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르트 신조 강해 -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 교리에 대한 위대한 신앙고백 개혁주의 신앙고백 시리즈 1
코르넬리스 프롱크 지음, 황준호 옮김, 김병훈 감수 / 그책의사람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진리에 무지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단 하나의 절대 진리를 거부한다. 상대적 진리를 부르짖는다. 네가 가진 생각만 참이 아니라, 내가 가진 생각도 참이라고 말한다. 이는 진리에 대한 심각한 무지다. 진리에 있어 상대적이라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진리는 변하지 않는 단 하나의 진실이다. 진리는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아도 똑같이 보인다. 이렇게 봤을 때 이렇게 보이고, 저렇게 봤을 때 저렇게 보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물론 장님과 코끼리와 관련된 예화와 같이 만지는 사람에 따라 진리를 다르게 인식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해석자가 잘못 해석 했을 따름이지 진리가 변했기 때문은 아니다. 진리가 상대적일 수 있는 경우는 이와 같이 해석자가 오류를 범했을 때 뿐이다. 진리는 진리 그 자체로 인식 했을 때에만 진리다. 다르게 인식을 했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그저 자기 생각일 뿐이다. 따라서 상대적 진리를 부르짖는 사람들의, 그가 가진 생각은 단지 그만의 생각(혹은 견해)일 뿐 진리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진리와 무관한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다. 진리에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이 한 발 양보해서, 겨우 진리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면, 진리는 자신을 억매는 사슬이라고 여길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진리는 나를 제한한다. 이것도 못하게 하고, 저것도 못하게 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리(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니다.)는 나를 자유케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제한하는 그것(바로 이것이 참 진리이다.)은 거짓가 아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신을 제한하는 참)진리를 부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참)진리를 자신과 상관 없는 것으로 여긴다.

 사람들에게 만약 진리가 존재하다면, 오직 자신을 만족시켜주는 것만이 진리다. (그들에게 있어) 내 인생은 내 것이다. 내가 먹고 사는 것은 내 영혼의 기쁨을 위해서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그저 오늘 하루를 즐기며 살기를 원한다. 따라서 나를 만족시켜주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바로 그것이 진리다.

 사람들에게 내일은 오늘의 반복일 뿐이다. 내일은 오늘의 연장이다. 오늘을 사는 것은 내일을 위함이 아니다. 오늘을 사는 것은 보상을 얻기 위함이다. 사람들은 오늘의 수고에 대한 보상을 찾는다. 만약 내 수고에 보상해 주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곧 진리이다. 단 하나의 절대 진리는 나를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참)진리는 나와 상관이 없다.

 진리에 대해 무지하고, 진리에 무관심한 오늘의 세대에게 단 하나의 진리를 부르짖는 우리(그리스도인들)는 바보들이다. 절대 진리만을 고집하는 우리는 그들에게 있어서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독선적인 사람들이다. 하나만 옳다며 다른 것을 거부하는 우리는 배타적인 광신도들이다. 이제 우리는 믿지 않는 (일부의) 사람들에게 미치광이 취급까지도 받는다. 우리는 현재 (어떠한 사람들의) 극심한 반대에 놓여 있다. 우리는 (동일한 사람들의) 극렬한 거부를 마주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진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개독이라는 오명을 받더라도 우리는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우리를 오해하고, 몰아 세워도 우리는 진리를 지킬 수밖에 없다. 좀더 유연해질 수는 없는가? 우리는 어떠한 평가를 받더라도 진리에 관해서는 결코 양보할 수 없다. 절대 타협할 수 없다. 고집을 부릴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그 답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나님은 택한 자를 구원 하셨다. 진리를 고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대적한 극악무도한 죄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불순종 했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을 저버렸다. 그분을 거부했다. 우리는 자의로 하나님을 모욕했다. 하나님의 손길을 뿌리치고 우리 갈 길로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모든걸 용서하셨다. 하나님은 그 외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 죄를 대신 지도록 하셨다. 그 아들을 통해 다시 품기로 한 자들을 구원 하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당신의 손길을 뿌리친 우리를 다시 거두셨다. 우리(참 그리스도인)가 진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도르트 신조 강해'

 본서는 이상의 사항을 간명하게, 그러나 더 확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인이 함축하고, 극히 일부분만 언급한 진리에 관한 이야기를 본서 '도르트 신조 강해'에서는 명확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 이 책은 세 부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개혁주의자요, 둘째는 비개혁주의자, 그리고 셋째는 비그리스도인이다.

