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교회의 개척자 요한 칼빈 - 칼빈 탄생 500주년 기념 칼빈평전
정성구 지음 / 하늘기획(호산)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흔히 '종교개혁자'하면 마틴 루터와 존 칼빈을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떠올릴 것이다. 중세 시대에 영적으로, 물질적으로 타락한 로마 카톨릭에 반하여 종교 개혁을 이끈 사람들은 그 둘 뿐은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종교개혁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에 가장 주목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문을 두드렸다면 존 킬빈은 그것을 열었다고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할 의도는 없었지만 시대의 상황과 요구에 의해 그 포문을 열었다. 그 뒤 칼빈은 종교개혁에 탄력을 가져 왔다. 특히 칼빈은 그가 남긴 매우 유명한 작품인 '기독교 강요'를 통해 개신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지난 2009년은 칼빈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 한 해 동안 칼빈 탄생을 기념하기 위하여 다른 어느 해보다도 국내외에서 칼빈에 관한 많은 책이 출간 되었다. 칼빈의 신학을 분석하고, 그의 삶을 조망하는 등의 다양한 책이 출간 되었다.
'교회의 개혁자 요한 칼빈' - 링크된 책 제목은 '개척자'로 되어 있는데 개'혁'자가 맞다.
이 책 또한 칼빈 탄생을 기념하기 위한 책 중 하나이다. 원래는 기고문으로써 저자가 한 신문에 1년 간 기고한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내용은 1년 52주에 맞춰 52개의 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이 책은 칼빈의 신학을 면밀히 분석하는 책이 아니다. 그의 삶과 업적을 조망하는 평전이다. 내용 구성이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눈에 띄는 특징이자 가장 큰 장점은 쉽고 재미 있다는게 아니다. 그것은 여러 장점 중 한 가지에 불과 할 뿐이다. 가장 큰 장점은 다른 책에서는 중요함에도 언급하지 않거나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지나치는 부분도 다른 내용과 같은 분량과 깊이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칼빈은 기독교 강요 외에 주석으로 유명하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 '칼빈' 하면 탁월한 신학자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만큼 그의 신학적 업적은 뛰어나다. 그런데 그에 못지 않게 칼빈은 강해 설교도 뛰어나다. 그리고 그는 지금의 제네바 대학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우고, 교수로서 학생들을 열정적으로 가르쳤다. 또한 그는 그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이 공부를 마친 후 각자의 고향이나 활동지로 돌아가 사역을 할 수 있게 하는, 선교사의 마음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즉 이 책은 위대한 신학자일 뿐만 아니라 목회자요, 교사요, 선교사요, 그리고 정치가요, 기도자로서의 칼빈. 그런 그의 다양하고, 왕성한 활동과 업적을 골고루 조망하는 것은 물론 그는 매우 병약했던 사람이라는 인간적인 면까지 두루 살펴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장점과 가치를 지닌다.
이러한 큰 장점과 함께 약간의 아쉬움도 있다. 그것은 반복적으로 수차례 언급하는 내용이 꽤 많다는 점이다. 특별히 중요한 내용일 경우 한 두 번 혹은 두 세 번 언급 하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아무리 중요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 이상 언급하면 잔소리가 되어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 줄어든다 - 물론 개인적인 생각이다. - 는 점을 감안하면 내용을 좀 다듬었다면 더 좋았을 성 싶다. 한 번에 쓴 글이 아니라 장시간, 서로 다른 시간에 쓴 기고문을 엮은 것이라지만 책으로 묶을 때 좀더 신경을 써서 편집을 했으면 되는데라는 아쉬움이 든다. 어쨌든 그것은 글을 읽는데 크게 방해가 되는 단점이 아니기에 그리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무튼 이 책을 통해 칼빈의 삶을 들여다 보면 그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것은 물론 그를 통해 자신의 삶에 큰 도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종교개혁기와 그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개신교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중한 자산을 남겨 많은 이들이 신앙의 빛을 잃지 않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그의 선한 영향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그를 비난한다. 그가 평생을 머문 스위스 제네바시를 이상적인 도시로 만드는 과정에서 빚어진 마찰과 그의 반대자들을 냉혹하게 처형한 것은 그에 대한 신랄한 비난의 근거가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비난은 대개 그저 악의적인 비난에 불과하다. 칼빈이 처한 당시의 상황과 그의 신념을 이해하지 못한, 이해하길 원하지도 않는 그저 비난을 위한 비난일 뿐이다. 물론 칼빈의 업적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할지라도 반대파에 대한 숙청을 무조건 옹호하거나 미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그가 처한 상황과 입장을 충분히 알고 이해한 다음 그의 행동을 평가해야 공정하고, 누구라도 (어느정도) 수긍 할 수 있을 것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지금 이 시대도 칼빈과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싶다. 칼빈으로부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지만 그로부터 많은 좋은 것을 배울 수는 있다. 부디 많은 이들이 칼빈으로부터 - 그렇다고 칼빈으로만 제한하는 것은 아닌 - 좋은 것을 취하여 그 가운데서 이 시대의 불의와 악을 멸하고, 선한 빛을 비출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탄생하길 소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