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구판절판


이미 1881년 비스마르크는 오늘날의 복지국가라 부르는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하층 계급을 달래고 황제의 통치를 굳건히 하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가장 많은 인구를 차지하면서 가장 교육수준이 낮은 무산계급에게도, 국가란 필수적인 것뿐 아니라 복지까지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도록 해야 한다. 무산계급이 바로 혜택을 느낄 수 있도록 하여, 그들이 국가를 상류계급 사회만을 보호하기 위한 기관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와 이익도 대변하는 기관으로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스마르크가 통치한 독일을 선두로 유럽인들은, 미국의 정치체제가 그 비슷한 것이라도 생각할 준비를 갖추기도 전에 뉴딜과 같은 정책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특히 영국은 1908년 제한적이나마 노인연금법을, 그리고 1922년에는 국민건강법을 제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나름대로 특색 있는 초기 복지국가 모습을 갖춘 영국·독일·프랑스는 1930년대 후반의 미국이 사회보장제도 비용으로 지출했던 것보다 국내총산생 대비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52쪽

1920년대에는 부자들에게 세금이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소득세의 상한선이 24%에 그치고, 아무리 막대한 유산을 받아도 상속세는 20% 정도로 미미해서 부자들은 자신들의 왕국을 유지하는 데 아무 문제없었다. 그러나 뉴딜정책 이후 부자들은 1920년대와 비교해서도, 그리고 현재의 기준으로도 어마어마한 세금에 직면했다. 소득세 상한은 루스벨트 대통령의 첫 번째 임기 때는 63%까지 올라갔고 두 번째 임기때는 79%까지 올랐다(오늘날에는 35%). 1950년대 중반 미국은 냉전 비용 충당을 위해 91%까지 세금을 올렸다. -68쪽

게다가 이렇듯 고율의 세금은 눈에 띄게 줄어든 투기자본에 대한 수익에 부과되었다. 수익이 감소한 이유는 기업 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업이 가져갈 수 있는 이익이 감소했기 때문인데, 이는 기업 이익에 대한 평균 연방세가 1929년에 14%도 안 됐지만 1955년에는 45%까지 올라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다. 투자자본에 대한 수익에 의지 하는 사람들은 세금으로 많은 소득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재산을 물려주기가 점점 더 어려워짐을 깨달았다. 상속세의 상한율은 20%에서 45%로, 그리고 60%, 70%, 결국 77%까지 올랐다. 부가 분산된 데는 이런 세율도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1929년 미국의 부유층 상위 0.1%는 국부의 20%를 소유했지만, 1950년대에는 10% 정도에 그쳤다.-69쪽

1930년대에는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 중 10%를 조금 웃도는 정도만 노조에 가입했는데, 이는 현재 민간부문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과 비슷한 수치다. 공황이 발생한 초기 몇 년 간 노조원 수는 계속 감소해 1933년에는 최저를 기록했다.
그러나 뉴딜정책이 시행되자 노조원이 급증했고 노조의 힘도 강력해졌다. 노조원은 1933~38년 사이 세 배나 증가했고, 1947년에는 다시 그 두 배로 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 중 3분의 1 이상은 노조원이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임금도, 명백히 또는 은연중에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의 임금과 같은 수준으로 책정하거나 노동자들을 만족시켜 노조조직자들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을 정도로 정해졌다.-70쪽

루스벨트 행정부의 이념을 따르는 국가전시노동위원회가 마련한 규정은, 당연히 고소득 노동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시키는 경향이 있었다. 루스벨트의 지령에 따라 표준 이하 임금은 인상되어야 했고, 시간당 40센트까지(지금으로 치면 시간당 5달러와 같다) 고용주들은 위원회 승인 없이 임금을 마음껏 올릴 수 있었고, 시간당 50센트까지는 지역 국가전시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올릴 수 있었다. 반대로 그 이상 임금을 인상할 경우 정부 승인을 받아야만 했다. 따라서 고소득 노동자들보다 저소득 노동자들의 임금을 먼저 올리려는 경향이 있었다.-74쪽

