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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칩에 숨겨진 사단의 전략
장죠셉 지음 / 크리스천리더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수님이 감람 산 위에 계실 때 제자들이 그분께 물었다.
"... 주의 임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마 24:3)
이에 예수께서는 종말에 각종 재난과 성도에 대한 미혹 등이 있을 거라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은 1차적으로는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지만,
동시에 세상의 종말을 예언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상황을 두고 이제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오지 않았나 예상한다. 종교와 민족의 분열과 반목으로 각종 테러가 일어나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늘고 있다.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이 끊이질 않는다. 가장 최근에는 중동에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수년 사이에 이상
기후로 인한 자연 재해가 계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쓰나미, 태풍, 엄청난 규모의 토네이도가 발생하여 사람들을 놀라고 두렵게 한다. 심각한
가뭄과 자연 재해로 전세계 곡물 생산량이 줄었다. 이로 인해 다음 달이면 국내에 애그플레이션이 발생 할 것으로 예상 할 정도이다. 다른 시대보다
화산 폭발과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자연이 요동치고 있다. 자칭 사도라 칭하는 자들이 거짓 계시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다.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진리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다.
이 시대에는 예수님의 예언이 딱 맞아 들어가는 일들이 연이어, 한꺼번에 발생하고 있는 듯 보인다. 따라서 사람들은 조심스럽게 그날을
예상하고 있다.
'베리칩에 숨겨진 사단의 전략'
본서는 수십 년 전부터 사람들을 미혹 했고, 여전히 억측이 난무하고 있는 '짐승의 표 666'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담고 있다.
'짐승의 표'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최근 급부상한, '베리칩(Verichip)'이라는 '초소형 무선주파인식(RFID)칩'과 '세계정부(World
Government)'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고 있다.
본서의 내용은 그리 새롭지는 않다. 관련된 많은 내용이 이미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그리고 관련 책이 시중에 몇 권 출간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은 알 만한 사람들에게는 이제 지루한 얘기들이다. 그럼에도 본서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인터넷 자료와
관련하여 출간된 다른 책들보다 '베리칩'에 대해 좀더 자세히 기술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에 언급된 '짐승의 표'와의 관련성 여부와 상관없이 '베리칩' 그 자체는 음모나 망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그것은 이미 여러
채널을 통해 들려지는 소식과 같이 동물들에게 우선적으로 삽입 되고 있다. 잃어버린 애완견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한정적으로 동물에 삽입 되고
있다. 그리고 후문(後聞)으로는 인체에도 삽입 되어 그 안정과 성능이 시험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풍문으로만 전해질 뿐 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는 아직 들리는 바가 없다.
'베리칩'의 논란이 점점 가중되고 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인류 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신세계질서(New World Order)'
하에서 그것이 정말 요한계시록에서 언급된 '짐승의 표'로써 실생활에서 매매에 사용 될 것인지와 그것을 통한 구원 여부이다. 이에 대한 본서의
주장을 살펴보자.
본서에서는 '베리칩'이 계시록에서 언급된 그 '짐승의 표'가 분명하다고 단정 짓는다. 그 근거로 크게 '과학적', '법적', '성경적'
증거를 내세운다. 이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과학적으로 '베리칩'은 위치추적과 확인을 위한 16-코드, 그리고 사람의 세포를 검사하고
조율하는 128 DNA-코드, 송수신을 유지하는 콘덴서, GPS로 송수신을 연결시키는 안테나 코일이 담겨진 제품, 장치(device)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익히 알려져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의 기능이다. 16-코드는 매매 기능 및 위치추적 기능에 이용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128 DNA-코드는 세포와 관련하여 병을 고치는데 쓰일 것이라 말한다. 이러한 과학적 근거에 더하여 단지 기능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적, 법적
측면에서 '베리칩'에 대한 정당성을 보완한다.
'베리칩'의 기능이 정말 실현이 된다면 그 자체는 매우 이로운 장치(device)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악용이 된다면 매우
해로운 장치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베리칩'이 어떻게 사용 될 것인지, 그 사용을 위한 제도가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 밝힌다. 미국에서는
의료개혁법을 통해 앞으로 병원에 입원하거나 주치의에게 갔을 때 '베리메드' 프로그램에 의해 의사 또는 간호사로부터 '베리칩'을 몸에 넣도록
법으로 규정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료개혁법 2511조항으로 '학교단위 건강센터'를 통해 18세 미만의 학생들에게 '베리칩'을 넣게 될 것이라
한다. 또한 은행에서는 창구의 빠른 처리를 위해, 입금, 출금, 송금, 대출 등의 거래에 있어 '베리칩'이 사용 될 것이라 한다.
