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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미로
아리아나 프랭클린 지음, 김양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중세판 CSI!'
이 책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미국 드라마 'CSI(Crime Scene Investigation)'라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인 평가로 그것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말이 가장 적당하지 않나 싶다.
의사이자, 해부학에 능하고, 수사술이 뛰어난 아델리아라는 여 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책 '죽음의 미로'는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지적 범죄 스릴러이다.
때는 헨리 2세가 잉글랜드를 통치하던 12세기 초. 이야기는 잉글랜드 옥스퍼드에 있는 한 여인숙의 지하 저장고에서 시작된다.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남자. 서로를 알아볼 수 없는 그들은 은밀한 거래를 한다. 그것은 암살을 부탁하는 것이다. 과연 누가 누구를 암살하려는 것일까?
여 주인공 아델리아는 어느 날 불쑥 잉글랜드 세인트알반스의 주교인 로울리의 방문을 맞는다. 그의 방문 목적은 헨리 2세의 정부인 로지먼드의 죽음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델리아는 그녀에 대한 헨리 2세의 만족스럽지 않은 대접과 로울리 주교와의 묘한 관계로 인해 달가워 하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몇몇 일행과 함께 수사를 위해 길을 떠난다.
이 책은 중세를 배경으로 한 역사 스릴물이다. 역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매우 관심이 갔다. 게다가 내가 참으로 즐기는 스릴러인데 어찌 아니 볼 수 있으랴!
위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해 매우 집중하여 읽었다. 거기에 나의 관심을 더욱 자극시키는 게 한 가지 더 있었으니 그것은 시대적 배경이었다!
헨리 2세의 이야기는 국내소설 퇴마록 - 세계편 2권 - 에서 처음으로 접했고, 대학교에서 영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강의를 통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영국 왕들 가운데 가장 관심이 있는 두 왕 - 헨리 2세와 엘리자베스 1세 - 중 한 명이 등장하니, 그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너무나 기뻤고,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중에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이 간간히 언급되니 앞으로의 내용을 추측하고, 되새기는 재미가 매우 쏠쏠 했다. 하지만 그러한 나의 재미를 크게 반감시키는 아쉬운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스릴러의 묘미는 긴장감과 긴박함인데 500여 페이지라는 너무나 방대한 분량 탓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그것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계속되는 죽음, 그것이 하나로 이어지는 모습이 너무나 작위적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스릴러의 가장 큰 묘미는 허를 찌르는 반전 - 물론 요즘에는 반전이 너무 흔해서 왠만한 것은 쉽게 예상되고, 진부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 인데 후반부에서 베일이 너무 허탈하게 벗겨지고, 이야가 예상했던 것보다 맥 없이 풀려버렸다. 정확히 말하면 - 투정이긴 하지만 - 예상했던 방식으로 이야기가 풀리지 않았다.
이야기는 크게 봤을 때 두 장소 - 고드스토 대수녀원과 웜홀드 탑 - 만을 배경으로 진행 된다. 이야기가 좁은 장소 혹은 한정된 장소에 집중되면 답답함을 주지만 그만큼 불안감과 긴박함 그리고 긴장감을 더욱 유발시킨다. - 물론 그것은 작가가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지만 말이다. - 그러나 그것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을 뿐더러 이야기의 속도가 너무나 떨어졌다.
이야기의 속도가 떨어졌던 이유는 각 사건의 발생, 그것의 수사 과정이 불필요하게 길었던 탓이다. 긴 사건 수사 과정을 만회하기 위해서는 수사과정을 좀 더 세밀하게 묘사하고, 그것에 전문적이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궁금증을 유발하여 풀어주어야 하는데 그것이 부족했다.
그리고 사건들의 발생 원인이 훤히 보인다는 점, 그것이 하나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이 너무나 쉽게 예상되었다. 덕분에 - 원래 소설이라는 게 작위적인 것이지만 보통은 이야기의 작위성이 느껴지지 않는데 -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가장 기대했던 것은 주인공의 직업이었다! 주인공인 아델리아의 직업 - 공식적인 직업은 아니지만 - 은 의사이자, 법의학 수사관이다. 개인적으로 그것을 어떻게 드러낼까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만큼 흥미롭게 드러내지 못해서 매우 아쉽게 느껴졌다. - 바로 위에서 살짝 언급 했듯이 - 사건의 수사과정과 시신을 대하는 모습을 좀 더 디테일하게 그렸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시대적 배경을 고려 했을 때)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과 (역시 시대를 생각 했을 때) 그녀의 직업이 매우 전문적이라는 사실이 매우 신선하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만족스럽지는 못했지만 정말 관심을 갖고 본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