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천은 세종 때의 명정승 황희의 후손이자 임진왜란 때의 이름난 장수 황진의 10대 후손이었다. 진주성 싸움에서 죽어 나라에 보답한 장수의 의혼이 매천의 피에도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망국의 소식을 듣자 비탄에 빠진 선비 황현은 참다운 선비가 어려운 시절에 어떻게 처하는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선비정신의 본질을 보여준 매천의 자결이었다. 그의 짤막한 [유서]는 떨리는 손으로 씌어졌다.
"내가 죽어야 할 의리는 없다. 다만 나라에서 선비를 양성한지 500년인데, 나라가 망하는 날에 한 사람도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사람이 없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으리오.
나는 위로 하늘에서 받은 떳떳한 양심을 저버리지 못하고 아래로 평소에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저버리지 않으려 눈을 감고 영영 잠들면 참으로 통쾌함을 느끼리라. 너희는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지어다."
그의 [유서]는 비장하기보다는 오히려 담담해 선비의 일상적인 담론처럼 보인다.-4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