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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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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힙니다. 기온은 어느새 38도를 가리킵니다. 냉방 장치는 없고, 선풍기뿐이지만 그도 무용지물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나를 덮은 피부마저 적으로 느껴집니다. 이 더위, 이 무더위가 말이에요.

 

삐걱거리는 의자가 있습니다. 의자에 앉은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삐걱삐걱 큰 소리가 납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 좀 해! 시끄러워!" 하고 의자에 앉은 사람을 향해 소리칩니다. 소리를 낸 건 사람이 아니라 의자였지만 그는 의자에 앉은 사람에게 모든 잘못을 덧씌우고 화를 냅니다. 다시 말하지만, 탓해야 하는 것은 의자입니다.

 

미지의 공포가 주변을 서서히 잠식할 때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이것은 오래된 연구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카뮈가 <페스트>를 통해 그렸듯이, 많은 좀비 문학이 그렇듯이, 불가항력의 어떤 것, 죽음을 몰고 오는 낯설고 두려운 것 앞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에 불과한지 우리는 좋은 작품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운이 나쁘게도, 얼마 전 실제로 겪기도 했고요.

 

<네메시스>도 그렇습니다. 공포상황 발발 1단계는 고양이 박멸이었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원인이라고 '예측이 되는' 대상을 공격하는 행태입니다. 그러다 어떤 사건이 발생합니다. 사람들의 두려움과 적은 정보와 결합하면 큰 파장을 낳기도 하고요. 이탈리아인들이라는 공공의 적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2단계입니다. 정말 이탈리아인들이 폴리오를 퍼뜨렸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유를 알고 싶고, 알아낸 이유를 피하고 싶습니다. 옆집 아이가 죽었다면 그곳을 격리하길 내심 바랍니다. 격리하지 않는, 더 적극적으로 도망치라고 말하지 않는 당국에 분노를 쏟아냅니다.

 

사실 이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폴리오가 아니라 "두려움이라는 병원균"(44쪽)인 것이지요.

 

여기서 버키의 태도가 눈길을 끕니다. 일상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함을 굳은 태도로 강변하거든요. 그렇지 않으면 "위퀘이크 자체가 피해자가 돼"라고 말하기도 하죠.

(아마 이 태도가 더욱 눈길을 끌었던 것은 우리가 겪었던 직전의 상황에서 보이지 않았던 단 한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진짜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의자에 앉은 사람인지, 의자인지를 통찰하고, 건강하고 단호한 태도로 일상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며,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단단함이 무척이나 그리웠다는 것을 버키를 보기 전에는 몰랐습니다.)

 

하지만 버키는 꺾입니다. 외면하고 있던 두려움과 직면하고 왜곡된 책임감을 자신에게 뒤집어 씌웁니다. 이 단단한 남자의 삶이 우두둑 꺾이는 소리가 존재를 뒤흔듭니다. 이제 그는 의자에 앉은 사람이 자신이고, 자신에게 모든 죄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것은 일어난 일이고, 이제 그는 그간 자신에게 균열을 냈던 미세한 책임감까지도 모두 포함해 전체를 다 끌어안고 속죄의 삶을 살아가기로 합니다.

 

그를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그의 단단한 몸, 그 몸이 일으키는 경외심, 폭발하는 것 같은 근육들의 아름다운 움직임을 떠올립니다. 폴리오라는 저주가 그를 덮치기 전 거의 완벽에 가까웠던 그의 정신과 몸을 생각합니다. 그런 그를 무너뜨린 것이 폴리오인지 그 자신인지 결코 알아내지 못한 채로 말입니다.

 

오직 아이들만 다른 생각을 할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100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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