 첫째 개혁주의자. 본서는 저자인 코르넬리스 프롱크 목사가 자신이 시무하는 한 자유개혁교회에서 했던 설교이다. 따라서 정확히 말하면 본서는 개혁주의자, 그중에서도 설교가 행해졌던 그 교회의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내용상으로 봤을 때의 이야기다. 책으로 출간된 본서의 대상자는 그것으로 국한 되지 않는다.

 책으로 출간 되었기에 그 대상자의 범위가 확대된, 이 책의 또 다른 대상자는 같은 그리스도인이지만 다른 관점을 가진 비개혁주의자들이다. 이들은 본서가 전하고 있는 칼빈주의 5대 강령인 '전적타락', '무조건적 선택', '제한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성도의 견인'에 대해 전혀 들어보지 못했거나 들어봤어도 무관심한 사람들이다. 혹은 5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나 그 이상, 아니면 전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마지막으로 본서는 불신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물론 불신자들은 본서의 내용을 들어 볼 일이 거의 없을 것이고, 설령 들어볼 기회가 있어도 무관심 할 것이다. 그리고 일단의 불신자들에게 본서의 내용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말장난으로 비춰질 것이다. 어쨌든 책으로 출간된 이상, 본서의 대상자는 불신자에게까지 확대 되었다. 그렇다면 이 한 권의 책의 대상자가 어떻게 세 부류로 나누어질 수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개혁주의자(일반적으로 '개혁주의자'와 '칼빈주의자'는 같은 의미로 혼용되어 사용 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개혁주의자'는 '칼빈주의자'를 포괄하는 좀더 넓은 의미로 구분 된다. 여기서는 둘을 같은 의미로 축소하여 '개혁주의자'로 통칭하여 사용 할 것이다.)들에게 있어 '칼빈주의 5대 강령'(이하 5대 강령)은 고백할 수밖에 없고, 유지/전수할 수밖에 없는 신앙의 귀한 유산이다. 그것은 성경 66권의 요약본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성경 내용에 있어 무척 중요한 사항들을 간명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다시 말해서, '도르트 신조'라 불리기도 하는 '5대 강령'은 기독교 신앙의 정체성을 밝히고 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과 근본을 명확히 전하고 있다. 성경의 전부를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성경의 핵심을 논하고 있다. 본서는 그러한 '5대 강령'을 충실히 강해하고 있다. '5대 강령'의 내용을 제함 없이, 왜곡 없이 성실히 , 그러면서도 풍성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을 충실히 따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인 개혁주의자들은 본서를 필독해야 한다.

