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기능한 때는 '지知'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84쪽
당시 성서는 교회에서 사제가 읽어주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한 지식의 독점이 교회의 위선적인 권력 구조의 온상임을 간파하고 지知를 되돌려주려고 한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의 본질입니다. ........
신과 일대일로 마주한다는 것은 성서를 통해 신 앞에 직접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엄격하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습니다. ... 다른 한편으로는 신(혹은 예수)과 일대일 대면이라는 엄격함과 중압감에 짓눌려 정신병에 걸린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96-98쪽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기독교는 기본적으로 성욕을 금지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민중을 지배하던 중세에는 표면적인 교리 및 원칙과 달리 실제 시행에 있어서는 꽤나 느슨한 편이었습니다. 중세의 성욕에 대한 느슨한 통제는 14세기 이탈리아의 작가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한데 프로테스탄트는 가톨릭이 갖고 있던 이러한 '느슨함'을 잃어버렸습니다. .... 19세기 영국의 빅토리아 왕조를 필두로 한 프로테스탄티즘의 전통이 강한 유럽사회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성에 관해 발설하는 것이나 성적인 행위를 일절 금지했습니다. 그런 성적 도덕관념은 신분이 높아질수록 더욱 엄격해서 상류층에 속한 여성들은 철저한 금욕 생활을 강요받았습니다. ...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는 여성들의 히스테리가 너무도 심해서 그 원인을 프로이트를 비롯한 여러 정신분석학자들이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할 정도였습니다. -99쪽
칼뱅의 예정설에 따르면 신은 구제할 인간을 사전에 결정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신의 결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선행을 쌓아도 바꿀 수 없습니다. 노력과는 상관없이 태어날 때부터 결과가가 정해져 있다면 힘써 노력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에서 염세적이 되기 쉬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바로 이 점이 예정설의 신기한 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히려 칼뱅파 프로테스타튼들은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선행을 쌓기 위해 애를 씁니다. '전능하신 신이 끊임없이 선행을 이루는 인간을 구제하지 않을 리 없다.'는 신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입니다. -103쪽
교회가 지식을 장악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교회가 허용하는 지식 외에는 접할 수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지식에 대해 간접적이고 소극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던 것이지요. 근대가 되면서 지식은 교회로부터 해방되었습니다. ... 남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에 들어가거나 돈을 내고 책을 사지 않으면 지식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121쪽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인 MIT의 강의도 전부는 아니지만 상당 부분 인터넷을 통해 공개합니다. ... '정보의 무료화'는 많은 사람이 지지하고 이용자가 늘어나면서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도 당연히 증가하게 됩니다. .... 그 결과 그러한 딜레마를 극복한 사람은 엄청난 부와 막강한 힘을 거머쥐게 되지만 그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 도중에 포기한 사람은 냉혹한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정보의 무료화'라는 공평해보이는 조건이 사실은 빈부의 격차를 확대시키는 아이러니한 겨로가로 이어지는 것이죠.-122쪽
맛집 순례는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아로마테라피는 후각과 촉각을, 그리고 발반사요법foot massage은 촉각을 자극하는 것처럼 근대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업신여겼던 신체적인 감각, 특히 시각 이외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요.-125쪽
제국의 지배력이 약해지거나 착취가 정도를 넘어서면 잠자고 있던 '민족의 자긍심'이 눈을 떠 독립을 외치게 됩니다. -153쪽
이슬람제국의 경우 '알라 앞에서의 평등'이 제국 지배를 지탱해주었습니다. ... 그러나 7세기 후반 우마이야 왕조 Umayya, AD 661~750 시대가 되자 이민족은 이슬람교로 개종해도 아랍인과 동등한 취급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는 아랍인과 이슬람교도는 세금이 면제되는 데 반해 피정복 민족은 개종과 상관없이 세금이 부과됩니다. 그러나 아랍인 중에서도 알라의 가르침에 반하는 이러한 강권정치에 불만을 품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우마이야 왕조는 무너지고, 750년 아부 알 아비스 Abu al-Abbas를 초대 칼리프로 하는 아바스 왕조가 드러섭니다. ... 이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이러한 평등한 세법이 이후의 이슬람 왕조에서 적용되었기 때문에 이슬람교는 전 세계로 확산될 수 있었고, 제국은 번영을 유지하게 됩니다. -154쪽
