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 개정판
알베르 카뮈 지음, 이정서 옮김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제 번역에 대한 장정일씨의 지적, 

경관이냐, 간수냐?

이 물음은 바로 아래 문장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À sept heures et demie du matin, on est venu me chercher et la voiture cellulaire m’a conduit au Palais de justice. Les deux gendarmes m’ont fait entrer dans une petite pièce qui sentait l’ombre.

 

위 문장을 김화영 교수는 이렇게 옮겨두었습니다.

나는 아침 730분에 불려 나가서 호송차로 법원까지 호송되었다. 그리하여 간수 두 사람의 지시에 따라 어둠침침한 작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이방인> 김화영 역, 93)

 

경관의 뜻을 가진 gendarmes여기서 처음 나와서 이 장면에만 3번 더 쓰인 뒤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일단 김화영 교수의 위 번역은 한눈에 보기에도 의역이 너무 심하다는 걸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보시다시피 그리하여라는 접속사도 본문에는 없거니와, 카뮈의 문체라고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의 문체 운운하면 번역이니 그럴 수 있다고들 하니, 정확히 단어만 가지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이 문장을 카뮈가 쓴 쉼표까지 살려서 원본대로 하면, 이렇습니다.

 

아침 730, 사람들이 나를 데리러 왔고, 나는 호송차에 실려 법원으로 인도되었다. 경관 둘이 나를 어둠의 냄새가 나는 작은 방으로 들여보냈다. (새움 이방인 이정서 옮김 115)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아실 겁니다. 아무튼 본래 문장은 이런 것이고, 여기서 gendarmes를 경관으로 볼 것이냐 간수로 볼 것이냐는 문제인데, 적어도 책을 읽었다면 이러한 질문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알 것입니다. 장정일씨의 저 질문을 받고 이게 무슨 지적거리가 되나 싶어서 김화영 교수본을 찾아보았습니다. 역시 김화영 교수가 저 명민한 장정일조차 바보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죄송합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이방인 본문에는 바로 앞장에 경관과 구분되는 간수gardien’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멀리도 아니고 바로 앞 페이지입니다

 

Lorsqu’un jour, le gardien m’a dit que j’étais là depuis cinq mois, je l’ai cru, mais je ne l’ai pas compris.

 

이 문장을 김화영 교수도 당연히(gardien을 간수라고 보고) 이렇게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간수로부터 내가 들어온 지 다섯 달이 지났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의 말을 믿기는 했지만 그 말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장정일은 아마 이러한 김화영의 번역을 보고 착각을 했거나, 아니면 그냥 앞뒤 살펴보지도 않고, 무명의 그자가 틀릴 것은 당연한 일이니, 눈에 들어온 김화영 교수와 다른 한 문장을 떼어내 도착어가 어떠니, ‘프랑스 법제가 어떠니 알은 체를 하며 지적을 해온 모양입니다.

참고로 저는 이 문장을 이렇게 옮겨두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간수가 내게 다섯 달이 지났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믿었지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새움 <이방인> 이정서 옮김 113)

 

카뮈는 아마 사후 60년이 지나 바다 건너 이 머나먼 타국에서 벌어질 이러한 논쟁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가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이런 식으로 문장 구성을 해두었는지도 모릅니다.

무슨 소린가 하면, 카뮈는 문장 중 중의적으로 의견이 엇갈릴 수 있을 소지가 있는 단어는 (이건 그런 차원도 못 되지만) 반드시 앞, 혹은 뒤에서 다른 표현을 곁들여 그 오해의 소지를 없애주고 있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만약 이것이 간수가 되려면 실지 감방에서 죄수를 관리하는 간수를 가리키는 gardien에 대해 달리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카뮈가 gendarmesgardien를 구분해 쓴 이유까지도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정일은 저보고 카뮈 번역으로 명성을 쌓은 김화영의 <이방인>에서 무려 58개 항목의 오역을 발견했다고 주장한다고 하는데, 저는 역자노트에 실은 58개의 넘버링은 그냥 상징적인 것일 뿐 김화영 교수 번역은 죄송스럽게도 보다시피 거의 전부가 잘못되어 있다고 누누이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한때 장정일의 독서노트등을 들척이면서 가끔씩 보이던 그 명민함에 고개를 끄덕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장정일씨의 지금과 같은 모습을 보면, 25년 오역의 세월이 정말이지 무섭긴 무서운 것이구나,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씁쓸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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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증가 2014-04-23 09:04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리뷰코너 아래에 있는 'jaibal'님의 문제 제기에 답하시는 것이 먼저인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