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글을 써서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되는 삶.그것이 스무 살의 내가 간절히 꿈꾸던 삶이었다.나는 지금 내가 꿈꿔왔던 미래에 당도해 있다는 것을,윤주성의 말로 인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설명할 수 없는감정에 가슴이 울렁였다. 마치 오래전의 내가 오늘의 내게작고 반짝이는 돌멩이 하나를 던져놓은 그런 기분이었다. - P95
그렇게 산 넘고 물 건너 힘겹게 닿은 몬토크의 바닷가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눈은 한 톨도 내리지 않았다.그저 메마른 목초지에 해변이 펼쳐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나 아연실색할 만큼 파란 바다 앞에서, 세상의 온갖 빛이다 비추고 있는 것 같은 선명한 빛깔 앞에서 스무 해를살며 앓아온 모든 시름이 다 씻겨 내려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이내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귀가 떨어져 나갈 것같은 추위를 느꼈다.) 윤주성 역시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이전에 본 적 없던 환희에 찬 표정으로 ‘좋다‘는 말만 계속 반복했다. - P88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홀연히 미국으로 향하겠다는윤주의 선언을 듣고서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나와 한몸처럼 비슷한 것을 바라보고 느끼고 있다고 믿었던 윤주성이 실은 부모님의 차를 물려받고, 수업에 늦으면 택시를탈 수 있는 부류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윤주성의 미련 없음과 용기가 부러웠다. 그 용기를 가능하게 해주는 환경이‘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말해주는 부모님의 조력이부러웠다.내게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같은 건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가로막는 것들만이 가득했을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세상 모든 것이 내 앞을 가로막아한 줄기의 빛도 새어 들지 않는 것만 같았다. - P78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 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 - P15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이 준 이 질문에오랫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생물학을 들여다보고서야 뻔한답이 있는데도 모르고 살았음을 알았다. ‘우리의 삶에 주어진 의미는 없다.‘ 주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찾지 못한다. 남한테 찾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삶의 의미는 각자 만들어야한다. ‘내 인생에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까?‘ ‘어떤 의미로 내 삶을 채울까?‘ 이것이 과학적으로 옳은 질문이다. 그러나 과학은 그런 것을 연구하지 않는다. 질문은 과학적으로하되 답을 찾으려면 인문학을 소환해야 한다. 그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목적이다. -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