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폭력의 기원 - 폭력의 동물적 기원을 탐구하다
야마기와 주이치 지음, 한승동 옮김 / 곰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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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살인 가해자의 남녀 비율은 84:16이다. 상식에 반하는 특이한 통계는 아니다. 남성의 Y염색체가 폭력과 관련이 있나 생각도 해봤는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어머니들의 폭력을 생각하면 그냥 인간에게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는거 같다. 자연계에서 볼 때 폭력이 인간에게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행태는 아니지만, 인간의 폭력은 전쟁이라는 특이성을 가져왔다. [인간 폭력의 기원]이라는 책에서는 생물학상 인간의 친척 뻘인 영장류들을 통해 인간의 폭력은 어디에서 왔는가를 탐구한다.

 

생물은 먹이와 이성을 두고 같은 종끼리 싸운다. 먼저 먹이에 대해 알아보자. 속씨식물과 겉씨식물의 대결에서 속씨식물은 크게 승리한다. 속씨식물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1등 공신은 곤충이고, 초기 영장류는 나무 위를 뛰어다니며 이 곤충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속씨식물은 영장류가 자신의 씨앗을 널리 퍼트릴 훌륭한 아군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영장류와 함께 공생 관계를 거듭한다. 보통 곤충이나 과일을 먹는 영장류는 한 곳에서 먹을 수 있는 양이 적기 때문에 넓은 범위를 돌아다녀야 한다. 잎을 먹는 영장류는 좁은 범위에서 대량으로 얻을 수 있지만 소화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때문에 보통 곤충을 먹는 영장류는 작고, 잎을 먹는 영장류는 크다. 이런 먹이의 차이는 영장류의 사회성을 결정하게 된다. 사람은? 알다시피 곤충, 풀, 과일, 고기 등 거의 모든 동식물을 음식으로 먹을 수 있다. 애매하다.

 

짝짓기 형태는 어떨까? 짝짓기 형태는 크게 3가지로 복수 수컷 - 복수 암컷, 단일 수컷 - 복수 암컷, 단일 수컷 - 단일 암컷이다. 짝짓기 형태를 쉽게 알아보는 방법은 수컷의 고환 크기다. 고환의 크기에 따라 난교냐 일부일처냐가 정해지는데 사람은 어느쪽일까? 사람은 딱 중간이다. (사람과 비슷한 고환을 가진 영장류로는 오랑우탄이 있다.) 이번에도 인간의 행태가 애매하다.

영장류 뿐만 아니라 포유류에서 꽤 많이 보이는 수컷들의 행태가 있다. 새끼 살해다. 특히나 영장류의 경우에는 임신 - 육아 기간이 길다. 대다수의 포유류는 수유하는 동안 임신이 되지 않는다. 때문에 자신의 새끼를 임신시키기 위해 수컷들은 다른 집단의 수컷을 쫒아내거나 살해한 후 싸움에 진 수컷의 집단에 속해있던 암컷들의 새끼를 살해한다. 새끼들이 살해당하면 암컷들은 곧 가임기가 되고 싸움에 이긴 수컷의 새끼를 임신한다. 새끼 살해를 방지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난교를 통해 누가 아빠인지를 모르게 하는 방법이고, 또 하나는 니가 아빠니까 책임지고 키우라는 방법이다. 사람은? 역시나 생물학적 특징들이 조금씩 섞였다.

 

영장류로서 위치는 애매했지만 역사적으로 분명 사람은 숲을 나와 초원으로 진출했다. 포식자가 즐비한 초원에서, 네안데르탈인 등을 비롯한 여타 사람속(homo)들을 멸종시키며 끝까지 살아남았다. 어떤 특징이 사람과 영장류를 구분했으며, 생존할 수 있게 했을까? 사람은 누군가 먹을 것을 구하면 정치적 고려 없이 모두 함께 식사를 한다. 사람-암컷은 새끼를 많이 낳았고, 사람-수컷들은 새끼 살해를 하지 않았다. 가족-씨족으로 큰 무리를 만들어서, 새끼들은 공동 육아를 하며 키웠고, 아이가 자라면 모두 함께 교육시켰다.