1936년 대통령 선거 하루 전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연설을 접하게 된다면 요즘의 진보주의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소심하며 예의바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요새 최저임금 인상 또는 부유층의 세금 인상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부에 대해 나쁜 감정은 없으며 계급투쟁을 선포하려는 것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확실히 납득시켜야 한다. 그러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막대한 부를 죄인 취급하며 전면적으로 비판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적, 즉 산업과 금융 분야의 독점, 투기, 분별없는 은행의 관행, 계급 간의 대립, 파벌주의, 전쟁으로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들과 투쟁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미국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조직적으로 조성된 자금 위에 세워진 정부는 조직범죄단이 만든 정부만큼 위험한 법입니다.
미국 역사상 그들이 지금처럼 한 후보에 대항해 이렇게 힘을 모은 적이 없습니다. 그들 모두는 저를 증오합니다. 그러나 저도 그들과 싸울 준비가 돼 있습니다."-83쪽

남부 정치인들로서는 가난한 백인들에 대한 의료혜택 제공보다 백인들의 병원으로 흑인들이 오지 못하도록 하는 일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94쪽

다시 말해 드수자는 40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부류로 보수주의 제도권 안에서 경력을 쌓고 출세한 직업적 보수주의 지식계층이었던 것이다.-153쪽

만약 빌 게이츠가 어떤 술집에 들어가면 그 술집 고객의 평균 재산은 급상승할 것이다. 그렇다고 그 술집에 이미 앉아 있던 고객들이 실제로 더 부자가 된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그룹에서 아주 부자이거나 가난하지 않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재산에 대해 얘기할 때 일반적으로 평균소득이 아니라 소득의 중앙값을 언급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소득의 중앙값이란 모집단의 반은 그 값보다 소득이 많고, 나머지 반은 그 값보다 소득이 적은 값을 말한다. 그 술집 소득의 중앙값은 평균소득과는 달리 빌 게이츠가 들어왔다고 상승하지 않는다.-160쪽

한때 CEO들의 과도한 보수를 비난하던 언론사는 이제 CEO들의 경영이 천재적이라고 야단이고, 한때 대중들을 선동해 덩치만 크고 비효율적인 기업을 비난하던 정치가들은 이제 선거자금을 기부하는 이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없으며, 한때 엄청난 임원진들의 보너스에 반대해 파업하던 노조는 이제 계속되는 탄압으로 온데간데 없어졌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다. 소득세 최고한계세율이 1970년대 초 70%에서 현재 35%로 줄어들어 현재의 CEO들에게는 더욱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더 많은 소득의 일부를 세금으로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상위층에서 소득 불균형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84쪽

1990년대 말 부시의 세금 감면조치 이전에는 죽은 사람들 중 상속세를 내야 할 만큼 재산이 많은 사람은 전국민의 2%에 불과했다. 소득에서 상위 1%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3분의 2를 내고, 상위 10%에 속하는 부유층이 상속세의 96%를 냈다.-205쪽

극우적 견해를 쓸모없는 불평이나 하면서 낭비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길 수 있는 전략으로 바꿀 수 있었던 능력이 보수주의 운동을 지원하는 조직들을 만들 막대한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알고 있는 '거대한 극우 보수주의의 음모'다.-218쪽

메디케어가 보장하는 내용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지만 메디케어를 지원하기 위한 세금은 대부분 소득에 비례하여 부과되기 때문에 전체 인구의 25%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서만 거둔다. 미국은 소득 면에서 워빈곤 호수(Lake Wobegon, 미국의 가상마을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이상향 - 역주)와는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기억하라. 국민 대부분의 소득수준이 평균 이하다. 따라서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복지혜택을 준다면 국민 대부분에게 괜찮은 거래처럼 보일 것이다.-220쪽

토머스 프랭크(Thomas Frank)는 2004년 발간된 자신의 저서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나?>에서 노동자계층의 유권자들이 후보들의 난해한 연설에 얼마나 쉽게 속아 넘어가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을 아래와 같이 묘사했다.
"술수는 언제나 먹혀들고 환상은 통하지 않는 법이 없다. 낙태 금지를 위해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자본이익에 대한 세금인하 혜택을 누리십시오. 미국이 다시금 강력해지도록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탈산업화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정치적으로 옳은 말만 하는 대학교수들을 무시하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전력산업규체 축소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는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언론에서부터 육류가공까지 대기업화되고 독점화된 서비스의 혜택을 누리십시오. 테러리스트들에 당당하게 맞서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민영화 혜택을 누리십시오.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데 투표하십시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부가 집중되고, 노동자들이 힘을 빼앗기며, CEO들이 상상 이상의 보수를 받는 사회체제를 누리십시오." - 계속 --223쪽

