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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ㅣ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평점 :
나는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또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정직함과 신념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거짓말 하고,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척 또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이 없다면 세상도 없을 겁니다. 물론 문학도, 예술도 없겠지요. 그래서 거짓말은 세상이고 세상은 어찌되지 않는 현실이니 거짓말은 결국 우리네 현실이자 진실입니다. 거짓말 투성이인 세상은 사실 절대로 안전하지 않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려 날아가버리고 말 지푸라기로 지은 집인 겁니다. 실제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기도 하거니와 우리네 삶이 얼마나 위태롭게 겨우 발바닥 크기의 땅 위를 버티고 섰는지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 책에 대해 노닥거리는 짓 마저도 신의 축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이런 역설이라니. 삶이란 참 괴짜 같고요.
세상이 지푸라기로 지은 집이라는 거짓말을 플래너리 오코너만큼 일관되고 냉소적이고 흥미롭게 하는 작가가 어디 흔할까요. 종교와 법, 윤리를 비웃는 그녀의 작품들은 기괴하지만 통쾌합니다. 종교적 주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된 환상, 즉 '선의'가 있다면 문제 없다는 그 말도 안되는 환상을 오코너는 산산히 조각냅니다. 삶의 테두리랄지 안전한 홈스윗홈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요. 이상향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은 추악한 민낯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다닙니다.
지금은 백인 편, 흑인 편 두 쪽밖에 없어요. 이 선거가 그렇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아요. (<이발사>, 25쪽)
그녀가 그린 위선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 봐요.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두 죽어가는 마당에도 끝까지 '부적응자'를 교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그를 감화하려는 할머니(<좋은 사람은 드물다>)와 딸의 의족을 들고 튀는 청년을 멀리서 보며 '우리 모두가 저렇게 순진하다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거라고 말하는 엄마(<좋은 시골 사람들>)는 어떤가요. 그들의 참혹하고 우스꽝스러운 최후는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어째서 저토록 부조리한 사고의 인간들이란 말인지!
교사 삼촌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십자가 표시를 단 시체가 전부 모일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 바깥세상은 네가 배우고 자란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 (<죽은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 404쪽)
그렇지만 할머니와 엄마 같은 사람들은 소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씩 인간이란 존재가 필연적으로 뱉어내고 있는 부조리 사고를 목도하게 돼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요. 앞서 고백했듯, 나는 매일 거짓말을 하거든요.
플래너리 오코너가 보여준 냉소는 달리 보면 희망적입니다. 소설 같은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어떤 위안이 찾아들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단편들이고 압축적인 이야기들이니 매순간, 삶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세상 만사가 귀찮을 때 오코너의 세계 안으로 깊게 몸 담그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겠네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