제국은 물리적인 힘으로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카이사르 당시의 로마제국이나 전성기의 이슬람제국처럼, 제국을 오래 존속시키기 위해서는 피정복민에게도 다소의 이점이 느껴지도록 하면서 지배하는 구조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158쪽
일본의 상속세는 할아버지에서 아들, 손자로 내려가면서 세금으로 거의 다 빠져나가고 없을 정도로 세율이 높습니다. 그러나 정치가는 2대, 3대 계속할 수 있습니다. -172쪽
이렇듯 문제가 많고 모순덩어리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라는 기관차는 도대체 왜 멈추지 않는 걸까요? ... 자본주의가 태생적으로 인간의 본성에서 비롯된 자연적인 시스템인데 반해 사회주의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179쪽
자본주의는 어떤 의미에서 '욕망'을 중시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인데, 여기에서의 욕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욕망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 다양한 욕망들이 모여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며 시나브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자본주의 시스템입니다. -180쪽
교육과 사회계급에 대한 고찰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의 사상은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부르디외는 돈으로서의 '자본'뿐 아니라 '사회관계자본'이라는 것이 있다고 지적했는데, 그 사회관계자본은 돈으로서의 자본 이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사회관계자본이란 간단히 말해 '인맥'을 말합니다. ... 또한 그는 '문화자본'이라는 말도 했습니다. 이것은 계층에 따라 좋아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컨데 그는 '구별짓기'라는 책에서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을 듣는 것은 계층이 높은 사람, 대중음악을 듣는 것은 계층이 낮은 사람, 하는 식으로 취미도 계층에 따라 차별화된다고 주장했습니다. -193쪽
사회주의의 실패를 러시아혁명(1919) 직후부터 예언한 인물이 있습니다. 앞에서도 소개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Max Webber, 1864~1920 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의 강연록을 바탕으로 출간된 '사회주의'는 1918년 6월 빈에서 오스트리아의 장교단에게 했던 연설을 정리한 것으로, 분량은 적지만 내용은 매우 탄탄한 양서입니다. 여기서 베버는 관료제의 필연적인 결과로서 사회주는 멸망할 수 밖에 없다, 라고 주장합니다.
==> 베버는 1920년에 죽고, 독일에서는 1919년 나찌가 집권하고, 소련은 1991년에야 망한다. 아무리 뛰어난 학자라도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는건가-204쪽
막스 베버는 '사회주의'에서 "관료제화는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에도 공통적으로 흐르는 역사의 필연이자 숙명"이라고 말합니다. ... 실제로 관료제는 시간이 경과하면서 더욱 고착될 수밖에 없고 종국에는 실패로 귀결됩니다. 사회주의에서는 무엇이든 국영화하면 관료의 감독 아래 놓이고, 생산은 국가에 의해 엄격히 통제되므로 공산당정부가 치밀하게 계획하고 추진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에 대해 베버는, 관료제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자본주의는 경쟁원리에 바탕을 둔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관려제에서는 능력보다 지위와 역할이 중시됩니다. 예를 들어 능력이 떨어져도 일단 어느 정도의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면 아무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이와 같은 능력의 부정은 사람들로부터 일할 의욕을 빼앗아갑니다. 노력하든 하지 않든 달라지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일단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른 사람은 제대로 된 성과를 내기보다는 자신의 지위를 지키는 일에 골몰하게 됩니다. -208쪽
이 책의(사회주의) 마지막 장에 역자인 하마시마 아키라는 해설-'사회주의를 둘러싼 베버의 사상과 행동'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습니다. "합리화는 관료제적 피라미드라는 거대한 미로로 귀결될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의 자유를 억압해 부자유를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고유의 숙명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에 의해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는 형태로 나타날 것이 틀림 없다고 베버는 생각한다."-210쪽
