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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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것은 쉽게 사라진다. 첫눈, 미소, 할머니, 인생의 봄. 왔다가 금세 가는 것. 생각을 하고 있으면 이런생각을 내가 했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생각이 생각하고, 생각을 생각한다. 생각은 사건 후에 온다. 시간이 지난후, 그때를 기억한 마음에 결정처럼 내려앉는 것. 다마네기처럼 내가 미끄러워서, 내 존재가 미끄러워 사랑하는사람을 붙잡아두지 못하는 걸까 고민한 적이 있다. - P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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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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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머리 빗겨줘. 계속 멈추지 마."
사람들 사이에 강이 생기면 그 강을 메우고 싶어 하는버릇이 이때 생겼다. 나는 할머니의 손, 머리를 쓰다듬는손길, 나를 향해 두런거리는 순한 농담들이 계속되길 바랐다. 할머니의 손길이 좋아서 내가 할머니의 슬픔을 감지한 걸 모른 척했다. 모른 척하기, 그건 수도 없이 해온일이다. 무언가를 들키는 순간 어른들은 쉽게 무너진다.
화를 내거나 고개를 파묻고 싶어 하고, 어느 때는 울기도 한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른들을 바로세우기 위해, 그들을 돌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모르는 척하기뿐이었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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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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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있다. 붉음과 빛남을 흉내낸 인조보석처럼. 박혀 있다. 어른의 행동? 그건 유년의 그림자, 유년의 오장육부에 지나지 않는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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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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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본질은 약한 척이다. 약함을 인정하는 일. 당신이 나를 돌본다면 나역시 당신에게 무언가를 주겠다는 서약도 포함된다. 귀신에게 내 약한 목덜미를 보여주어 귀신의 공격 의지를 잃게 만들어야 했다. 기도를 하는 중에 대문 쪽을 바라보면 감나무 이파리들도, 시멘트바닥도, 기어가는 개미떼도, 내가 신은 어른 슬리퍼도,
귀신을 향해 맞잡은 두 손도, 밤의 색으로 물든 것처럼 보였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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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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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시작되는 건 한순간이다. 미움이 쌓이는 데엔평생이 걸릴 수 있지만, 일곱 살 때 그걸 알았다. 그 빈대가 아니란 것.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선 평생을 노력해야 할 수도 있다는 걸 단박에 알았다. 뻥튀기 아저씨가 ‘뻥‘ 소리를 제조하는 리어카 앞에서. 내 눈에 그가 하는 일은 굉음을 제조하는 일처럼 보였다. 뻥튀기를 만들어내는 일이라기보다 제조하는 과정-일련의 시간,
초조와 흥분이 섞인 기다림, 어수선한 가운데 주목받는일, 발걸음을 불러 세우는 일, 아이를 겁주고 어른을 웃게 하는 일을 전시하는 게 더 중요한 듯 보였다. 사람들은 기다렸다. 열렬한 기다림이 아니라 지나가는 길에멈춰 섰을 뿐이라는 듯한 기다림이다. 사람들은 뻥튀기가 아니라 소리를, 소리가 나기 전 긴장을, 소리와 함께 해소되는 그 무엇을 기다렸다. -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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