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다시 제 번역서를 두고 장정일씨가 “‘이방인’ 번역 비판의 99%는 자의적 해석과 생트집‘이라는 글을 썼네요. 한겨레신문이 한권의 번역서 <이방인>을 두고 10일 사이 6번째 내보내는 관련 기사입니다. 휴일을 빼고 거의 매일이다시피 한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요? 더군다나 이 엄중한 시국에. 그들은 저보고 처음에 도를 넘는 노이즈마케팅이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억울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이방인이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라는 카피 하나가 무슨 노이즈 마케팅이라니...
다음에는 필명을 문제삼았습니다. 도덕성이라는 가장 무서운 칼날을 들이대었습니다. 제가 필명을 쓴 이유는 같은 출판인끼리 남의 번역서를 비판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들 눈에 '부도덕하게' 비칠까봐여서였는데... 그것이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도 모를 일입니다. 다시 필명을 인정하고 사과하자, 이번엔 영어판을 두고 했으니, 사기 번역이라는 것입니다. 역시 번역과정을 세세히 공개했습니다.중역과 참고는 다르다고...
노여움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하고, 한때 흥분했던 제 방식도 많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정리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일 같은 내용의 기사가 이름만 바꿔가며 나오는 형국입니다. 아침마다 각오를 다지지만 솔직히 힘든 게 사실입니다.
어찌해야 좋을런지... 진심으로 여기 님들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고 기자님, 그런데 논쟁을 끝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또 한겨레신문에서 관련기사를 올렸다는 지인의 메시지가 도착했네요. 한 권의 번역비평서를 두고 사회적 공기인 일간 신문이 10일 사이에 내보내는 5번째 기사인가요? 그 기사는 보지 않겠습니다(제게 노이즈 마케팅의 너울을 씌우셨는데 이쯤 되면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는 건 오히려 그쪽이 아닐는지요?). 시간이 지나면, 한겨레신문사의 ‘친절한’ 기자들이 얼마나 역사의 진보를 늦추는 데 일조했는지, 다시 신문이 기록하게 되겠지요.
주변의 모두는 말합니다. 제게 그만 조용히 있으라고. 신문과 싸워서 될 일이냐고. 소란은 멈추고 차츰 책을 읽은 독자들이 알아봐줄 거라고. 그러나 저는 그러지 않을 생각입니다. 악법도 법이라고 말한 그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진심으로 고언해준 제자들의 말을 뿌리치고 독배를 마신 그분처럼 저 역시 도망칠 생각은 없습니다. 왜 꼭 그래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역시 그처럼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을 스스로 깨닫고 그 느낌에 충실하게 행동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이정서의 사과- 한겨레신문 고 기자님께 중에서> http://saeumbook.tistory.com/4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