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74p. "소설 제목이 뭐야?" "25시" 트라이안이 말했다. "구원을 위한 온갖 시도가 소용 없게 되는 순간이지. 구세주의 왕림도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순간이야. 이건 최후의 시간도 아니야. 최후의 시간에서 한 시간이나 더 지난 시간이지. 서구 사회가 처해 있는 정확한 시간, 지금 이 시간, 바로 이 시간이야.."
상권 214p. 루시안이 말했다. "지금 몇 시죠, 아버지?" "지금은 25시야!"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루시안이 말했다. "이해 못 하는 게 당연해. 아무도 이해하려 들지 않거든. 지금은 25시야. 바로 유럽 문명이 봉착해 있는 시간이지."
65p."인류를 위협하는 그 위기가 뭔데?" 게오르그가 물었다. "기계 노예!" ... "현대 사회가 보유하고 있는 기계 노예의 동지인 인간 노예 역시 그리스 인과 로마 인들에 의해 단순한 힘으로 여겨져 왔어. 생명이 없는 존재로 간주되었던 거지. 그들은 인간 노예를 사고 파는 건 물론이고 선물로 주기도 했고 심지어는 마음대로 죽이기도 했어. 인간 노예들은 체력과 노동 능력에 의해서만 가치를 평가 받았어. 오늘날 우리가 기계 노예를 평가할 때 사용하는 기준과 다를 게 없었지."
66p. "고대 로마나 그리스에서는 어두워진 뒤 주인이 손뼉을 치면 노예가 손에 횃불을 들고 왔었지. 그러나 오늘날에는 노예를 부릴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자들마저 해가 져도 손뼉을 쳐서 그들을 부르지 않아. 단지 버튼을 돌릴 뿐이지. 그러면 기계 노예가 방을 밝혀 주거든."
68 p. "기계 노예 특유의 법칙 중에 몇 가지만 예를 들자면, 자동성, 획일성, 익명성 등이야. 로마 시대의 노예들은 그리스와 트라키아, 그리고 다른 식민지로부터 유입된 관습에 따라 말하고 기도하고 생활했어. 우리 사회의 기계 노예 역시 그들 고유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 민족 특유의 법에 따라 살아가고 있어. 이와 같은 본질, 혹은 현실은 우리 사회 안에 존재하면서 점점 그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어. 인간은 기계 노예를 부리기 위해서 그들의 관습과 법을 배우고 모방해야만 해. 고용주는 직원들을 통솔하기 위해서 그들의 언어와 관습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모방해야 하는 법이야."
69p. "인간의 기본 요건을 포기하지 않고는 이제 그 사회에 통합될 수 없어. 여기에서 열등감과 기계를 모방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겨나는 거야. 또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인간 고유의 특성마저 포기하려는 욕구도 생겨나는 거지... 인간은 자신들의 법칙과는 너무 다른 기계적 법칙에 따라 생활하고 행동해야 해. 사회법으로 승격된 기계적 법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처벌을 받게 돼... 급기야 인간의 사회적 관계는 기계 안의 각 부품이 연결되어 있는 것과 같은 명확하고 단정적이며 기계적인 관계로 축소되는 거야."
70p. "그럼 우리가 ‘인간 기계’로 변한다는 말이야?" 여전히 빈정거리는 말투로 게오르그가 물었다. "바로 거기에 비극의 씨앗이 있는 거야. 우리는 기계가 될 수 없어. 기계적 현실과 인간적 현실이라는 두 개의 상반된 현실 간에 충돌이 발생하겠지. 기계 노예는 전쟁에서 승리해 자유를 얻게 될 거고, 우리 사회의 기계 시민이 될 거야. 그리고 우리 인간은 다수의 시민, 다시 말해 ‘기계 시민’의 필요성과 문화에 의해 조직된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 계층으로 전락하고 말 거야."
71p. "각 개인은 생존권조차 상실한 채 기계의 피스톤이나 부품으로 취급받게 되겠지. 사생활을 보장받으려는 사람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야. 피스톤에게 사생활이 있는 거 봤어?"
73p. "인간이 기계적이고 사회적인 가치에 의해서만 평가받는 존재가 된 순간부터 어떤 일이든 생길 수 있는 거야... 기계 사회는 생산이라는 유일한 윤리만을 가진 채 추상적인 정책을 관리하면서 오로지 기계적 법칙에 의해서만 움직여."
74p. "반면에 동양인들은 기계 사회를 정복하고 거리와 주택을 밝히기 위해 전깃불을 사용하겠지만, 그 노예가 되어 전깃불을 신처럼 모시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거야. 오늘날 무지함 속에 이러한 행동을 하고 있는 서구 기계 사회의 경우와는 반대지"
76p. "시민은 사회적인 범주의 삶만을 살아가는 사람이야. 그들은 기계의 피스톤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한 가지 동작만을 수행하지. 단지 기계의 피스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시민에게는 자신들의 행동을 상징화하고 이를 온 세상에 알려서 모든 사람들이 모방하게 만들고자 하는 야망이 있다는 거야. 시민은 인간과 기계 노예가 만난 이래로 지구상에 출현한 가장 위험한 동물이야. 그들은 사람과 동물이 가진 잔인함과 기계의 냉담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 소련 사람들은 인민위원이라는 가장 완벽한 시민 유형을 만들어 냈지."
