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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배우는 사람 ㅣ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평점 :
빠르게 읽히지도, 그렇다고 딱히 읽기에 난해하지도 않은 애매한 이 소설집에 대해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우선, 제목을 '시간과 공간의 낯선 거리감'이라고 붙인 이유에 대해 말해야겠네요.
소설이 제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보았습니다. 무엇보다 낯설기 때문인데요. 이런 낯섦의 원인을 곰곰히 따져보니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제가 가까이 갈 수 없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났습니다. 가령 군대라든가(군대는 이 나라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 낯선 환경은 아니지만요, '이슬비'에서 군대는... 글쎄요), 미국 남성의 감수성('로우랜드') 같은 종류의 것들이 공감하기 힘든 상태로 책 속에서 뛰놀고 있었습니다.
어떤 소설은 그것들을 뛰어넘고 단숨에 저에게 오기도 하지만요, 모든 소설이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령 저는 <필립과 다른 사람들>(미안합니다, 노터봄 아저씨...)이나 <사형장으로의 초대>(롤리타 첫 머리는 심지어 외우고 있을 정도라고요!!;;;) 같은 책들은 부끄럽지만 끝까지 읽지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거든요. 이 안타깝고 슬픈 목록에 또 한 권의 책을 추가하려니 마음이 무너집니다...
이런 소설들에서 제가 찾지 못한 것은 무엇일까요? 혹, 핀천이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저 역시 이 감상을 이십 년 뒤에 읽고 견딜 수 없이 긴장되는 건 아닐까요. (그 정도는 아니겠지요...)
어쩌면 작가는 이 작품들을 만날 독자들의 이와 같은 당황스러움을 미리 짐작하고 가장 멋있는 '서문'을 써서 과거의 젊은 자신을 변명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네요. 이 책의 서문은 어떤 작가가 쓴 서문보다 마음에 들었거든요.
특히 이 부분.
젊은 친구들에게서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결국 변화하리라는 것, 완성된 인물의 스틸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영화, 움직이는 영혼이라는 것이다. - 37쪽, '작가 서문'
남은 일생 동안 오직 자궁과 아내라는 냉혹한 합리성에만 복종해 살아야 한다면 그로서는 도저히 버텨낼 자신이 없음을 깨달았다. - 81쪽, <로우랜드>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