이 내용이 얼마나 진실과 가까울가? 나는 처음 프랭크의 책을 접했을 때도 꽤 놀랐지만 지금도 그의 책은 얼마나 보수주의 운동이 기발하게 감정적인 문제를 이용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선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는지를 너무나 훌륭하게 묘사한 글이라고 생각했다.-224쪽

만약 모든 국민들이 의료보험을 받을 권리가 있다면 고위험 고객을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 없을 것이다. 만약 정부 공부원이 보험을 관리한다면 누가 치료비를 내야 할지 싸울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치료가 보험약관에서 보장하는 항목에 해당한다면 정부는 그 비용을 지급할 것이다. 결과적으로 정부의 의료보험제도는 민간의료보험보다 불필요한 행정절차가 훨씬 줄어들고 관리비도 훨씬 적게 들 것이다. 예를 들어 메디케어는 재원의 약 2%만을 관리비 명목으로 지출한다. 민간 보험사의 경우에는 관리비용이 15%에 이른다. 매킨지 글로벌의 2003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 의료보험업계와 외국 정부가 운영하는 보험제도의 관리비를 비교한 결과 미국이 부담하는 추가 비용이 거의 840억 달러에 달한다고 했다. ...... 미국과 캐나다의 의료체계에서 이런 기타비용을 비교한 결과 미국의 총관리비는 (보험사와 의료기관 모두에게 드는 비용) 의료비의 31%인 데 반해 캐나다는 17% 미만이었다. 총관리비를 돈으로 환산하면 3,000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미국과 캐나다 간의 의료비 지출액 차이의 3분의 1에 해당한다.-281쪽

보수주의 운동이 볼 때, 가장 위험한 정부정책은 운영이 잘 되어 복지국가가 국민의 인정을 받게 되도록 만드는 제도다. -289쪽

그러나 워런과 티아기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실제로 1970년대에 비하면 중산층 가정의 사치스러운 지출은 줄어들었다. 빚이 늘어난 이유는 주로 집을 장만하기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하기 때문이며 이는 좋은 학군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이 심하기 때문이었다. 미국 중산층은 욕심이 많거나 멍청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녀에게 점점 더 불평등해지는 사회에서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어쩔 수 없이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좋은 곳에서 시작하지 못하면 자녀의 미래는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312쪽

"결과가 평등한 것보다는 기회의 평등이 중요하다"는 말은 그럴 듯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다분히 허구적인 주장이라는 것이다. 불평등한 결과가 대단히 많은 사회는 어느 정도 기회도 불평등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정말 모든 국민들이 출발선에서 똑같은 기회를 가져야 마땅하다고 믿는다면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무언가를 하자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314쪽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클린턴 시절에 39.6% 밖에 되지 않았던 반면 1970년대에는 70%였고, 1981년 레이건의 감세조치 이후 50%였다. 상류층에 대한 세율은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봐도 낮다. ...... 결과적으로 영국에서 최고소득층은 거의 48%에 달하는 세율을 적용받는 셈이다. -325쪽

고용에 관해 좀더 알아보기 위해, 미국 최고의 노동경제학자인 버클리의 데이비드 카드(David Card)교수와 프린스턴의 앨런 크뤼거(Alan Krueger) 교수의 대표적인 연구를 살펴보면, 미국에서 최저임금을 인상한 정도로는 실업이 늘지 않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들이 내린 결론은 거센 비난을 받았는데 이는 경제학 원론과도 상충되고, 이념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모든 실증연구 자료등에 따르면 실제로 조정 가능한 최저임금 인상폭 정도로는 실업률이 심각하게 증가하진 않을 것이라고 한다. ...... 동시에 최저임금인상은 저소득층 임금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경제정책 연구소(Economic Policy Institute)'는 미국 노동인구 중 소득 최하위층 10%에 해당하는 1,300만 명의 노동자들이 얼마 전 법제화된 최저임금인상안의 득을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32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