89p. 헌병 대장 "문 좀 열어 줘." 수잔나 "그냥 거기 있어요" ... 헌병 대장 "남편이 오지 않는다면 이 문을 열어 줄 거야?" 수잔나 "별걸 다 알고 싶어 하는군요!" 헌병대장 "넌 유부녀야. 뭐가 그렇게 무서워?" 수잔나 "그만 귀찮게 하고 가세요" 헌병대장 "대답해 주면 갈게" 수잔나 "모르겠어요" 헌병대장 "열어 줄 건지 안 열어 줄 건지 말해 줘. 대답을 듣기 전에는 안 가겠어!" 수잔나 "왜 그런 걸 알고 싶어하죠?, 야니는 집을 떠나지 않아요" 헌병대장 "만약 떠난다면?" 수잔나 "그 때 가서 볼 일이죠. 하지만, 야니는 아무 데도 안 가요. 우리는 축사를 만들어야 해요. 그 다음엔 우물도 파야 하고요. 이렇게 할 일이 많은데 어디를 가겠어요?" 헌병대장 : "네가 그렇게 단순한 여자라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어"
130p. 마르쿠 골든버그 "수로 공사는 제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것입니다!. 수로 공사는 적군(赤軍)의 전진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동지들의 앞길에 장애물을 놓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죄수들은 마르쿠의 용기 있는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그의 생각에 동의를 표했다. 그러나 그가 작업을 거부할 경우, 그에게 할당된 만큼의 땅을 자신들이 대신 파야 한다는 소리를 듣자 곧 흥분을 했다
164p. 레오폴드 슈타인은 자신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 흠잡을 데 없는 논리의 소유자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그녀의 대답은 광신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광신자에게 논리란 없는 법이었다. 그는 감히 그녀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인간이 명철하기를 포기할 때, 그의 말을 반박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 진실을 보여 주기 위한 모든 노력은 헛수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169p. 레오폴드 슈타인 : "진정한 사랑을 하려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행복이 존재함을 믿어야 하고 어리석어 보이지만 그 행복이 영원하리라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 행복을 줄 수 있으리라고 믿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믿기에는 아가씨는 너무 영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하지만 아가씨는 사랑해서 결혼한게 아닙니다... 두려움에 의한 결혼입니다. 아가씨는 궁지에 몰린 사람이 그러하듯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셨습니다." 엘레오노라 : "그럼 사랑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 말씀인가요?" "관계가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아가씨의 사랑은 인간이 야생에서 살던 시대에 여인들이 느꼈을 법한 사랑을 닮았습니다. 당시의 여인들은 밤낮을 가릴 것 없이 날마다 야수에게 잡아먹히게 될 위협을 받으며 살았죠. 그래서 그 여인들은 강렬하면서도 열정적으로 보호, 사랑, 그리고 생명을 요구하면서 필사적으로 남자의 무릎에 매달렸던 겁니다."
211p. 바르톨리 백작 : "현대 사회는 그리스인들에게는 없던, 노예를 감시하는 방법을 보유하고 있어. 기관총이나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만을 뜻하는 게 아니야. 인간을 감시하는 데 쓰이는 관료적인 모든 기법을 말하는 거지. 식량 배급권, 경찰이 발급하는 호텔 숙박 허가증과 기차 승차 허가증, 통행 허가증, 이사 허가증 같은 것들 말이야. 현대 사회와 같은 통제 방법이 있었다면 그리스 인이나 이집트 인들도 노예를 쇠사슬로 묶지 않았을 거야. 어쨌든 노예 제도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어."
바르톨리 백작 : "우리의 문화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었지. 첫째, 미를 사랑하고 존중했어. 이건 그리스로부터 유래된 거였어. 둘째, 법을 사랑하고 존중했어. 이건 로마로부터 유래된 거였지. 셋째, 인간을 사랑하고 존중했어. 이건 많은 시간과 노력 끝에 기독교도들이 전파한 거였어. 인간, 미, 그리고 법이라는 세 가지 상징을 존중함으로써 서구 문명은 오늘날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어. "
214p. 바르톨리 백작 : "그 암울하던 시절, 인간은 무시당했고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무지로 말미암아 자행됐지. 그러나 마침내 우리는 무지함에서 벗어났고 인간을 존중하기 시작했어.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었거든. 그런데 기계 사회가 출현하면서 오랜 문명기를 통해 우리가 얻어 내고 창조해 낸 것들이 모두 파괴되고 말았어. 오늘날 인간은 사회적인 가치로만 평가받게 됐어."
232p.. 공장 관리 : "기계는 무질서를 용납하지 않는다. 기계는 게으름이나 인간의 나태함도 묵인하지 않는다."(효리원) "기계는 규율의 문란을 용서하지 않는다. 기계는 무질서와 태만, 그리고 인간의 나태를 용서하지 않는다 말이야."(홍신)
241p. (모리츠는) 이제는 꿈도 꾸지 않았다. 그의 얼굴과 눈은 칙칙한 빛을 띠었다. 그것은 흙빛이 아니라 기계의 빛깔이었다. 요즘 들어 요한 모리츠는 자신이 옮기는 상자에 단추가 들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아주 가끔씩 그 사실이 기억날 때면 그는 미소를 지었다.
272p. 모리츠는 힐다의 집에 가서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완치될 때까지 한 달 동안 그녀와 사랑을 나누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나쁘지 않은 명령이긴 했지만 명령은 명령이었다. 그리고 그 어떤 명령도 그를 기쁘게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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