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자는 어떤 존재인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연대자로서의 나를 피해자의 그림자로 표현한다. 그림자는 본체에 가려져 있다. 따라서 내가 하는 연대의 기본은 본체인 피해자의 의사를 중심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림자는 그 길이와 방향을 통해 본체가 시간과 위치를 파악하도록 돕는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해 때로는 전략을 수립하고, 특정 방향을 선택하도록 권하며, 앞으로 나서기도 한다.

피해자가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 방법을 선택하며, 이후 피해 회복과 일상 재구성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연대자가 언제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연대 방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나는 피해자가 문제를 인식한 후 그것을 해결하는 과정에 집중적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사법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따라서 내 모든 연대는 법적 책임을 전제로 한 것이기도 하다.

사랑받는 연대자보다 인정받는 연대자가 되고 싶다. 오해와 원망을 직면하고 풀어가도록 노력하되, 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범위를 설정하고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결국 거리 유지는 피해자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연대자로서 내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연대자의 정체성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고민을 앞두고 우선 기록을 시작하려 한다. 유연하고 연속적인 연대를 위해서라도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더 많이 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한 피해자들 중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록을 통한 연대를 선택한 이들이 있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그림자인 내가 전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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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방어적이었던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 했다. 또한 여러 공소사실 중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 대해, 어떻게 해야 유죄를 인정받을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다들 안 된다고 하니 불안해했다. 피해자가 다수였다는 점에서 그들만의 싸움이 아니었기에 부담감도 있었을 거다. 피해자들이 다수인 사건에서는 처리에 대한 피해자들의 의견이 많이 갈리는데, 그 갈등을 수습하고 봉합하는 역할을 일부 피해자가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H씨와 J씨는 그런 역할을 맡아 수사 과정에서부터 줄곧 다른 피해자들을 독려하며 재판까지 끌고 왔기에 많이 지친 상태였다. 서운하기도 했을 것이다. 버거워서 다 던져버리고 숨어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싸움을 선택했다. 내가 할 일은 그 선택이 최대한 그들의 바람대로 되도록 조력하는 것이었다.

본인이 등장하는 피해 영상을 보며 그 영상 속 인물이 본인임을 설명하고, 해당 영상이 어떤 식으로 편집되었는지 프레임별로 잘라 분석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받을 고통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수사 과정, 아니 최소한 1심에서 검사가 영상 속 인물이 피해자와 동일 인물이고 그 영상이 편집본임을 상세히 분석해 입증했다면 피해자가 이런 추가적인 고통을 받았겠는가? 검찰이 할 일을 제대로 했으면 물증까지 확보했던 건에서 무죄가 선고되었겠는가? 왜 피해자가 입증까지 해야 하는가? 물증 확보가 가능한 디지털 성범죄조차 이런 식으로 가면 어떤 피해자가 사법 시스템을 선택하려 하겠는가?

피해자들의 개입이 없었다면 이 재판은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그리고 이러한 연대나 지지기반이 없는 피해자들은 과연 사법 시스템에서 온전히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가해자의 범행은 과거에 있지만 피해자의 고통은 현재에 있다." H씨가 쓴 탄원서 내용의 일부다

밝고 찬란한 그의 미소가 좋으면서도 지난 시간이 떠올라 마음속에서 무언가 울컥 솟아올랐다. H씨는 자신이 싸움을 하던 그 시간은 결코 ‘공백’이 아니었다고, 의미 없이 날리는 시간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싸움이 온전히 종결된 것도 아니지만, 그는 하나하나 자신의 삶을 다시 만들어가고 있다. 서로의 근황을 전하고, 또 다른 싸움을 할지 논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간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H씨와 J씨가 이 모든 과정을 복기하느라 고통스러울 것임에도 나와 계속 연락하는 이유, 인터뷰에 응하고 사례로 언급되는 것을 허락하는 이유는, H씨가 말하듯 피해자들이 싸운 시간이 ‘공백’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가 아닐까. 그래, 나는 이런 피해자들의 마음을 안고 연대한다.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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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생활의 무게가 나의 존재를 지탱해 주었다면, 이제는 그보다 더 본질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일상에만 머물러서는 이곳에서의 시간이 금방 소모되어버릴 것 같았으니까.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면 이제는 위로 뻗어 올라가야 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를 새로 세우는 계획을 세워보고 싶었다. 삶의 여러 면을 조금씩 확장해보는 프로젝트.

