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를 보았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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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인 바네사는 다른 아이들이 대화나 자유로운 독서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습득하는, 당장은 아무 필요 없는 잡다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없었다. 바네사가 아는 것은 거의 모두 공부를 통해 얻은 지식이었다. 이것이 들을 수 있는 아이들과 선천적으로 청각장애를 타고난 아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다. -35쪽

어떤 말을 들었을 때의 상황을 감안해서 말의 의미를 판단할 수밖에 없는 어린 시절에는 의미를 대략적으로 파악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평생동안 이렇게 대략적인 이해만으로 만족한다. 드 레페가 가르치는 청각장애인들은 다른다. 그가 학생들에게 감각적인 개념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은 하나 뿐이다. 그런 개념들을 분석하면서 학생들이 자신과 함께 분석하게 만드는 것. 그렇게 해서 그는 감각적인 개념에서부터 추상적인 생각으로 학생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드 레페의 행동언어가 우리 가정교사들의 소리 언어보다 얼마나 유리한지 우리가 직접 판단할 수 있다.-46쪽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이것은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 말을 하지 않고 수화만 사용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랬다가는 청각장애인들이 일상생활에서 오로지 다른 청각장애인들하고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수화 대신 말하는 법(과 입술 읽기)을 가르쳐서 청각장애인들이 일반 사람들 속에 완전히 섞여 들어가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말을 하는데에 방해가 되지 않게 수화를 금지해야 하지 않겠는가?-51쪽

말을 가르치는 것이 워낙 힘들어서 1주일에 수십 시간을 쏟아야 한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일반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말하기의 이점이 묻혀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결국 기껏해야 말하는 법을 한심하게 흉내 내는 수준에 불과한 문맹자를 키워내는 꼴이 되지 않을까? 사회적 통합과 교육 중에 어느 편이 더 나을까? 말하기와 수화를 결합시킨다면 이 둘을 다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그 두 가지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두 세계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만 끌어내게 되는 것은 아닐까?-52쪽

개들은 언어를 모르는 자신들의 상태에 완전히 만족한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반면 실어증 환장들은 심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그것은 조지프도 파찬가지였다. 조지프는 자시에게 뭔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 자신이 불구이며 결함 있는 존재라는 느낌에 괴로워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 조지피는 질문이라는 '개념'조차도 이해하지 못했다. ... 조지프는 '하루 전'과 '1년 전'을 구분하지 못했다. ... 조지프가 생각하는 삶에는 자전적인 요소나 시간적인 요소가 없어서, 오로지 지금 이 순간에만 삶이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70쪽

인간은 언어가 없다고 해서 머리가 없는 존재가 되거나 정신적으로 결함 있는 존재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생각의 범위가 심하게 제한되기는 한다. 사실상 자기 주위의 작은 세계만으로 한정되는 것이다. -72쪽

"생각은 말로 구현되는 순간 죽어버린다."는 쇼펜하우어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73쪽

마시외는 숲속을 걸으며 사물의 이름을 알게 됨으로써 세상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는 일반화의 힘을 처음으로 손에 쥐게 된 셈이다.
==> 에덴 동산 아담과 이브 놀이?-82쪽

언어 능력의 습득에 완전히 실패해서 언어라는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잇을 수 있다. 기독교 교회가 우리에게 일께워주고 있듯이 언어는 단순히 재주나 기술이 아니라 생각을 가능하게 해주고, 생각과 생각이 아닌 것을 구분해주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수단이다.
자신이 어떻게 언어를 '습득'했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아름다운 신화일 뿐이다. -97쪽

혼자서 언어를 습득할 수는 없다. 언어 능력은 독특한 범주에 속한다. 기본적으로 특별한 선천적 능력이 없으면 언어를 습득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능력을 활성화해줄 있는 것은 이미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다른 사람 뿐이다. -98쪽

비고츠키는 이것을 "인접한 발달영역"이라고 불렀다. 아기는 어머니가 먼저 다음 단계를 차지하고서 전해주지 않는 이상 다음 단계로 앞장서서 나아갈 수도 없고, 다음 단계를 상상하지도 못한다.-99쪽

많은 청각장애 어린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도 질문을 금방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명칭에 집착하며, 자기들이 내놓은 답에 '핵심적인 의미'를 담지 못한다. 그들은 인과관계를 잘 알아차리지 못하며 미래에 대한 생각을 내놓을 때가 거의 없다.
많은 아이들이 이렇지만, 전부 그런 것은 아니다. ......
질문하는 능력의 뿌리, 활발하게 탐구하는 기질의 뿌리는 자발적으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경험의 충격에서 직접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 뿌리는 대화에서 기인하며 대화를 통해 계속해서 자극을 받는다.-102쪽

