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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세계사 - 판사의 눈으로 가려 뽑은 울림 있는 판결
박형남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평점 :
개인적으로 ‘재판’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다. ‘부당한 판결’이다. 재판부의 오판 혹은 증거 조작으로 무고한 사람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는 것 말이다. 이는 소설이나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다. 멀게는 그 유명한 소크라테스의 일화부터 가깝게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1심 판결 등 실제임은 물론이고, 종종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사법부의 기능과 역할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재판으로 본 세계사’
흥미로운 책이 출간됐다. 제목부터 흥미를 크게 돋운다. 이 책은 재판이라는 주제로 세계사를 살핀다. 세기의 주요 역사들을 통해 과거를 더듬고, 오늘의 길을 찾는다. 기원전 399년 ’소크라테스 재판’, 1535년 ‘토머스 모어 재판’, 1633년 ‘갈릴레이 재판’, 1894년 ‘드레퓌스 재판’, 1966년 ‘미란다 재판’ 등 15개의 재판을 추적한다. 개인적으로는 ‘소크라테스 재판’, ‘토머스 모어 재판’, ‘갈릴레이 재판’, ‘찰스 1세 재판’, ‘세일럼 마녀 재판’, ‘드레퓌스 재판’, ‘미란다 재판’을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일부는 배경 지식이 있었고, 나머지는 내용은 모르지만 익히 들어봤기 때문이다.
내용도 흥미롭지만, 저자 또한 흥미롭다. 저자는 현직 판사로 주제에 가장 걸맞은 저자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 작가가 아님에도 글솜씨가 좋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솜씨도 매우 좋아서 술술 읽혔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각 장의 도입부에 해당 장의 내용과 연관된 우리나라 사건이나 이슈를 배치하여 시작부터 흡입력을 느꼈다. 만약 해당 주제만 다뤘다면 배경 지식이 없는 재판들은 지루하게 느꼈을지 모른다. 그러나 초반에 우리나라의 사건들을 다룸으로써 지루하고 낯선 느낌이 크게 상쇄됐다.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세계의 재판이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재판은 단순히 한 사람에 대한 유무죄를 판단하고 형을 확정 짓는 행위가 아니다. 재판은 각 시대와 나라의 사회 쟁점을 파악하고, 그 시대 그 나라 사람들의 심리와 문화 등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동시에 세상이 현재 어디까지 와 있고, 어디로 나아가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굳이 다른 나라의 재판 기록을 살필 필요가 있을까? 그 당위성은 충분하다. 지난 시대, 다른 나라의 재판 기록을 살핌으로 우리의 현재를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다. 우리가 사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게 돕는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에서 특정 이슈가 발생했을 때 우리가 그 이슈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이런 관점에서 재판 기록은 우리 사회를 새롭게 만들어 가는 자원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 무겁고도 뜨거운 이 화두는 때론 우리에게 사법부에 대한 의혹과 불신을 심어주기도 한다. 정의의 공정의 상징인 재판이 때론 권력자들에 의해 악용된다. 정권 유지와 보호라는 미명하에 애먼 사람을 괴롭게 만드는 고문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국민은 희망을 잃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수만은 없다. 재판, 사법부에 대한 무관심은 곧 우리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주권을 위정자들에게 반납하는 꼴이 된다. 이 책의 ‘드레퓌스 재판’이 알려주는 것처럼 끝까지 포기하면 안 된다. 사법부에 맞선 힘들고 지난한 싸움과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투쟁은 반드시 정의를 쟁취하게 한다. 그것은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