 

그런데 이런 사람의 고유한 특징인 공동 식사, 공동 육아 등이 무너지고 돈, 종교, 민족이라는 것들이 사랑하는 이와 믿음을 나눠 가질 수 없게 만들었다. 초조와 안달을 과잉 표현하게 되면서 인간은 폭력적이 되었다.

48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1988년에 <사람이 사람을 죽일 때Homicide>라는 책을 썼다. 그들은 여러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을 성, 연령, 상황 등에 따라 분류하고 사회생물학적 견지에서 분석을 시도했다.

그 결과 대체로 어떤 문화에서도 살인자는 남성이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전반 나이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64p 속씨식물은 지금으로부터 1억 년 전에 온갖 환경에 적응해 다양하게 분화하는 적응 방산을 시작해 그때까지 지구 위를 덮고 있던 겉씨식물(나자식물)을 고위도 지방으로 밀어냈다.

그 번영을 떠받쳐준 것은 곤충(벌레)류다. 곤충류는 3~4억 년 전에 지구상에 등장한다. 그들이 다양해진 것은 1억 년 전인 백악기 중기인데, 속씨식물의 다양화와 일치한다.

65p 최초의 영장류는 나무 위에서 곤충을 잡아먹은 것으로 보인다.

81p 나무 위 생활은 입체적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발달시켰다. 3차원 공간에서 먹이, 동료, 외부 적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입체적인 시각이 불가결하다.

이 능력을 높이기 위해 눈의 위치가 얼굴 옆면(측면)에서 앞쪽(전방)으로 이동했고, 콧등이 뒤로 들어가 양 눈의 시야가 대폭 겹칠 수 있게 됐다.

영장류에서는 두 눈에서 같은 것을 포착해 시야에 있는 사물들의 거리를 눈으로 잴 수 있다.

...... 영장류가 색채를 감지하는 시각을 획득한 것은 식물의 유익한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82p 영장류의 먹이는 곤충, 과일, 잎으로 크게 나뉜다. 고기를 전문적으로 먹는 영장류는 없다.

곤충이나 과일을 주로 먹는 영장류는 하루 종일 먹으면서 걸어 다니는 경우가 많다. 어떤 시간대에 먹을지 또는 쉴지 분명하지 않다.

잎을 즐겨 먹는 영장류는 먹은 뒤에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낟. 아침과 저녁에 먹는 시간이 잡중돼 있고 정오 가까이가 되면 휴식과 소화에 시간을 보낸다.

곤충을 먹는 종은 작고 잎을 먹는 종은 크다. 과일을 먹는 종은 그 중간 크기다.

잎을 소화하는 데는 큰 소화기관이 필요하고, 큰 몸집은 독성의 강도를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다.

88p 식물은 기껏해야 태양 에너지의 2% 정도밖에 흡수하지 못한다. 다음에 식물을 먹는 동물(1차 소비자)은 식물이 흡수한 에너지의 10% 밖에 이용할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을 먹는 육식 동물(2차 소비자)은 또 그 10% 밖에 이용 할 수 없다. ...... 이것이 먹이연쇄 상층부의 동물 수가 극단적으로 적은 이유다.

135p (영장류를) 실제로 조사해 보니 영토를 갖는 것은 단독생활이나 짝 생활을 하는 종에 국한돼 있고 단일 수컷-복수 암컷 구성을 보이는 종의 활동 영역은 이웃 무리들과 중복돼 있었다. ......

영토를 갖지 않는 것이 무리들 간의 평화로운 관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영토는 개체 간, 무리 간에 서로 지역 점유를 인정해 줌으로써 공존하는 방법이다.

164 교미를 통해 암수 간에 친밀한 관계가 만들어지고 이윽고 그 친밀감이 교미를 저해하게 된다. .... 근친 사이의 교미 회피도 혈연을 인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친밀한 관계를 만든 것이 그 원인이라는 얘기다.

