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제출하지 못했다. 거창한 관념 몇 가지 ― 역사적 진실의 허약성, 인격의 허약성, 종교적 믿음의 허약성 등 ― 를 산만하게 집적거렸지만 한두 문단 이상을 쓴 기억은 없다. 그런 것 대신 나의 관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인간관계의 허약성과 결혼의 허약성이었다. 나는 이혼한 지 두 해쯤 되어가고 있었으며 깨끗한 법적 결별이라는 관념이 미망임을 발견하고 있었다. 상처, 원한, 경제적 고통 ― 이 모든 것은 계속된다. 또 아무리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 해도 변호사의 간단한 편지 한 통, 새 상담사와 한 번의 만남, 아이의 장래를 두고 어른스럽게 토론하기로 하고 한 번 만난 것으로도 강박에 사로잡히고 복수심에 불타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 ― 다른 말로 제정신을 잃기 ― 십상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통은 덜어주겠다. 나 자신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고통을 덜어주고 싶기 때문에.

나는 대담한 사람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대담한 걸로 오해될 수도 있는 결정들(결혼, 이혼, 혼외자를 둔 것, 한동안 외국에서 산 것)은 사실 신경과민이나 겁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우리 삶에서, 그 철학자가 선포한 대로,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해볼 수 없으며, 자유와 행복이 이 두 범주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 달려 있다면 내 인생은 그런 철학적인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나 자신이 통제하에 있다는 생각과 모든 것이 가망 없고 나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 버렸다, 이해와 삶 양쪽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깨달음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아마도.

앞서 말한 대로 그녀는 어떤 면에서도 공적 인물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기질로 보나 적성으로 보나 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우리 동기들이 처음에 그녀에게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아보았다. 어떤 경외감, 초기의 꽤 많은 침묵과 어색함, 어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재미. 그 모든 것이 곧 진짜 온기로 바뀌었다. 또 그녀를 보호하는 듯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세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고결함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심 쓰는 척하는 태도와는 상관없었다.

그녀와 직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겠는가? 아니, 이것도 모욕이다, 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 말은, 나에게, 또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을 주도하거나, 심지어 동등한 자리에 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겠느냐는 거다. 그녀가 그걸 교묘하게 조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 그녀는 내가 만나본 여자 가운데 그런 교묘한 조종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 더 넓게, 다른 지평과 초점으로 사물을 검토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바라건대는, 내가 왜 그녀를 흠모했는지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또 나는 그녀가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사실을 흠모했다. 내가 이런 말을 안나에게 했을 때 ― 딱 그대로 ― 그녀는 나를 지적인 마조히스트라고 불렀다. 나는그 딱지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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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우리에게 한 가지 가르쳐준 게 있다면 역사는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서 역사는 무기력하게 혼수상태로 누워 우리가 크고 작은 망원경을 들이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활동적이고 들끓고 가끔 화산처럼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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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진보가 도덕적 혜택을 가져올 거라고 가정합니다만 철로는 아무런 혜택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도 그러겠죠. 도덕적 혜택은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비도덕이 늘어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경이로운 테크놀로지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에요. 기차는 식량을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똑같이 총, 또 총알받이를 더 빨리 전선에 가져다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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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나고 알게 된 것에 더 감사했다. 실제와 비교할 때 영 부실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우리는 삶에서 늘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삶에서 행운의 평균 할당량이 얼마인지 또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 이것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고, 또 어차피 여기에 "얼마가 되어야 한다" 같은 건 없는 게 분명하다 ― 그녀가 나의 행운에 속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우리의 충동, 욕망, 혐오 ― 간단히 말해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 ― 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우리의 소유나 평판이나 공적 직책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것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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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생각하는 것"은 더 진실하고 깊은 생각을 낳기보다는 하나의 통념idee recue을 다른 통념으로 대체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이라는 것 ― 그렇다 해도 그 과정은 그 자체로 귀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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