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 없이 기본소득
바티스트 밀롱도 지음, 권효정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안대희 전 대법관은 변호사로 활동하는 시절 하루 1천만 원을 벌었다는 이유로 국무총리에서 낙마했다. 지금 국무총리 후보로 청문회를 준비 중인 황교안 법무부장관도 변호사로 활동하던 시절 하루 350만원을 벌었다.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딱 절반에 있는 사람이 번 돈(중위소득)은 연 1,074만원이고, 평균 소득은 연 2,046만원 이라고 한다. 대다수 국민들의 1년 연봉, 한 달 월급을 하루에 버는 사람들이어야 국무총리로 올라갈 자격이 있는 걸까? 5월 21일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980년대 부자와 서민의 소득 격차가 7배 정도였는데, 현재는 10.1배로 OECD 34개 회원국 중에서 23위를 차지했다. 헌법 119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라는 조항은 분명 실패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는 신자유주의가 대세다. 신자유주의를 거칠게 정의하면 “정부의 규제는 풀고, 세금을 내리면, 부자가 돈을 많이 쓰고, 돈을 많이 쓰면 그 돈이 서민에게 내려올 것이다”라는 생각이다. 이 신자유주의의 창시자급으로 여겨지는 사람이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인데, 이 사람의 정책 패키지 중에는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가 있다. 가령, 한 달 최소 160만 원이 있어야 4인 가구가 유지되는데, 김씨라는 4인 가구가 100만 원을 벌었다. 그러면 부족한 60만 원을 보조해줘 전 국민이 최소한의 생계는 유지하게 해주자라는 개념이다. 그리고 1970년대 미국에서는 이 음의 소득세에 대해 실제로 몇몇 도시를 대상으로 실험까지 했다. 결국 음의 소득세는 시행되지 않았지만, 부자의 세금은 깎아주고, 대기업의 규제는 풀어줬고, 빈부 격차는 엄청나게 벌어졌다.

 

 

 

 

음의 소득세가 우파 버전의 기본 소득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기본 소득은 전 국민에게 매월 ±20만원씩 주자는 제안이다. 월 20만 원이면, 연 240만 원, 120조 원의 예산이 필요하고, 대한민국의 1년 예산은 370조다.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무엇보다 선별 복지처럼 신청, 심사, 부정 수급에 대한 감시 비용이 사라진다. 정책이 단순하며,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나라는 기존 복지 정책이 별로 없어 충돌하것도 많지 않다.

이미 미국의 알래스카에 사는 주민들은 1년에 200만 원 가량의 기본소득을 받고 있다.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가 뛰놀던 스위스는 2016년 매월 280만 원씩 기본 소득 지급에 관해서 국민투표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2012년 대선 공약 중 65세 이상 노인에게 20만 원씩 지급하겠다는 것도 기본소득의 정책 중 하나다. (이 공약은 대통령이 되자 뒤집어졌다.)

  

 

 

 

평화의 한자는 平和다. 평평할 평 + 벼 화 + 입 구를 합친 말이데, 모든 사람 입에 밥이 똑같이 들어가면 평화롭다는 뜻이다. 기본 소득은 가장 현실적인 부의 재분배 정책이며, 또한 가장 비현실적인 대안일지 모른다. 이 대안에 관해서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의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200년 전에 노예 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에게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는 계속 발전합니다. 그러니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60p 기본소득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 기본소득 금액이 충분해야 한다. 모든 이가 꼭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에 아무런 문제없이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각 개인이 일을 않고도 계속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해야 한다. 이 조건 덕분에 노동에 대한 강요에서 벗어날 수 있다.
둘째, 기본소득은 이중으로 (완전히) 조건 없이 지급되어야 한다. 어떠한 조건도, 대가도 요구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 번째 조건 덕에 개인은 실업자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사회적 압력을 이기지 못해 일할 수밖에 없던 그 의무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
세 번째,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이 사회적 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는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103p 흔히 일이나, 경제적으로 인정되고 가치를 매길 수 있는 활동만이 사회적 효용이 있다고 한정해 버려서다. 그러나 시장은 사회적 효용 여부를 판단하기에 적합한 기준이 아니다.

104p 시장을 사회적 유용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공공서비스나 비영리 활동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참에 사회적 유용성이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 보자.사회적 유용성은 늘 광의의 개념으로 생각해야 하지만,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을 정의하기 위해 끝없이 조사하지 않는 한 사회적 유용성의 범주를 정하기란 사실 어렵다. 그렇다고 시장이 아닌 다른 만족스런 기준을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노동시간 단축이 반드시 생산성을 떨어뜨리지는 않는다. 주당 `35시간` 근로 체제가 프랑스인들의 생산성 향상에 큰 영향을 끼쳤음을 기억하자. (1997년과 2000년 사이에 주당 35시간 근로 체제를 채택한 기업은 노동시간이 10퍼센트 감소하고, 시간당 생산성이 6.7퍼센트 향상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