'베리칩'에 대한 가장 큰 논란은 아마도 이 부분일 것이다. 이것이 정말 계시록에 나온대로 '오른손'이나 '이마'에 받게하여 매매를
못하게 하는 그 '표'인가? 정말 '베리칩'을 삽입하면 구원 받지 못하는가? 이 책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단호하게 말한다. '베리칩'은 '짐승의
표 666'이다, '베리칩'을 받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 그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계시록 말씀의 어원적 분석을 시도한다. 계시록에서 사용된
'짐승(테리온)'은 동물이 아니라 '사상', '우상(에이코)'은 '굴복, 항복', '경배(프로스쿠네오)'는 '경의를 표한, 숭배, 엎드려
절하다'라는 뜻이라 해석한다. 따라서 13장에 나온 "우상에게 경배"라는 말은 "자기의 유익을 위할 목적으로 베리칩을 받는 행위는
배신자"(26p), 다시 말해서 "마지막 시대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베리칩을 갖는 것은 예수님께서 받지 말라고
말씀하신 명령을 배반하는 행위로 우상에게 경배한다"(27p)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러한 일들이 정말 '마지막 때'와 관련이 있으려면 전세계적으로 동시에 벌어져야 할 것이다. 단지 어느 한 나라에서만 발생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종말과 관련이 있는 사건이 될 수가 없다. 이에 대해 본서에서는 '빌더버그(Bilderberg)'라는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조직을 통해 '세계정부(World Government)'가 구성되고, 그 정부를 통해 사회가 통제되며 개인은 감시 당하며 위에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라 말한다.
이상에서 정리한 바와 같이 본서는 '베리칩'에 대해 나름의 설득력 있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먼저
'베리칩'과 관련해서, 현재 공식적 채널을 통해서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발표나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베리칩'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기독교
일각과 음모론 진영에서는 꽤 떠들썩하다. 여기저기서 그 사용이 목격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식 채널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전혀 보도가 없다.
음모론에 따른 문제가 아니더라도 그 장치 자체는 인류사에 있어 매우 놀랍고 획기적인 기술 장치가 될 것임에 분명한데도 왜 아무런 주목이 없을까?
이는 음모론에 비추어, 그 음모를 감추려는 어떠한 세력의 압력으로 인한 것이라 해석해야 할까?
'베리칩'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은 기술적 실현 여부이다. 본서에서 제시한 과학적 근거는 일견 그럴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실현
가능성을 제시한 것에 그칠 뿐이다. 과연 그러한 장치의 실현이 가능한지 현재의 기술 수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통신 기술과 생물/의학적
검증은 전혀 없다. 이를테면 그 칩 하나로 송수신 및 위치 추적이 가능한가? 그 칩으로 정말 금융거래 및 일상에서의 매매가 가능할까? 칩
삽입으로 인한 인체의 거부 반응은 없는가? 칩으로 과연 세포와 인체 부위를 자극하여 병을 고친다거나 정신, 최소한 행동의 통제가 가능할까?
이러한 제반 문제들에 대한, 기술적 실현 여부는 전혀 검증하지 못한 채 단지 이론적 가능성만 놓고 주장을 한다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물론이고
건담이라는 애니메이션에 나온 전투로봇도 먼 미래의 일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와 관련하여 제시한 다른 근거인 법 제도와 관련된 내용은 꽤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제도가 마련 되어 있어도 기술의 현실성과 제반 틀 등이 구성 되어 있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실제 생활에 접목시킬 수
없다. 본서에서는 마치 '베리칩'이 당장에라도 가능한 기술 장치로 여기는데 우리의 상식과 알려진 기술로는 봤을 때 그 칩의 실제 실현 가능성은,
언젠가는 가능하겠지만 당장에는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다. 따라서 '베리칩'은 '짐승의 표'라고 성급한 주장을 하기보다 '짐승의 표'일 가능성도
있지만, 현재 기술력의 한계로 '짐승의 표'가 아니라 그 개발을 위한 전단계가 아닐지 예상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좀더 유보하고, 신중함을
보이는 게 나았을 것이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만약 '베리칩'이 아니라 추후 개발 될 그 업그레이드 장치가 정말로 '짐승의 표'라면? 현재
개발된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고 소리 높여놨기 때문에 진짜 '짐승의 표'가 등장하더라도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베리칩'과 관련한 또 다른 의문과 논란은 칩 삽입에 따른 구원 여부이다. 저자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완강히 부인한다. 저자는 '베리칩'은 '짐승의 표'이기 때문에 그것을 받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확고히 말한다. 이와 연관하여 견인 교리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묻는다. '베리칩'을 받지 않으면 은행에서 금전거래를 못하고, 물건과 집을 살 수 없고, 세금을 낼 수 없고, 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없도록 법제화 되고, 상황이 그렇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묻는다. 상황이 정말 그렇게
된다면 누구라도 칩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칩을 받지 않으면 일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하지만 저자의 물음에는 성급한 오류가 있다.