나는 듣기(리스닝)와 읽기(리딩)에만 최적화되어 있는 보통의 대한민국 1990년대생 수능 세대였다. 본격적으로 ‘말하기(스피킹)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그동안 영어에 투자한 시간과 돈이 얼마나 되는데, 표현하고 싶은 고작 한 문장을 말하는 데에 그보다 더 큰 에너지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이때 필요한 건 뻔뻔한 마인드다.

그 다음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이것이 필요했다. 진정한 독립은 경제적 독립에서 출발할 테니까. 결혼했다고 끝이 아니다. 각자가 온전히 1인분의 몫을 하는지의 여부가 여기에서 결정된다. 자아실현이라는 거창한 명분 이전에, 남편과 동일한 종류의 워킹비자의 유용함을 발휘하겠다는 야무진 다짐 이전에, 말 그대로 내 통장에 쌓일 월급을 벌어야만 했다. 당장 카페에서 커피를 살 수 있고, 커뮤니티 형성을 위해 지출해야만 하는 최소한의 실질적인 소득이 절실했다.

비록 저축으로 모아둔 통장 속 숫자는 조금씩 적어졌지만, 내 돈을 아껴 내 자존감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일단은 돈으로 내 자존감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

내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의 영역은 제한적이었다. 자격증이나 이곳에서의 학위, 업무 경험을 크게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업이 그나마 적당해 보였다.

언어를 배우고 돈을 벌고… 이제 다음 과제는 바로 친구를 만드는 일이었다.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이건 일을 구하는 노하우를 얻는 일보다 더 어려워 보였다. 돈으로 친구를 매수할 수는 없지 않는가? 그러니 언어도 어설프고, 신분도 어정쩡한 이방인을 누가 기꺼이 친구로 받아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이 도시에서 나만큼 관계가 간절한 사람이 또 있을까 싶었다.

또다시 나라는 사람의 쓸모를 증명해야만 했다. 그것도 훨씬 난도가 높은 상황에서 말이다. 제네바에서는 한국에서 이력서에 적힐 법한 스펙은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직관적으로, 지금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내세워 사람을 모아야만 했다. 뭐가 있을까? 정답은 가까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이라는 점이었다.

외국어 공부, 취업, 친구 만들기. 다방면의 명품 되기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의 진지한 태도는 나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되었고, 나는 이 만남이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 예감했다. 비록 처음 만난 사이일지라도, 어떤 밀도 높은 대화는 나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다른 언어권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의 융합만으로도 새로운 지식과 문화가 교환되는 장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기대 이상이었다.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나는 새삼 깨달았다. 진짜 성장은 겉으로 드러나는 성취가 아니라, 언어와 문화, 경제와 사회라는 서로 다른 축들이 안쪽에서 단단히 맞물릴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본질에 투자하는 과정이야말로 나를 지탱할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는 지금 이 소중한 시간들을 단순한 경험의 나열로 두지 않고, 삶의 토대를 깊이 다져가는 기회로 삼기로 했다.

증명할 것이 없고 가진 것이 부족할수록,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크면 클수록, 더욱 그럴듯하게 보여야 한다.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아 스스로 새로운 삶을 창조했다고 말한 프랑스 디자이너 가브리엘 샤넬의 말처럼 말이다. 고아원에서 자라며 세상의 벽이 얼마나 높고 차가운지 누구보다 일찍 알아버린 샤넬은, 그래서 남들보다 더 절실하게 위로 올라가고 싶었기에 그럴듯해 보이는 법부터 연습했다고 한다.

잘 안 풀리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겨버리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그런 기억들은 오래 머물지 않는다. 너무 하나하나 따지고 기대하다 보면, 오히려 손익 계산이 철저해져 손해 보는 것이 두려워 이런 행동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전해볼까 말까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런 지출이 없는 건,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다.

있는 척이 아니라, 결국 ‘있게 된’ 사람으로.

새 공유오피스에서 나는 본격적으로 인맥을 쌓아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사람들에게 가장 직접적이며 직관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겉으로 보이는 외모였다. 눈·코·입이 예쁘게 생겼다거나 날씬한 몸매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관리가 잘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

인생이란 결국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자신만의 확신의 범위를 온몸으로 부딪히며 넓혀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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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잘 살고 싶은 열망은 언제나 가득했다.