 '5대 강령'의 탄생 배경은 여기서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잘 모르는 이들의 수고와 이해를 돕기 위해 간략히 언급하는게 좋을 것 같다. 17세기 초, 종교개혁으로 회복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의 복음의 가르침이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 하였다. 한때 개혁파 신학자였지만 그 길에서 벗어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를 혼란케 하는 '알미니안 신학'을 탄생시킨 '야코뷔스 아르미니스[Jacobus Arminius, 1560.10.10 ~ 1609.10.19]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 개혁주의 신앙고백과 가르침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개혁주의의 가르침을 변호하고 보호하기 위해 개혁파 신학자들이 모였고, 이때 탄생한 것이 바로 '칼빈주의 5대 강령'이다. 그때와 같이 지금도 그리스도인들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개혁신학을 거부한다. 그들은 특히 '5대 강령'에 대해서 크게 몸서리를 친다. 그것은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거나 단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한 것이라고 항론한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5대 강령'은 어떠한 변론에도 거부의 대상이 된다. 본서가 이처럼 개혁신학과 '5대 강령'을 오해하고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설득하여 돌이키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본서를 통해 최소한 그들에게 '5대 강령'이 무엇이고, 무엇을 말하는지는 충분히 전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5대 강령'에 대해 아예 들어보지 못했거나 들어봤어도 관심이 없던 이들에게는 관심을 조금이라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서는, 어쩌면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오늘과 같이 단순하고, 간단하며 한 눈에 들어오는 것만을 추구하는 세대에게 본서는 결코 적합하지 않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가격도 두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용 또한. 하지만 어떠한 계기로 구도자에게 본서가 전해지고 한 장이라도 읽혀지게 된다면, 본서는 그들에게 진리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오늘과 같이 복음을 왜곡하여 전하는 때에 복음을 잘 보존하고 있는 본서를 믿지 않는 지인들의 손에 쥐어 준다면 설령 당장은 한 구석에 둘지라도 언젠가 마음이 동하여 펼쳐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손길이 성경으로, 그의 영육이 구원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해 봄직하다!

 자, 이제 본서는 누구에게라도 추천해 줄 만한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본서의 내용을 드러내지는 못한다. 이상의 설명은 '본서는 어떠한 책인가?'라는 설명을 간접적으로 줄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본서는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설명 할 차례이다. 이에 대해서는 장황하게 펼쳐놓기보다는 간단히 전하는게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은, (추상적일테지만) 궁금증을 자아내기 위해서는 간단하게 말하고 싶다.
 본서는 앞서 언급한 '칼빈주의 5대 강령'을 강해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도 그 내용이 '5대 강령'에만 전적으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본서는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사죄와 구원을 전한다. 반면 복음을 거절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정죄와 심판을 선고한다. 다시 말해서 본서는 독자들에게 복음의 약속과 경고를 한치의 거짓과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전한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섭리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다. 20세기 이후, 오순절 은사와 신유 운동의 주도 하에 잘못된 가르침이 편만한 현재의 교회에, 성도들의 혼란한 신앙을 바르게 정돈해 준다. 본서를 제대로 읽은 독자라면, 읽는 중에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은 후에는 반드시 하나님 앞으로 무릎을 꿇고 그분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 드리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이 책이 전해진 것은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 할 그분의 특혜이다.

 사람들이 진리에 무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진리를 거부할까? 그들은 그 자신들의 죄 가운데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죄 가운데 갇혀 있기 때문에 진리와 멀어져 있다. 그들의 죄가 진리로 향하는 눈과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자꾸만 돌이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결코 스스로 진리로 향할 수 없다. 그들은 절대로 진리를 그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그렇게 계속적으로 진리에서 떠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계속 진리를 거부하며 조롱 할 것이다. 자신들의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른채.
 우리는 그들을 어떠한 말로도 설득할 수 없다. 우리의 어떠한 말에도 그들은 콧방귀를 뀔 뿐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 믿지 않는 이들에게 진리를 전해야 할 의무가 잊는 빋진 자들인 우리. 그럼에도 그들을 부지런히 이해시켜야 할까? 아니면 주저 앉아 이 세대의 어리석음을 넋놓고 탄식해야 할까? 둘 다 아니다. 그러면?
 먼저 우리는 조롱과 모욕을 당하더라도 진리를 끝까지 고수해야 한다. 어떠한 비난에도 진리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가장 먼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진리를 지키는데 힘을 써야지 그들과 같이 그들을 손가락질을 하는데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에 감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에게 진리가 가리워진 것은 그들의 죄가 일차적 원인이지만, 우리의 모습과 삶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지 않은 탓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 삶으로 영광과 찬송을 온전히 올려 드리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기회가 되는대로 진리를 전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이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정하신 그 때에 별안간 역사하셔서 또 한 사람의 택한 죄인을 무지와 죄에서 은혜와 구원 가운데로 이끄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로 족하다며 그것으로 만족한다면, 그는 구원 받지 못한 죄인보다 더 악한 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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