교미기에 들어가면 발정한 암컷을 향한 수컷의 공격 행동이 증가하는데, 털 고르기와 반대로 서로 공격을 가한 암수 사이에는 교미를 하는 사실이 확인됐다.

195 침팬지나 고릴라에서는 일본원숭이처럼 서열이 높은 원숭이에게 공격을 받으면 자기보다 낮은 서열에 있는 원숭이를 공격함으로써 그것을 서열이 낮은 이에게 전가하는 행동은 찾아볼 수 없다. 발생한 갈등은 반드시 그 당사자들 사이에서 종결되고 다른 원숭이들에게 파급되는 일이 없다.

인간들 사이에는 공격당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마구 화풀이를 하거나 자기보다 약한 이이게 공격의 화살을 돌리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사회에서도 부당한 행위, 부끄러워해야 할 행위로 간주된다.

219 유성생식을 하는 동물에게는 먹이 외에 동료와 큰 갈등을 경험하게 만드는 대상이 있다. 바로 짝짓기 상대를 둘러싼 갈등이다. 그러나 먹이와 달리 짝짓기 상대는 나눌 수가 없다. 애초에 상대를 소유하는게 불가능하다. 소유할 수 없으니 분배할 수도 없다. 영장류는 이성을 둘러싼 갈등을 4가지 방법으로 해결하려 해 왔다. ①각자의 영토로 거리를 유지한다. ②수컷이 단독으로 암컷을 차지한다. ③서열 차례에 따라 이성에 대한 접근권을 인정한다. ④ 난교를 허용한다. 물론 중간형도 있다.

256새끼 살해가 일어나는 종은 암컷이 무리 바깥의 수컷과 교미를 하지 않는 특징이 있다. ... 고릴라의 경우는 수컷이 무리를 옮겨 다니지 않고, 다른 수컷에게 자신의 무리를 점령당하는 경우도 없다. .. (257) 발정에 계절성이 없고 암컷이 일제히 발정을 하지 않는 다는 점도 새끼 살해가 일어나는 종의 특징이다. 교미기가 따로 있다면 설령 새끼 살해를 하더라도 암컷은 교미기가 될 때까지 발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발정을 앞당기는 효과는 없다. 또한 암컷들이 일제히 발정하면 난교적 경향이 강화돼 수컷은 암컷과 독점적으로 짝짓기를 할 수 없다. ...(258) 카렐 반 사이크 등은 거기에는 두 가지 방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수컷이 새끼의 부성父性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성과, 부성을 혼란시켜 어느 수컷에게나 부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방향성이다. 전자는 수컷이 암컷과 독점적으로 교미를 할 수 있는 길로, 후자는 완전한 난교로 이어진다.

262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폭력이나 유아 학대는 유인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복잡한 인간관계가 그 원인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거기에 성 문제가 얽혀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304 본래 공동체란 가족의 연장이며, 나눠 갖는 정신을 토대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얼굴이나 개성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수는 대체로 150명을 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11 인간의 사회성을 떠받치고 있는 근원적 특징은 공동 육아, 공개적인 식생활과 함께 먹기共食, 근친상간의 금지, 대면對面 커뮤니케이션, 제3자의 중재, 언어를 이용한 대화, 음악을 통한 감정 공유 등이다.

318 이 책은 그것이(인간은 자신의 문화를 강요하고, 그것이 안 되면 외적이나 무법자 취급을 하고, 저항하면 때로는 말살 대상으로 삼는다.) 도대체 어떤 인간성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를 유인원이나 다른 영장류와 조상을 공유하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살펴본 것이다. 유인원과 진화의 길이 갈라지고 나서 인류가 큰 성공을 거둔 원동력이 된 능력이 지금은 인간에게 절멸의 위기를 안겨 주고 있다. 바로 집단의 힘이다. 가족과 집단을 동시에 편성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간은 타자에 의존해 살아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 타자는 지금 이름도 얼굴도 없는 가공의 사람이 돼 버렸다.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게 됐지만, 누구에게 기대어 살고 있는지는 모른다. 그런 가운데 자기 탐색의 공허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 현대의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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