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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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핀들레이는 어느 시점에 연기를 포기하기로 결심한걸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냥 나이 때문이었을까? 어쨌거나 늙기는 했다. 마흔다섯, 쉰, 그 언저리다. 지금이 포기할때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조엘이 그랬을 거라고 사람들이 추측하듯이) 나이 서른여덟에 아직 에이전트도 없을 때?
(다들 알다시피 케빈의 경우처럼) 나이 마흔에 여전히 룸메이트와 같이 살고 있고, 풀타임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한 해에 배우로 번 돈보다 파트타임 웨이터로 번 돈이 더 많을 때? 살이찌고 머리가 벗어졌을 때, 아니면 조악한 성형수술로 살과 대머리를 감출 수 없게 되었을 때? 야망을 따른다는 게 어느 선부터용감한 게 아니라 무모한 게 되는 걸까? 언제 멈추어야 하는지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더 완고하고 덜 고무적이었던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더 희망적이었던) 옛 시절에는 모든 게 훨씬 더 분명했을 것이다. 마흔이 됐을 때, 혹은 결혼했을 때, 혹은 애들이생겼을 때, 혹은 5년, 10년, 15년 동안 노력해보고 나면 그만두겠지. 그러고 나면 진짜 일자리를 구할 테고, 그러면 연기와 그에 대한 꿈은 저녁노을 속으로 희미하게, 따뜻한 욕조 안으로미끄러져 들어가는 얼음 조각처럼 역사 속으로 고요히 녹아 사라질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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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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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파티에서 그는 사람들을 붙들거나 사람들에게 붙들렸고, 삼삼오오 모인 온갖 무리의 중심을 차지하고는 이곳저곳을넘나들며 한담을 모으고 무해한 소문을 뿌리고 비밀을 나누는척했고,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아 사람들이 미워하는 사람들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날 밤 그는 대체로 맨 정신으로 기민하고 의미심장하게방 안을 돌아다니며, 늘 하던 대로 움직이는 세 친구들의 사진을 찍었다. 자기가 친구들 뒤를 따라다니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어느 순간, 문득 보니 세 사람만 창가에 모여 있었다. 주드가 뭐라고 말하자 나머지 둘이 그말을 들으려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더니, 다음 순간 셋 다 몸을뒤로 젖히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순간적으로 동경심과 희미한 질투심을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벅찬 승리감을 경험했다. 두장면을 다 찍었기 때문이다. 오늘 밤 난 카메라야, 그는 혼자 말했다. 그리고 내일은 다시 제이비가 되는 거야.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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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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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드와는 그 일에 대해 절대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로 그는 주드가 크고 작은 온갖 종류의 고통에 시달리는 모습을, 조그만 상처에 움찔하는 모습을, 때로 너무 막대한 고통이 덮치면 구토를 하거나 바닥에 고꾸라지거나 그냥 의식을 잃고 기절해버리는 모습들을 봐왔다. 지금 거실에 있는 주드의 모습처럼.
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늘 왜 주드와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지 않았는지, 왜 주드에게 그럴때 어떤 기분인지 말해보라고 하지 않았는지, 왜 본능이 시키는대로 감히 행동하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그냥 옆에 앉아 다리를 문질러주고, 멋대로 어긋나는 신경말단을 주물러 가라앉히려 해보지 않았을까. 대신 그는 여기 욕실에 숨어 바쁜 체하고 있다. 가장 소중한 친구 하나가 바로 저기지저분한 소파에 철저히 홀로 앉아 산 자들의 땅으로 돌아오기위한, 의식을 되찾기 위한 느리고 슬프고 고독한 여행을 하고있는데 말이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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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라이프 1
한야 야나기하라 지음, 권진아 옮김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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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 보신 적 있어요?" 딘이 아버스의 사진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한 번도요." 윌럼이 말했다. "다이앤 아버스, 좋네요."
딘이 움찔하더니, 조그만 이목구비가 그 조그만 얼굴 한가운데로 매듭이라도 짓듯이 모여들었다. "디앤이에요."
"네?"
"디앤. 저분 이름은 ‘디앤‘이라고 발음한다고요."
두 사람은 간신히 웃음을 터뜨리지 않고 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 "디앤이라고!" 나중에 그 이야기를 들은 제이비는 말했다.
"맙소사! 이런 허세 쩌는 새끼 같으니."
"하지만 ‘너의‘ 허세 쩌는 새끼기도 하지." 주드가 말했다. 그이후로 딘은 내내 "디앤"으로 불렸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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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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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병풍의 그림은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강변의 갈대, 그리고 걸식하는 법사다. 휘늘어진 버드나무둥치에 털썩 주저앉은 법사는 달을 향해 쩌렁쩌렁한 목소리를내며, 격렬하게 비파를 타고 있다. 두 눈이 멀어 광대한 강변 일대에 쏟아지는 푸르른 달빛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때가 꼬질꼬질한 그의 오체는 삼라만상을 그대로 포착하고, 무궁한 시간과공간에 녹아들어 있다. 팽팽한 현의 떨림은 미적지근한 밤기운을자극하여 봄을 증폭시키고, 병풍 옆의 초라한 이불 속에 기어들어 있는 소년의 아직 두부처럼 여린 영혼에도 깊이 스며든다. 볏짚을 채운 요와 고이보리(종이나 천 등으로 잉어 모양을 만들어,
사내아이들이 잉어처럼 기운차게 자라기를 기원하며 단옷날 장대에 높이 매다는 것-옮긴이)를 부셔 만든 이불 속 아이는 바로 30년 전이제 막 열살이 된 나다. -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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