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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
이승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7월
평점 :
몰랐던 세계를 발견한다는 건 굉장한 일입니다. 처음 향 좋은 커피를 마셨을 때, 좀처럼 산이 보이지 않는 들판 앞에 섰을 때, 열 권 쯤 되는 대하소설을 끝냈을 때, 그리고 처음 만나는 작가가 엄청나게 좋을 때. 행복이란 자고로 사소한 곳에 있는 법이라지만 저는 어쩐지 아직도 굉장한 일이 늘 기대되고 새로운 것에 열광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중한 사람>을 읽는 내내, 이승우라는 작가에 대해 생각하는 내내 저는 열광했습니다. 기뻤습니다. 새로운 작가를 또 찾았다는 사실에 말이죠. 그런 면에서 꿈이라는 건 쉽게 만족하거나 포기할 일이 아니겠네요(갑자기?!).
살다보면 이렇게 명백하게 열광하는 순간도 있지만 대개는 무색무취의, 잔잔한 상태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지속됩니다. 심심하다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런데 궁금합니다. 그런 순간 순간들을 그냥 한 바구니에 몰아놓고 '잔잔한 상태'라 명명할 수 있는 걸까?
철학자의 심정으로 시간을 지켜봅니다. 이 흥미로운 시간이란 개념은 끝없이 갑니다. 멈추지 않습니다. 방금 전과 지금은 그 전과 방금 전이 되어버립니다. 지금은 계속해서 다가오는 잠시 후입니다. 이런 것을 그저 '지금'이라고 묶어도 될까? 좀 더 생각을 해봅니다. 가령, 잠자는 순간. 우리는 꼴가닥 잠이 들기도 하고 서서히 잠이 들기도 합니다. 얕게 잠들어 금방 깨기도 하거니와 다시 깊은 숙면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우리는 쉬이 '잔다'는 단순한 말로 설명해버립니다. 저는 언젠가 이런 거친 분류가 굉장한 폭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단히 폭력적이죠. 그것은. 우리는 매순간의 다름이나 각자가 자리한 지점의 미묘한 차이도 예리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다름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고 다름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될 테니까요.
짐작컨대 작가는 그러한 태만의 폭력성을 지극히 잘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사건을 대충 뭉뚱그려 그리는 것이 게으름을 넘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알고 진작에 경계해왔던 게 아닐까요. 저는 작품 곳곳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중언부언 하는 것 같지만 실은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로 화자가 하는 생각의 미세한 갈래들을 아주 가늘게 나누어 짧은 찰나를 보여주고, 찰나에서 또다른 찰나로 이동하는 모양을 보여주니 말입니다.
그는 그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왜 그녀가 한 그 말만은 붙들려 하는지, 때때로 그 말에 유별난 신뢰를 보내고 싶어 하는지 똑떨어지게 설명할 수 없었다. - <딥 오리진>, 163쪽
그래서 『신중한 사람』에 실린 이승우의 작품들은 한없이 편하게 읽을 수도, 한없이 어렵게 읽을 수도 있는 기이한 작품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사건 같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은 전개와 독백, 사소한 이야기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작가의 포착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때로 한 편의 부조리극을 떠올리게도 하지만요, 뭐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그저 작가의 이 지독하고 일관된 성실함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치솟는 울화를 신중한 성격의 Y는 표현하지 않았다. 신중한 자는 저지르거나 부수거나 걷어차지 못한다. 신중한 자는 보수주의자여서가 아니라 신중하기 때문에 현상을 유지하며 산다. 현상이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현상을 유지하지 않으려 할 때 생길 수 있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현상을 받아들이고, 그 때문에 때때로 비겁해진다. - <신중한 사람>, 46~47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