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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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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여행을 마친 기분입니다. 이리저리 돌고 돌아 처음 앉았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저는 그러나 여행을 떠나기 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지요(난은 자신의 삶이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똑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 435쪽, 2권). 책을 덮고 소설을 생각하다 늦게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어느 사려 깊고 예의 바르며 성실하지만 감수성이 지나치게 풍부하고 예민하기까지한 한 사람의 삶을 지나치게 밀착된 상태로 받아들였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아버지를, 남편을, 나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확인했기 때문인지도요.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썼을 것 같은 이 소설, 딱 그만큼의 강도로 마음에 새기고 쌓아보기로 합니다.

 

 

1. 예술

굳이 매슬로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인간에게는 누구나 차별화에 대한 욕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정체성, 삶의 이유 같은 누구나 한 번 쯤 하게 마련인 이런 질문을 좇다 다다르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유행을 따르는 것조차 '닮기 위해'서라기보다 '다르기 위해' 하는 선택일 경우가 많죠. 그것을 꾸준히 발전시키다보면 어느 새 예술이라는 지점이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도구로, 용도로 소용되지 않는 순수한 차원의 어떤 것, 예술이란 그런 거니까요. 어쩌면 지금, 음악에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안타깝게도, 예술은 종종(꽤 자주) 시간에 집니다. 예술은 도구가 아닌데도 시간이라는 자명한 범위 안에서 제 목적과 용도를 증명하지 못하면 쓸쓸히 퇴장하는 운명을 맞고 말아요. 도구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이 지점에서 소설이 빛납니다. 난은 끝까지 시를 놓지 않아요. 저는 그게 좋습니다. 자의든 아니든 시를 포기하지 않는 그의 태도, 예술과 삶에 대한 난의 꿋꿋하고 정직한 태도가 인상 깊었습니다.

물어봅시다. 왜 인정받아야 하죠? 왜 어떤 무리에 속해야 하고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야 합니까? 예술이란 삶 안에서 만들 수 있는 유일하게 삶을 초월하는 가능성이 아닌가요? 현실과 소용을 따지는 일은 삶을 통틀어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그 안에 욱여넣는다고 들어가는 예술이 아니지요. 난의 주변 인물들, 다닝과 바오, 니어리, 딕까지 이들은 모두 삶에 예술을 욱여넣으려던 인물들입니다. 난은 그 중 누구에게도 완전히 공감하지 못해요. 난은 끝없이 질문하고 의심하고 탐구합니다(어째서 이민자들에게서는 피카소나 포크너나 모차르트 같은 예술가가 나오지 않은 걸까? - 176쪽). 어느 것에도 확신하지 못한 채로 말이에요. 두렵고 피하고 싶은 것(그는 영어로 예술적인 글을 쓰는 것과, 새로운 땅에서의 존재 이유를 찾는 것과, 자신의 마음 외에는 아무것도 따르는 게 없는 정말로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품고 있었다. - 216쪽, 2권)에 끝까지 다가가려는 노력, 그것만으로 난은 가장 위대한 예술가가 아닐까요. 비록 세상은 그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죠.

 

어쩌면 어두운 광채는 밖이 아니라 안에서, 그들의 영혼의 깊은 곳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몰랐다. - 366~367쪽, 2권

 

달리 말해, 난은 고립을 자신의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독자도 없이 허공을 향해 글을 써야 할 터였다. - 394쪽, 2권

 

그녀는 내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패배자로서 나 자신을 이미 받아들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시를 쓰는 건 존재하는 것이다. - 445쪽, 2권


 

2. 삶, 자본 안에서의 삶

저는 작가가 소설 안에 우리 자신의 우울, 의심, 고뇌와 질문을 이토록 정교하게 담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어떤 충격적인 사건이나 탁월한 언사 없이, 그저 난이라는 이방인을 따라가는 것만으로 말입니다(그는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는 그렇게 많은 세월을 낭비하며 정말로 하고 싶었던 것을 피하고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 414쪽, 2권). 특히 신이 사라진 자리에 자본이 자리 잡은 오늘의 세계를 살아가는 무력한 사람들, 난과 같은 소시민이 마주하는 세상은 쉬이 바뀔 것 같지가 않아요. 세상은 우리에게 가능성과 자유를 보여주지만(책에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성공의 전형이었다. 그는 누가 실패에 대해 얘기할 것인지 궁금했다. - 389쪽, 1권) 우리는 결코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합니다. 국가나 사회체계의 도구로 사용되고 소멸하면 그만이죠. 거기서 인간 소외가 나타납니다. 제 삶을 단 한 순간이라도 제대로 짚어보고 따질 수 있는 시간조차 우리에게는 소비해야 하는 재화(財貨)입니다(힐링이라는 단어의 지긋지긋함...). 탁월한 개인은 자본 위에서만 해당하는 얘기 같습니다(이곳 사람들은 부자가 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너무 열심히 일했다. - 114쪽, 1권). 그래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거짓말에 속는 바보짓을 하게 되죠(이곳에서 정직하게 사는 건 불가능해. 모두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에 우리도 거짓말을 해야해. - 336쪽, 2권). 