'베리칩'은 실재한다. 정말로 시행 될지 알 수 없지만 (저자가 든 법적 근거에 따르면) 2013년 상반기부터 '베리칩'을 받도록 미국은
여러 부분에서 법 제도가 개편 되었다. '베리칩'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듯한 사회 시스템들이 조금씩 준비 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양보하여 사실이라는데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물음은 '베리칩' = '짐승의 표' 라는 수식을 만들어 놓고 봤을 때의
이야기이다. '베리칩'이 정말 '짐승의 표'일 경우에 해당되는 문제이다. 반대로 언급된 사회 시스템이 마련 되었지만,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괜한 호들갑으로 부질없는 자발적 불편을 겪는다는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다. 헛된 고민과 불안에 떤 어리석음을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만약 '베리칩'이 저자의 물음대로 정말 '짐승의 표'라면? 그렇다면 구원 여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해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본인은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고 고백하는 바, 설령 '베리칩'이 정말 '짐승의 표'라고 드러날지라도 우리
구원에 대해 고민 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본다. - 저자는 '한 번 받은 구원은 영원하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를 '추측이나 가정이나
체계화시킨 학문'이라며 부인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견인'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밝히신 진리이기 때문이다. '견인'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이다. - 하나님께서 성도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된 상황들을 피할 방도를 내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베리칩'과 관련하여 공식적으로 드러난 바가 전혀 없고,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그에 대해 지레
겁먹거나 걱정하는 것은 신자로서 온당치 못한 행동이다. 자신의 믿음의 미천함을 드러낼 뿐이다. 아직 가시화 되지도 않은 일을 놓고 걱정하는 것은
우리 삶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은 현실을 항상 주시하고, 시시각각 닥치는 위험에 우리 선에서 할 수
있는 한 미리 대비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대처하는 것이 더 온당 할 것이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라면 그것에 대해 좀더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언젠가 가시화 될 것이다. 그때 가서 어떠한 행동을 취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때 가서도 늦지 않으려면, 지금 미리 "베리칩은 짐승의 표다. 또는 아니다."라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것에 대한
진실이 명확히 드러나는 시점까지 차분히 기다리며 지금 이 시점에서부터 그것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 잠깐 언급 했듯이 '베리칩'에 대해 최소한 국내에서는 (본인의 짧은 정보력에 의하면) 공식적으로 보도된 바가 없다. 참 이상하지
않은가? 일각에서 무척 떠들썩한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다. 상황이 그렇다면 수면 위에 전혀 드러나지 않는 그것에 대해, 그것이 정말 모든 국민,
모든 사람에게 언젠가 삽입 될 장치가 될 것인지, 그것을 통해 인류 통제가 이루어질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베리칩'에 대해 전망한다면, 그것은 우려대로 정말 '인류 통제 목적에 전면적으로 사용'되거나 '애완견 혹은 의료 및 금융거래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거나 아니면 밝혀진 바와는 달리 '망상에 따른 해프닝'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 걱정 할 필요가
없다.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것과 관련된 일이 사실이든 망상이든 그저 묵묵히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인지 아닌지는 신학적 입장에 따라 의견이 갈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신학적 해석의 결과 그것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주장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는 저자의 지적은 옳다. '짐승의 표'를 해석하려면 그 자체만 놓고 학문적으로 해석 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말에 대한 예언과 현재의 상황을 견주어 보고, 관련된 말씀 및 그 앞뒤 문맥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물론 신학적
입장에 따라 계시록 내용을 상징이라 보아 '짐승의 표'도 단지 상징이라 해석한다면 이러한 총체적 고려는 필요 없을 것이다. - 그렇게 본다면
현재 세계의 정세는 '베리칩'은 '짐승의 표'가 아닌지, 그리고 지금이 정말 마지막 때가 아닌지 심각히 고려해 볼 만한 상황에 놓여 있다. 단,
이러한 추측은 잘못된 '세대주의', '시한부 종말론적' 해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현실은 면밀히 살펴보고, 엄격히 평가하되 성경에
억지로 끼워 맞춰서는 안 될 것이다. 반대로 성경을 과잉 해석하고, 본문이 말하는 그 이상으로 넘어가서 상황에 말씀을 끼워 넣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쨌든 '베리칩'은 '짐승의 표'다 혹은 아니다라는 결론은 둘 다 성급하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도 단정할 수 없다. 자기 입장에
따라 그저 이럴 것이라 추측 할 수 있을 따름이다. 반대로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보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베리칩'과
같이 어떠한 물건이나 장치일지, 문신이나 어떠한 마크일지 또는 비가시적인 어떠한 것이거나 가시적이지도 비가시적이지도 않은, 그저 상징일지 알 수
없다. 엄밀히 말해서 각자의 해석은 모두 추측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렇게 가정해보자. '짐승의 표'는 장치가 되었든 문신이 되었든 아니면 비가시적인 무엇이 되었든 그것은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 하에, 만약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면, 빠르게는 우리 시대에 종말이 도래하였을 때 다른 진짜
'짐승의 표'가 등장하더라도 그동안의 혼란과 미혹에 지쳐서 아무 의심 없이 받게 될 것이다.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아니라면, 그리고
종말은 계속적으로 소망해야 하지만 여전히 우리 시대의 일은 아닐 경우, 우리가 가져야 할 종말에 대한 소망은 자칫 약해지고, 불신자들로 하여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도매금으로 광신도 취급을 받고 신자와 기독교는 사람들의 더 큰 거부의 대상이 될 것이다.
