질했고 늘 허덕거렸다.

게다가 목 좋은 곳의 카페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노년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건 서울의 건물 같은 것이다. 지천으로 깔렸는데 우리 몫은 없다.

그런 망상에 가까운 희망은 망하는 게 당연한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96p 나름 자신감에 차 있던 친구의 얼굴은 내 이야기가 끝나자 무척 어두워졌다.

나는 친구에게 가당찮은 계획을 접으라고 했다.

"매달 300만 원씩 꾸준히 수익이 나는 가게는 절대 매물로 나오지 않아. 그런 거라면 집에서 놀고 있는 자기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창업 브로커들이 너한테 친절한 이유는 딱 하나야. 네가 호구이기 때문이지. ….. "

제대로 충고하려면 애정을 빼고, 주저하지 말고, 심장을 향해 칼을 뻗듯 명확하고 고통스럽게 해야 한다. 듣는 사람의 기분까지 감안해서 애매하게 할 거면 아예 안 하는 것이 낫다.

97p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다.

사기의 세 번째 공식이다. …(중략) …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 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다.

좋은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해서 당신에게 알려주는 선의란 없으며,

만약 그런게 있다해도 절대 당신의 순번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

121p 그러고는 "이것도 금세 잊히고 곧 나아지겠지요?"라고 물었다.
나는 수민 씨에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기대와 달리 쉽게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낮에도 밤에도 벗어날 수 없는 악몽이 될 것이고,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며,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지는 우울증이나 모든 것이 자기 탓인 것 같은 자학을 부를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은 수민 씨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절대 안일하게 대처하지 말고 기관이나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139 검사실에서 하는 말들은 대부분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조사받는 피의자의 말도 거짓말이고,
돈을 바라고 고소한 것은 아니라는 고소인의 말도 거짓말이다.
조사하면 다 밝혀진다고 위협하는 검사의 말도 거짓말이다.

228p 당시 검사장은 고소인 권한을 강화 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거창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 검찰의 고위 간부들은 늘 이 주제에 혹하곤 하는데, 그건 형사부 근무를 거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가 고소 때문에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다 보니 누구든지 고소를 먼저 하는 사람이 승기를 잡게 된다.

255p. 아이들이 그보다 더 싫어하는 말은 검사 일에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답이다. 아예 경기를 일으킨다.
백발백중 "에이"하는 실망스런 탄성과 함께 분노를 유발하게 하는 그 답은 바로 ‘책 읽기‘다.
258p. 검사 일이 대부분 활자로 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라 책 읽기를 통해 익힌 이해력, 어휘력, 상상력, 비판 의식, 사실 파악 능력 등은 사건의 분석, 해석, 평가에 직접적으로 활용 가능한 능력들이다. 내 경험으로는 단편소설이 가장 효율적인 수단인 것 같다.

274 법대로 하자는 것은 상대방과의 공존과 상생은 개뿔, ‘널 반드시 박멸시키겠다‘는 말의 우회적인 표현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에 의한 분쟁 해결은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기보다 새로운 분쟁과 갈등을 낳는 경우가 많다.

280 ‘송사 3년이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남의 일에 대해 너무 심한 말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배울 수도 있다. 이 치열한 대결에서는 모두가 패한 것 같다. 하지만 예술과 비평의 엄혹한 대결에서도 승자는 있었다.
법률 세계에서 승자 없는 싸움은 없다.
바로 변호사이다.
실상 모든 소송의 승자는 언제나 법률가이다.
아무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휘슬러와 러스킨이 아니라 변호사의 위치에 서야겠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301
어쩌면 그건 과거 법조가 인문학, 철학, 종교로부터 권력을 강탈했던 과정과 과학기술이 법률가들을 대체하는 진행 경과가 매우 흡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우라노스로부터 권력을 찬탈한 크로노스가 자신의 자식인 제우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과거 법률가들은 인문, 종교, 철학으로부터 과학적 엄정함, 공정함, 객관성, 일반성, 논리성, 중립성, 예측 가능성 등을 내세워 사회의 주도권을 빼앗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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