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발로 인식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의 눈을 보는 게 싫었다. 새까만동공 너머에 비치는 마음이 꺼림칙했다. 차라리 발이 낫지. - P17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다. 사람들은 이런 삶의 방식이 비열하다고 비난한다. 정작 본인도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나는 그들보다는 솔직하다. 적어도 인정할 줄은 안다.인간관계는 전략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환한 미소로 속내를 숨기고 상대의 약점을 집요하게, 그리고 빠르게 파고든다. 친밀감을 유도한 후 우위를 점하고 ‘우리‘라는 허울 좋은 말을 붙여편을 가르면 끝. 그런 점에서 삶은 게임과 닮았다. - P11
중학교 졸업장은 허무할 정도로 가벼웠다. 시린 바람 한 번에날아가 버린 종이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떠도는 구름 사이로하늘이 보였다. 저 푸른 빛 너머에 있는 별은 그 애가 좋아하던 것이었다."W에서 한 뼘."이 한마디를 주문처럼 기억하고 있다. 그 애는 손을 쭉 뻗어 막막한 하늘을 가리키며 그곳이 제집이라 했다. 자기는 이 별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고, 먼 우주를 날아와 지금 이곳에 있는 거라고,그건 너를 만나기 위함이었다고.눈발이 날렸다. 새하얀 눈송이는 땅바닥에 내려앉자마자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내 존재 속에 그 애라는 무게가 하나둘 떨어지듯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자취를 남기듯이. - P7
"요즘 같은 날씨에 코트 입고 다니는 게 정상이니? 내일부터 안 입고 다녀봐. 다닐 만할걸?"금성무는 그렇게 설득했고 세탁소 사장도 "지금은 겨울옷을 싹 정리해서 넣을 때지. 입을 때는 아니야" 하고도왔다. 하기는 강화에 있었다면 지금까지 코트를 입고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추웠고 그건 몸을덥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나를 안정적으로 눌러줄 얼마간의 무게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나 같은 건누군가 놓친 유원지 풍선처럼 날아가버려도 그만일 테니까. 대문 밖만 나가면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는 섬과, 사람물살을 헤치고 다닐 때마다 생소한 얼굴들이 차고 슬프게다가왔다 사라지는 이곳의 봄은 완전히 다른 계절이었다. - P87
"장마가 그런데 어쩔 것이야, 다음을 기다려봐야지. 그런다고 바다 소금이 어디 가버리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말이야, 영두야. 꼭 차 다니는 도로 같은 거라서 언젠가는유턴이 나오게 돼. 아줌마가 요즘 운전을 배워본 게 그래.""유턴이요?""응, 그러니까 돌아올 곳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알고 있으면 사람은 걱정이 없어. 알았지? 잘 왔다. 잘 왔어." - P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