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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년 금융재벌 로스차일드 가문 (무선)
프레더릭 모턴 지음, 이은종 옮김 / 주영사 / 2008년 7월
평점 :
'로스차일드 家'
로스차일드 가문은 무려 250년 동안이나 부와 명예와 지위를 영속하고 있는 놀라운 가문이다! 물론 유럽 등지에는 아직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고귀한 가문들이 존재하지만 로스차일드 가문 만큼 그 시작과 현재가 놀라운 가문은 아마 없을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마이어 암셸 로스차일드(Mayer Amschel Rothschild)로부터 시작 되었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케토(ghetto - 중세 이후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강제 거주지역, 유대인 밀집촌 : 네이버 백과사전 참조)에 살던 그는 보잘 것 없이 작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안정된 삶에 만족하지 못할 만큼 컸다! 유대인들을 엄격하게 통제 관리하는 당국도 결코 그를 통제할 수는 없었다!
마이어의 부는 환전상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케토에서 운영하던 환전소는 '독일 내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회폐를 교환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은행이었다(본문 46p).'
마이어는 각양각색의 오래된 동전을 수집하여 그것을 되팔았다. 그렇게 그는 조금씩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그의 '다섯 아들들'이었다!
그에게 '아들은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강력한 도구(60p)'였다! '아들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되어, 그는 별 볼일 없는 유대인 떠돌이로 생을 마쳤을지 모른다. ... 아들들은 아버지가 흘린 피땀의 씨앗을 정성껏 길러 막대한 곡식을 거두었다(61p).'
다섯 아들들은 '아버지와 달리 머리가 비상했다(62p).' 그들은 비상한 머리를 각자 자신만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가문을 위해 사용했다. 아버지를 충실히 도와 발을 벗고 뛰었다. '보통의 성공 스토리에서는 아버지가 힘겹게 기초를 닦으면 이를 토대로 삼아 아들들이 올라서지만, 로스차일드가의 경우에는 아들들의 계획에 아버지가 지혜를 더했다(63p)'
다섯 아들 암셸, 살로몬, 나탄, 칼만, 제임스는 아버지 마이어가 로스차일드 은행을 세우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고, 프랑크푸르트, 빈, 런던, 나폴리, 파리에 있는 은행의 다섯 지점을 맡았다. 그들은 아버지를 도와 유럽 전역의 금융을 주무르게 된다. '5형제는 바로 돈 자체였다(105p).'
유럽의 다섯 지역으로 흩어진 형제는 각각의 가문을 이루었고, 자신들만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켰다. 그러나 가족이라 하더라도 서로 죽일듯이 싸우고, 돕지 않는 다른 가문들과는 달리 로스차일드 형제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항상 결속했고, 서로를 도왔다. 누구보다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성한 것이다! 그것이 로스차일드의 시조 마이어에서부터 오늘날까지 대대로 이어졌고, 그런 강력한 파트너십이 로스차일드가의 250년 동안의 부와 전통을 이어온 끊어지지 않는 끈이 된 것이다!
물론 파트너십만이 그들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 아니다. 250년 동안 그들을 있게 한 주요 재원은 세상을 꿰뚫어 볼 줄 아는 통찰력을 바탕으로 신속하고 빠르게, 과감하고 정확하게 치는 공성(攻城), 그리고 치밀하고도 튼튼히 방어하는 수성(守城)이다. 이 모든 것이 결합되어 그들을 있게 하였으니, 특히 그들의 파트너십, 형제애는 오늘의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형제라 하더라도 분가를 하면 남남이요, 때론 적으로까지 돌변하는 우리네와 로스차일드 가문의 사람들을 비교해 보면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혹자는 이렇게 말 할 것이다. "나도 형제를 돕고 싶지만 내 목구멍이 포도청인데...", "그들은 돈이 많으니 그런 것 아니겠는가? 나도 돈이 많으면 당연히 도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시작부터 함께 했다. 한창일 때나 어려울 때, 어느 때든지 함께 했다. 많든 적든 언제나 서로를 도왔다. 열 명의 자녀, 다섯 형제였던 예전이나 수백의 일족으로 나뉜 오늘이나 변함없이 말이다.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다. 서로 간에 신뢰와 사랑의 문제이다. 서로 신뢰할 수 없다면 돈이 많더라도 도울 수 없다. 사랑이 없다면 서로 돈벌이 수단, 단지 도구로만 볼 것이다. 로스차일드가 사람들은 시조 마이어의 유언을 대대로 충실히 지켜왔기에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