그 삶이 기억할만한 삶인가에 대해서는 각자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자유란 그것을 활용하는 법을 모르면 의미가 없는 거죠.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억압을 받고 갇혀 있어서 사고방식을 바꾸고 진짜 자유를 얻는 것이 힘들어요. 우리는 회피와 부정으로 얼룩진 삶에 길들여져 있잖아요. 개인적인 취향과 자연스러운 욕구들이 대부분, 신중함과 두려움에 억제당해왔지요. 외적인 압박보다는 우리 스스로 갇혀 있는 폭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더 어렵죠. 간단히 말해,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잃어버린 거예요. - 214쪽, 1권

 

난은 그 친구가 성공의 결과로 내리막길을 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성공은 그 안에 있는 악마를 풀어놓은 것 같았다. - 412쪽, 2권

 

 

3. 국가

서경식 선생은 조국(祖國)과 국가(國家), '디아스포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합니다. 저는 서경식 선생의 질문이 저를 괴롭히도록 자주 놓아둡니다. 그런 소수자의 삶에 늘 마음이 끌려요. 필연적으로 소수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들어보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의 목소리로 세상은 발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요. 서경식 선생이 그렇듯, 이 소설의 작가 하진 역시 이민자로 살았던 자신의 삶을 통해 조국과 국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중국이라는 특징적인 국가와 체제를 떠나 그와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정착하면서 겪는 갈등과 불편함이 소설 곳곳에 나타납니다.

국가가 무엇입니까?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국가는 그러나 종종 국가를 위해 국민의 희생을 요구하고 안타까운 개인의 희생을 모른 체 합니다. 국가에 기여하는 국민이여야만 진짜 국민이라는 듯 대가를 요구하기도 하고요. 난은 진정한 개인이 되고자 합니다(나는 중국이 혐오스러워요. 시민들을 잘 속은 어린애로 취급하면서 진짜 개인이 되는 걸 방해하니까 말이죠. - 160쪽, 1권). 자신을 옭매는 국가를 벗으려고요(중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음에도, 보이지 않는 손이 여전히 그의 삶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 81쪽, 1권). 그가 성공했는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다만 그는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안정적인 가족과 집이 있습니다. 그 안에 국가는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국가란 그런 것이어야 하는 게 아닌지. 집보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그런 것 말이지요.

 

사실, 아이에게는 부모가 있는 곳이 집이고, 행복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이 집이었다. 아이에게는 국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 30쪽, 1권

 

난은 "다른 나라 시민이 되어야만 중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다"는 중국인 이민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을 떠올렸다. - 208쪽, 1권


우리가 살고 죽는 곳이 우리의 고향이니까요. - 466쪽, 1권

 

 

1권

그들이 작정하고 그에게 해를 끼치려는 이유가 뭐지? 단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처럼 희지 않고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 63쪽

 

나는 이곳에서는 어떻게 나 자신을 팔아야 하는지 모르겠어. - 98쪽

 

그렇게 슬픈 얼굴을 누가 보고 싶어 할까 싶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불길한 걸 떠올리게 할 것 같았다. - 184쪽

 

그는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232쪽

 

결국 삶이 단순하고 분명해졌다. - 365쪽

 

나는 종종 눈에 보이지않는 수많은 구멍이 있는 그물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 405쪽

 

불의를 합리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 500쪽

 

 

2권
그는 아내와 같이 그 지역으로 들어가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살에 박힌 가시처럼 살고 싶었다. - 127쪽

 

돈이 없으면 미국에서는 인종차별과도 싸울 수 없네요. - 128쪽

 

그것을 보며 난은 가짓수만 많고 세련되거나 화려한 게 전혀 없는 중국 뷔페를 떠올렸다. - 232쪽

 

그의 집과 삶은 여기에 있었다. - 240쪽

 

난은 자기 부모가 자신과 핑핑이 미국에서 겪어야 했던 두려움과 비참함을 가엾게 여길 가능성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부모의 집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자신이 이 아파트에서 크지 않은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는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는지 몰랐다. - 343쪽

 

그러나 그는 조상들이 수백 년 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들에서 일하는 가난한 농부들을 보고 마음이 불편할 것이었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면 일할수록, 더 가난해지기만 하는 듯했다. - 354쪽

 

사람들은 부자가 되는 것에 집착하고 있어요. 돈이 신이 된 거죠. - 397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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