이번엔 반대로 가정해보자. '베리칩'이 '짐승의 표'가 맞고 세상의 종말이 우리가 겪을 일이라면, 그럼에도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우리 중 누구는 거리낌 없이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는 구원 받은 자가 아니라 판단할 수 있다. 이때 구원
받은 자는 '베리칩'에 대해 걱정 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저들과 같이 계시록을 굳이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하니"(계 20:4)에
따라 구원 받은 자는 그 '표'를 받지 않을 것이고, 그에 따른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 그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밝혀보라고 한다면, "그때가 되면 알 것이니 미리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믿음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서는, 누군가 내게 "이 책 읽어야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굳이 권하고 싶은 책은 아니다. '베리칩'과
'세계정부'에 대한 아무런 관련 지식 없이, 그리고 신앙에 확고함 없이 본서를 읽는다면 괜한 걱정과 두려움 및 혼란을 갖게 되고 괜한 미혹만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본서를 읽고자 한다면, '베리칩 = 짐승의 표?'라는 등식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읽기보다 실제적으로 우리
생활에 언젠가 적용 될 '베리칩'이라는 기술과 그 장치에 대한 정보를 조금 얻을 목적으로 읽는게 나을 것이다. '베리칩'은 양면의 가능성을 가진
장치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 책의 내용에 동의하든 혹은 반대하든 우리는 '베리칩', '세계정부'... '허황된 음모론', '망상'이라는 성급한
판단보다는 이렇게 생각하고 대처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고 실제적인 처사일 것이다.
'베리칩'과 '짐승의 표', '세계정부'와 '종말' 사이의 무리한 가정과 논의는 거두고, 대신 '베리칩' 그 자체에 집중해보자.
'베리칩'은 실재한다. 그리고 그 기술과 발전 추이를 보건대 그것은 분명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실제 생활에 적용 되고, 사용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양면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리칩'은 선용된다면 인류의 편의를 크게 높여 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악용된다면 국민 통제와 감시를 위한 도구라는 음모론 진영의
우려와 같이 정말로 그렇게 사용 될 것이다. 따라서 신자 혹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두는 개인의 자유와 국민 모두의 안녕을 위해 그 발전과 사용을
차분히 지켜보는 가운데 악용 될 기미가 감지된다면 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그날을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 기꺼이 그날을 알려고 하는 것은 허망한 노력이다.
그 대신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수 있는지 알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소명에 감사하며 각자에게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므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리는 일에 집중하는 게 구원과 그 삶을 대하는 바른 자세이다. 더불어 우리는
종말의 날을 알려고 하기보다 종말 그 자체를 소망해야 한다. 이미 이 땅에 임한 종말을 직시하고, 다가올 종말을 기다려야 한다. 세상의 종말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각자의 종말보다 크게 뒤쳐질지 아니면 마지막 종말을 통해 우리 각자의 종말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신랑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그분의 오심을 기다리며 기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며 하나님께 영원히 함께 할 그날을 소망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 도리어 종말을 기대해야 해야
한다. 물론 종말의 때에 신자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고난이 찾아올 것이기에 인간적으로는 그날이 썩 내키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연약함으로 인한 두려움보다는 신랑을 맞이 할 기대와 설레임이 더 클 것이다.
종말의 날을 알 수 없지만,
택함 받은 그리스도인은 구원을 보장 받았기 때문에 걱정하고 두려워 할 것이 전혀 없다. 우리 앞에 어떠한 일들이 닥칠지라도 우리는 그 일들 후에
구원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 글의 초두에 언급한,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 일들에 침잠되어 두려움과 혼란에 빠지는 것은 신자에게 마땅한
행동이 아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예언은 그날에 일어날 일들을, 겪기 전에 두려워 떨고 겪으며 고통에 신음하라고 주신 말씀이 아니다.
그 말씀을 하신 이유는 그날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쳐 주시기 위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록 그 시기를 알 수 없지만,
그때가 언제이든, 그날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믿음을 굳게 지키며, 말씀 전파에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