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은 "...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교회가 끝날까지 지켜야 하는 지상 명령이다. 따라서 모든 교회는 이것을
지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바를 이루기 위해 힘써 행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많은 한국 교회가 그러한 예수님의 명령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 오늘 한국 교회들은 다른데 열을 올리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들이 집중하는 것은 이것이다. '모든 불신자를 제자로 삼아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 여기서 성장이라 하면 양적성장, 교인수 늘리기를
뜻한다.
교회들, 아니 많은 목회자들의 관심이 온통 교인수 불리기에 집중되어 있다. 그 이유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한 영혼의 구원, 잃은
양을 찾는 것이라는 그럴 듯한 핑계를 내세운다. 이것은 일견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틀린
말이기도 하다.
많은 목회자들이 참다운 목회를 추구하기보다, 한 '남자'로서,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며 '성공'이라는 신화를 쓰고자 하는 잘못된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이면에는 명예와 자랑과 안락을 추구하는 세속적 목적이 숨어 있다. 그들도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알지만,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식하여 마지 못해, 아니 의식적으로 잘못된 길을 걸어 간다. 하여 그들은 '교회의 성장', 대형 교회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그것을 꿈꾼다.
많은 중소형 교회의 담임 목사들은 교회를 더 크게, 그리고 부목사들은 훗날 담임 목사가 되어 교회를 성장시킬 것을 기대한다.
'비법은 없다'
본서는 대형 교회가 되기를 꿈꾸거나 교회를 성장시키려는 많은 작은 교회들, 그 목회자들의 잘못된 관점과 추구를 교정해 준다.
황새를 따라가려는 뱁새 같은 그들의 모습에 '비법은 없다'는 주장을 하며 작은 교회의 현실을 직시 할 것을 말한다. 대형 교회를 따르기보다
작은 교회의 현재를 분명히 알고 그만의 목회 방향을 설정 할 것을 주장한다. 진정한 교회됨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본문은 총 8장으로 되어 있다. 먼저 1장에서는 작은 교회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 교회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문제들을 밝힌다. 고령화,
저출산, 양극화, 세속화 등 교회의 성장을 저지하는 현실적인 문제를 보임으로 교회가 내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도 고려 할 것을 말한다.
2장에서는 7~80년 대와 같은 성장은 더 이상 없음을 알린다. 이제는 그때와 환경이 분명히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3장에서 5장까지는 그렇다면
작은 교회는 무엇에 집중하고, 어떠한 노력을 키울여야 하는지 실제적인 부분을 가르친다. 6장에서는 작은 교회들 목사들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작은
교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의 원인을 외부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서도 찾아 볼 것을 말한다. 7장과 8장에서는 작은 교회와 그 목사는 앞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면 좋을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상아탑에서 나온 책이 아니다. 현실성은 거의 없고, 겉만 번질한 이상만 늘어놓는 학자의 펜놀림의 결과물이 아니다.
학자이면서 동시에 현장 목회자, 자신이 개척하여 섬기고 있는 작은 교회의 목사가 그동안 경험한 바를 전하는, 현실성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서에는 작은 교회 목사로서의 저자의 경험과 고민이 담겨 있다. 흥미로운 것은 '비법은 없다'는 제목과 달리 내용에는 '비법'이 담겨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법'이 어떠한 차별화된 시스템이나 특별한 메뉴얼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교회가 당연히 추구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다. 저자는 그것을 '정도(正道)'라고 표현한다. 저자는 '정도(正道)'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작은 교회의 단점을 약화하고 장점을 살리는 것(46p)"
저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작은 교회가 추구해야 할 '정도(正道)'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 '정도(正道)'란, 설교, 세례, 성찬,
각종 모임 등을 작은 교회의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아쉬움이 있는데, 권징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점이다.
저자는 교회의 표지로 순수한 말씀 선포, 성례의 시행과 권징의 집행을 말하며 작은 교회도 이 표지를 통해 정체성을 지켜 나갈 것을
주장한다. 그런데 말씀과 세례와 성찬은 설명하고 권징은 전혀 설명하지 않은 점은 상당히 유감스럽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와 비교해서 참교회의 세
가지 표지를 실천하기 쉽다. 그런데 세 표지 중 권징은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시행하기 어려운 표지이다. 그 특성상 지키기가 망설여지는
표지이다. 그렇다면 작은 교회는 그 표지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 알려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다른 표지들은 설명하고, 권징에
대해서는 그냥 넘어간 점은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또 다른 아쉬움이 있다. 본서의 내용은 상당히 담백하고, 문장은 간결하다. 이것은 내용 전개에 있어는 장점이 되지만, 내용 이해에
있어서는 단점이 된다. 저자는 교회 성장이 긍정적인다. 그런데 이에 대한 양념(설명)이 부족하여 독자로 하여금 무의식 중에 '바른 목회 =
반드시 교회의 양적 성장'이라는 등식을 갖게끔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목회자의 노력에 따라, 그리고 노력과 상관없이 교회는 대형
교회가 될 수도 있고, 또 작은 교회로 남을 수도 있다. 교회는 대형 교회가 될 필요도 없고, 계속 작은 교회를 유지 할 필요도 없다. 대형
교회가 항상 긍정적인 것도 아니고, 작은 교회가 항상 부정적인 것도 아니다. 이 말은, 교회는 상황과 여건에 따라 그 형편을 잘 유지하면 된다는
말이다. 교회 성장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 입장이 바른 목회보다는 오늘의 세속적 교회 성장의 유행과 맞물려 자칫 '교회의 양적 성장의 추구'로
오인 될 수도 있어서 교회 '성장'에 대한 보다 명확한 설명과 입장 정리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본서가 많은 목회자들에게 도움이 되어, 작은 교회들이 정체성을 유지하며 그만이 할 수 있는 사명을 감당하는데 충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작은 교회는 결코 부끄럽지 않고, 비록 힘은 들겠지만 얼마든지 그 목회가 즐거울 수 있음을 알고 각성하면
좋겠다.
교회의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전하는데 있다. 교회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받들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이바지 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것은 다시 세부적으로, 교회는 그 몸을 구성하는 성도 개개인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목적은 기능적으로 예배, 선교, 친교, 봉사, 교육이 교회에 존재하는 이유가 된다.
목사는 이상의 내용을 교회가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대형 교회를 섬기든 작은 교회를 섬기든, 담임 목사이든
부목사이든 모든 목사는 원칙적으로 그 존재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의 많은 목사들은 그 역할을 잊은채 단지 교회 자체를 유지하는데
집중한다. 자신에게 사람을 다루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려는 듯 교회에 사람을 더 많이 불러 모으려 한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추앙을 받으려는 건지 사람을 더 끌어 모으는데 집중한다. 상당히 많은 수의 목사들이 돕는 자가 아니라 다스리는 자, 왕이 되길 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성실한 목사들에게 상당한 박탈감과 모멸감을 안긴다.
목사가 허황된 꿈을 품는 순간, 교회는 변질된다. 목사가 헛된 것을 추구하면, 교회는 타락한다. 이는 목사가 교회에서 성도들보다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심판하시기 위해 목사의 죄악을 허용하시는 까닭이다. 따라서 목사는 항상 자신을 바르게 지키고,
누구보다 말씀을 가장 잘 준행하는 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