소련에서도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5년 동안 달성해야 할 목표와 구체적인 방법을 정한 뒤 사람들에게 일을 시켰습니다. 그 결과,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로는 5개년 계획이 대성공으로 끝났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하고 보고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거나 처형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숫자를 조작해 거짓보고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211쪽
자본주의를 자본가에 의한 착취라고 비난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이상국가를 만들려고 했던 결과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착취의 나라'로 만들어버렸으니 엄청난 모순이라고밖에 할 수 없습니다.-212쪽
소련도 북한도 한때는 자신들이 유토피아, 즉 꿈의 낙원을 지상에 건설하고 있다고 굳게 믿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마르크스, 엥겔스가 고안해낸 '공산주의' 사상, 그것을 현실에 구현하려 했던 레닌의 '사회주의'에서 목표로 내걸었던 평등은 인간사회를 위한 하나의 이상향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번 빠지면 헤어나올 수 없는 '개미지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헤어나올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정론'이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로부터 착취당하지 않는 평등한 사회, 이 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못되지 않았기 때문에 반론을 제기할 여지도 없습니다. 바로 이 '잘못되지 않았는데도 결과가 잘못되어 버렸다'는 점에 사회주의가 가진 '개미지옥'으로서의 공포가 숨어 있는 것입니다. -213쪽
(1차 세계대전 이후) 극도의 인플레이션은 독일 경제를 몰락으로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중류로 살았던 사람들은 하류로 내몰리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은 하층으로 밀려났어도 그들은 '우리는 하류층과는 다르다'라는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그 하류층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사회주의 혁명을 할 수 없다, 자신들은 더 좋은 삶을 살아야 하는 계층이다, 하며 하류층과 단결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중간층 특유의 계층의식을 간파하고 그 틈을 치밀하게 파고든 것이 바로 히틀러와 나치스였던 것입니다. -217쪽
히틀러의 선전에 관한 사고방식의 그의 저서 '나의 투쟁'에 다음과 같은 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선전은 모두 대중적이야 하며,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이 목표로 하는 대상 중 최하 부류까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조정되어야 한다. 그 지적 수준은 선전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인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조정해야 한다. 따라서 획득해야 할 대중이 많으면 많을수록 순수한 지적 수준은 그만큼 낮게 해야만 한다. 민중의 압도적 다수는 진지하고 냉철한 사고나 이성보다 감정적, 혹은 감상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여성적 기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복잡하지 않고 매우 단순하며 폐쇄적이다. .... 긍정 아니면 부정이며, 사랑 아니면 미움이고, 정의 아니면 불의이며, 참 아니면 거짓이다ㅏ. 반은 그렇고 반은 그렇지 않다든가, 혹은 일부분이 그렇다는 일은 없다. -223-226쪽
근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런(자연 숭배 신앙) 고대인을 미개하다며 경멸하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근대의 인류가 지구 환경을 무참히 파괴함으로써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이 생명에 위협을 받게 된 지금 오히려 그런 위대한 힘에 대한 겸손한 자세가 재인식되고 있습니다. -243쪽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역사를 만들기 시작한 때로부터 불과 4,5천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한 근대 합리주의가 등장한 지도 불과 몇백 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람의 마음이 다시 종교로 돌아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흐름인지도 모릅니다.-243쪽
중세의 교회는 '신에 대한 죄'라는 개념을 이용해 사람들의 성생활에 개입하고 최종적으로는 성을 단속하는 센터와 같은 존재가 되어갔습니다. 또한 그것으로 사람들이 범한 죄를 고백하게 하는 묘한 시스템을 만들어 '중세 세계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이러한 교회의 권력 침투 형태를 치밀하게 분석해 통렬히 비판합니다. 욕망이나 성적인 문제에서 가장 먼 곳에 있어야 할 성직자가 성적인 정보가 가장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그것도 비밀리에 다양한 성생활을 고백 받는 위치에 놓이게 됩니다. -2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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