새로운 세계를 또다시 열어보라는 기회를 맞닥뜨린 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라고 믿었다. 난생처음 가본 스위스 제네바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하게 된 서른하나의 삶을. 한국에서 14시간을 날아 도착한 낯선 곳, 이전의 별거 없던 삶이 그리워 쉽사리 돌아갈 수는 없는 거리였다. 어쩔 수 없이 친 배수진은 운명론에 무게를 실어주었다. 불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그들의 대화를 오직 눈빛과 손짓으로만 짐작해야 했다. 말이 지워진 자리에서 관찰은 깊어졌고 감각은 더욱 섬세해졌다. 그 누구도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그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할 필요가 없는. 그렇기에 온전히 통제 가능한 변수들의 조율을 통해 새로운 삶을 실험해보기에 완벽한 조건이었다.

낯선 곳이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그곳에 머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실험에서 예상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없는 것처럼 무수한 시행착오가 존재했다. 언제까지나 관찰자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태평하게 관조할 수만은 없었다. 이미 형성된 그들만의 견고한 울타리를 넘어가 자연스레 어울리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것들을 바꾸고 이해해야만 했다.

어쩌면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건, 세상과 조금의 거리를 두겠다는 다짐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달릴 때 잠시 멈춰 서서, 정말 그 길이 나의 길인가 되묻는 태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오래도록 납득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는 일. 제네바는 그 연습을 하기에 적절한 도시였다.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만의 호흡으로 살아보는 것, 그 느린 걸음 속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지는 것. 나만의 유행을 타지 않는 삶은 그렇게, 외면이 아니라 내면의 조용한 반란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새로운 유행이 아니라 다시 나답게 살아가는 감각이었다.

제네바에 삶의 터전을 잡은 지 어느덧 한 달이 조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여행자의 기분이 아닌 이곳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한 주민으로서 느끼게 된 것이 있었다. 이곳에서의 나는 아무런 ‘라벨’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 어느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어느 대학에서 무엇을 공부했고 또 어떤 직업을 갖고 있(었)으며 모아둔 돈은 얼마인지, 아니, 가장 간단한 숫자 비교인 몇 살인지조차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굳이 먼저 드러낼 필요도 없다. 드러내서 얻을 것도 없다.(심지어 드러낼 때와 장소도 없다.) 그렇게 살아가도 큰 문제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편하고 내게 이런 상황이 주어졌다는 것에 감사했다. 의식주만 해결되면 살아갈 수 있는, 그저 본능에만 충실하면 되는 자연인의 삶이었으니까. 내 일상의 패턴이 변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의외의 장면이었다.

답답함을 느낀 건 그들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나 역시 답답했다. 그들이 프랑스어의 질문에서 재빠르게 영어로 바꿔 나를 배려해주었을 때는 "저는 아직 프랑스어를 잘하지 못해요. 그러나 조금씩 배우고 있으니까 조만간 당신이랑 프랑스어로 대화를 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줘요"라며 너스레를 떠는 농담도 건네고 싶었다. 내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를 물었을 때는 "저는 한국에서 왔어요.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요? 제네바시에는 40퍼센트가 넘는 인구가 외국인이라는데 정말 놀랍더라고요"라고 내가 아는 상식을 곁들이며 긴 대화를 이어가고 싶었다.

하지만 괜찮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들은 라벨 없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줬으니까. 그래서 이제는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이곳에서 조금은 행복을 누리며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러다 또 불현듯 불안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가서 고민하면 된다. 당분간은 이 홀가분함을 즐기기로.

그렇게 다름은 틀림이 되고, 모난 것은 정 맞는 것이 된다. 우리가 자주 말하듯 "튀면 피곤하다"는 분위기. 그 속에서 나 역시도 혹시 모를 시선을 의식하며, 언제나 방어기제 속에서 구구절절 설명부터 늘어놓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글처럼 말이다. 지금까지 충분히 변명했으니 이제는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보고 싶다.

단순히 ‘국적은 어디야?’에 답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냈다.

어떤 이들은 세 개의 국적을 가졌다고도 했다. 부모의 국적이 다르고, 자신이 자란 곳과 현재 머무는 곳이 또 다르다며 길고도 유려하게 자기의 삶을 펼쳐 보였다. 처음에는 조금 놀랐고, 곧이어 느낀 건 조용한 울림이었다. 그 긴 소개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고, 오히려 사람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해줬기 때문이다.