현실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만의 방식으로 직접 '구축'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문화에 의해 조건화된다. 우리 언어가 우리의 세계관, 즉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고 구축하는 방식을 구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이것은 벤저민 리 워프가 내놓은 악명 높은 가설이다. -114쪽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일반 어린이들이 제1언어로 수화를 습득하는 경우, 소리가 들리는데도 시각이 놀라울 정도로 강화된다. 그들은 상당히 다른 형태의 두 가지 정신적 기능에 접근하거나 두 기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두 개의 언어만이 아니라 '두 개의 정신'까지도 구사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모른다. -152쪽

슐레진저의 설명에 따르면, 기능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청각장애인은 질문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뿐만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물건들만을 지칭할 뿐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나 우발적인 일들을 상상하지 못하고, 가설을 만들지 못하고, 상위의 범주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개념이 생기기 이전의 감각적인 세계에 갇혀 있다. -154쪽

최근 메릴랜드 주 프린스 조지스 카운티에서 교육실험이 있었다. 귀가 들리는 어린이들의 초등학교 1학년 교육과정과 유치원 교육과정에 수활를 도입한 것이다. 어린이들은 금방 수화를 습득할 뿐만 아니라 즐거워한다. 그리고 수화의 습득과 더불어 읽기를 비롯한 다른 분야에서도 실력이 크게 향상된다. 읽기 능력, 즉 단어와 글자의 형태를 인식하는 능력이 이렇게 향상되는 것은 수화를 학습할 때 나타나는 공간분석 능력의 강화에 동반되는 것일 수 있다. -158쪽

클레르크가 말하는 '하느님' '피조물' '자연'의 개념(겸손하고,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고, 온화하고 분노가 없다)은 아마도 그가 자신을 비롯한 청각장애인들이 남들과는 다른지만 그래도 완전한 존재라고 생각한 뿌리를 두고 있을 것이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의 반쯤은 끔찍하고 반쯤은 프로메테우스 같은 분노와는 크게 대조적이다. 벨은 언제나 청각장애를 속임수, 상실, 비극으로 보았으며 청각장애인의 '정상화', 하느님의 실수를 '바로잡는 것', 그리고 포괄적으로 자연을 '향상시키는 것'에 줄곧 관심을 보였다. 클레르크는 문화적 풍요로움, 관용, 다양성을 옹호했고, 벨은 기술, 유전공학, 보청기, 전화기를 옹호했다. 이 두사람의 유형은 완전히 정반대지만, 둘 다 이 세상에서 수행해야 할 몫이 있음은 분명하다. -210쪽

그 부소는 학생들에게 면접시험을 연습할 기회를 주겠다고 밝힌 곳이다. 원래 계획은 진짜 면접에 응해서 요령을 배우자는 것이다. 그래서 한 학생이 그 부서를 찾아가 자신의 이름을 명단에 올렸다. 그 다음날 그 부서의 여직원이 전화해서 그에게 면접 약속을 잡고, 통역도 구하고, 그를 태워줄 차도 수배해두었다고 말했다. ... 그녀는 학생이 왜 자기에게 화를 내는지 이해하지 못했따. 그가 그녀에게 말했다. "내가 면접을 신청한 것은 직접 사람들에게 전화를 거는 법, 차를 구하는 법, 통역을 구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인데 당신이 내 대신 그 일을 다 해줬잖아요.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213쪽

178P 갤러데트 이사회는 엘리자베스 앤 진서를 총장으로 선임했다.
진서 박사는 결국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녀의 행동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 같았다. 박사는 자신도 이사회도 이토록 열성적이고 헌신적인 시위가 일어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진서 박사는 -214쪽

[갤러데트의 교수가 한 연설]
갤러데트에 청각장애인이 최고경영자로 취임한 적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거의 모든 흑인 대학의 총장은 흑인이고, 이는 흑인들이 스스로를 이끌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거의 모든 여자대학의 총장 역시 여성이라서 여성들이 스스로를 이끌 능력이 있다는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갤러데트는 청각장애인들이 스스로를 이끌고 있다는 증거로서 이미 오래전에 청각장애인 총장을 선임했어야 합니다.-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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