국적과 정체성은 더 이상 단일한 질문이나 답변으로 정리될 수 없는 시대라는 것을, "너는 어디서 왔어?"라는 질문에는 ‘장소’만이 아니라 ‘시간’과 ‘사연’이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말이 많으면 피곤하다는 인식이 있다. 짧고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 미덕이 되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길게 하면 괜히 복잡한 사람처럼 보일까 염려하게 된다. 우리는 대한민국 안에서 하나의 언어를 쓰고, 비슷한 역사를 공유하고, 서로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나라에서 자랐다. 단일 민족, 단일 언어, 그리고 반도라는 지리적 특수성 속에서 다름보다는 같음이 강조되어왔기에 어릴 때부터 다른 세계로 자유롭게 이동하고 부딪혀볼 기회가 적었고, 낯선 것에 대한 적응력도 자연스럽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누군가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말하면 우리는 먼저 이해하려 하기보다, 은근히 틀을 들이민다.

하지만 제네바나 파리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다르게 살아왔다. 그들은 질문을 하나 받아도 그 안에 자신의 사연을 담아 풀어낸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여유,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서 말하고 듣는다. 그 태도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조금 더 다정하게 이해했다.

한국에서는 이것이 조금 어렵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너무 자주 남을 따라간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조금만 방향이 달라도 불안해지고,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설명을 요구받는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 비정상. 말이 길어지면 또 유난스럽다는 평가. 어떻게 입을 뗄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반면, 내가 경험한 유럽, 특히 스위스와 프랑스 문화는 다르다. 일단 시작부터가 다르다.

유럽이 완전히 이상적인 사회라는 건 아니다. 그곳에도 여전히 계급과 인종 문제, 차별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다양할 수 있다’는 감각이 사회 전반에 훨씬 더 깊이 스며들어 있었다. 그 다름을 말할 수 있도록 허락하는 문화. 그리고 말이 길어질 수 있다는 여유.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씩 나를 다시 쓰는 중이다. 여전히 서울에서 자랐고, 여전히 한국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낯선 나라에서 스스로를 다시 소개하게 된 누군가이기도 하다. 이방인의 언어로 천천히 내 이름을 말하고, 내 배경을 조금씩 펼쳐내는 사람. 그러니, 나를 설명하는 데 한 문장은 이제 조금 부족하다. 그 부족함은 어쩌면 나의 여백이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증명과 설득에는 과거와 미래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애쓰려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두 달 차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나만의 실험 방식을 결정했다. 귀납적 방법. 순간순간을 먼저 다 살아보고, 그다음에야 비로소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예상치 못한 난제가 찾아왔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일상의 만족이, 어쩌면 나의 존재 자체를 누구도 확인해주지 않는 날들로 이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예전처럼 나의 쓸모를 과하게 드러내며 나를 소진하진 않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곳에 나라는 사람이 머물고 있다는 사실마저 지워둘 필요는 없었다. 아니,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자칫하면 위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고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삶에 익숙해진다면 말이다.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는 달콤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이곳에 단단히 붙잡아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불안도 함께 찾아왔다.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 대신, 내가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싶었다. 그 첫 단계는 거창한 성취나 외부의 인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일상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는 목소리, 내가 움직인 만큼 조금은 달라지는 집안의 풍경, 하루하루의 식탁 위에 놓이는 작은 성취들. 그곳에서 나는 다시 나를 확인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결국 내가 서 있는 자리, 즉 나의 존재가 머무는 공간이자 증명이 되어야 하는 자리는 집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결국 중요한 건 일과 가정 사이의 균형, 그리고 가정 안에서 내가 어떤 역할에 얼마만큼의 무게를 둘 것인지 정립해나가는 일이었다.

주체적으로 선택한 삶이라면, 그 선택이 닿아 있는 일상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마주한 과제는, 집안일이라는 구체적인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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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 동안 이 책을 함께 만든 피해자들에게.
당신들의 경험이, 당신들의 용기가, 당신들의 삶이 다른 피해자들에게 어떤 힘이 되는지 지켜봐주십시오. 그 힘이 어떻게 시스템과 사회를 바꾸는지 확인해주십시오. 당신들의 시간이 ‘공백’이 아니었음을, 당신들의 존재가 다른 이들에게 희망임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당신들의 연대자가, 그림자가 될 수 있도록 곁과 뒤를 내주어 감사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다른 피해자들에게.
일단 살아만 있어요. 제가 당신의 그림자가 될 수 있게, 당신을 위해 길을 찾고 다듬어 당신의 손을 잡아 함께 걸을 수 있게, 당신의 말·시간·자리를 지킬 수 있게, 그 기회를 주십시오. 어떻게든 살아만 있으면, 일단 살아남는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넓고 안전한 길을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발 살아요. 우리 길에서, 광장에서 만납시다. 언제나 당신의 곁과 뒤에서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당신과 나는,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법대로’ 하면 피해를 인정받고 내 삶을 찾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싸워야 했다. 왜 끝나지 않는 것일까. 끝은 있는 걸까. 싸움에서 이겼는데 왜 난 여전히 말과 시간, 그리고 자리를 찾지 못하는 걸까. 왜 난 아득바득 ‘예민하고 끈질긴 미친년’이 되어 이 싸움을 하는 걸까. 이 싸움이 가치가 있나.
차라리 죽여버릴 걸.

화도 나지 않았다. 그저 다시 한번 국가기관은, 시스템은 피해자 보호에 관심이 없다는 것만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가해자에게 보복 살인을 당한다면 이 경찰은 뭐라고 할까. 아마 원칙대로 처리했으며, 실질적인 위협이 없을 경우 본인들은 개입할 수 없다고 하겠지. 그리고 내 사건은 가해자에 의해 각색되어 세상에 알려질 거다. 죽은 피해자는 말할 수 없으니까.

사건을 겪고 해결하는 동안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가족은 내가 기댈 수 있는 울타리가 아니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이었다. 일을 그만두고도 한동안 출근 시간에 맞춰 집을 나섰다가 퇴근 시간에 돌아왔다.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소송 서류를 작성하다가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기를 반복했다. 세상은 온통 버석거리는 모래로 만든 성 같았다. 색도, 향도, 맛도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감정은 말라갔고, 머리도 굳어졌다.

귀가 후 인사를 한다. 나는 아무 일도 없어야 한다. 가족들이 알면 안 된다. 밥은 먹고 다니냐며 잔소리하는 가족의 말을 뒤로 하고 피곤하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내 방문을 열면 거기에는 안온하면서도 끔찍한 늪이 기다리고 있다. 그 늪에 나를 가둔다. 울지도 않는다. 어느새 우는 방법도 잊은 것이다. 이렇게 늘어져 있다가 사라지고 싶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옥상으로 올라갔다. 내려다보며 문득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내가 왜 이래야 하나. 내가 많이 무너져 있구나. 치료가 필요하다. 이러다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몰리겠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성폭력 피해 이후 말과 글이 무너졌다. 완성된 문장으로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고 단어 위주로 내뱉거나, 핵심을 말하지 못하고 장황하게 늘어놓기 일쑤였다. 감정은 메말라 내가 어떤 기분인지 전달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 생각과 감정을 드러낼 곳이 필요했다. 출소한 가해자로부터 안전한 익명의 공간. 짧은 글을 연습할 수 있는 곳. 그렇게 찾아다니는 내게 누군가가 ‘트위터’를 소개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조차 해보지 않은 내게 SNS는 낯설고 버거웠다. 닉네임을 정하는 것도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결정한 게 바로 ‘마녀’였다. 가해자가 활동하는 커뮤니티에서 나를 조롱하며 붙였던 이름. 그래, 그렇다면 진짜 ‘마녀’가 되자. 피해자가 아니라 심판자로서, 사냥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서 사냥을 시작하자.

다이어리를 꼼꼼하게 작성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수기로 작성하는 것이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신체의 말단 부위를 자극하고 움직이는 것은 늘어져 있던 내게 중요한 일이었다. 사건 이후 지능이 떨어져 예전엔 듣고 바로 기억하던 것들도 메모를 해야 겨우 알아보는 수준이 되었던 터라, 직접 써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난 과거의 나와 매우 달라져 있었다. 사건이 있기 전에 하던 일을 이어서 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일을 할 역량도 되지 않았다. 일정 부분에서 사건 이전으로 회복되지 않는 손상이 발생했고, 문제를 해결하며 입은 상처 중에는 영구히 그 흔적이 남는 것도 있었다. 과거의 나는 과거에 두고 와야 했다. 그걸 인정해야 했는데, 내 시선은 자꾸 과거를 향하려 했다.

난 가해자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 사법 시스템을 선택한 것이 내가 베풀 수 있는 관용의 최대치다. 나는 가해자와의 싸움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다른 피해자와 연대하며 시스템을 바꾸는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것이 ‘마녀’로서 내가 가해자를 사냥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사냥을 멈출 생각이 없다. 사람들과 건배사로 하는 말이 있다. "돌아온 마녀가 세상을 태운다!" 그렇게 정화된 땅에서 피해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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