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내 마음속에 남긴 무언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건 정말이지 ‘무언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소설을 읽고 났을 때 각자의 마음속에 서로 다른 형태로 남는 고유한 자국이다. 소설마다 다르고 또 그 소설을 읽는 사람 각각이 다른, 두 지문의 결합같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자국.
나는 ‘칼을 든 노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무언가‘ 새겨져 있던 자국이 떠올랐다.
"혹시 구병모 작가님 말하는 거야?"
"맞는 것 같아!"
세상에. 한국에서도 만나면 너무나 반가운 한국문학의 독자를 핀란드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생각하지못했다.
"세상에, 그 소설 좋잖아."
평소라면, 한국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나는 주책맞게 휴대폰을 열었다.
"그 작가님이랑 나랑 인스타그램 친구야. 볼래?"
유명 인사와의 친분을 자랑하는 속물이 된 것 같아말하면서도 스스로가 너무 웃겼지만 그래도 왠지 그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티나와 내가 비록 처음 만난 사이지만 실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고, 우리가 책과 소설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어필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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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게, 사이좋게 잘 놀다와!"
친구의 어머니께 그런 말, ‘사이좋게 잘 놀아라‘라는말을 들으니 갑자기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 느낌이 너무나도 좋아서 친구 어머니의 따뜻한음성을 마음속 깊은 곳에 소중히 품고 자꾸만 곱씹게되었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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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진이는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다. 예진이를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은 누구라도 같은 말을 할 거였다. 언제나 말을 예쁘게, 기분 좋게 하는 사람. 그래서 만나면나까지 덩달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사람. 만나는 사람에게 긍정적인 기운을 주는 사람. 바르고 또 밝은 사람. 인간 비타민. -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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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어. 말도 안 돼. 내년이면 15년이라는 거야?"
"그런 건가? 왜 이렇게 나이를 빨리 먹었지? 미쳤나봐.‘
우린 둘 다 ‘미쳤다‘는 말을 했지만 뭐가 미쳤는지주어가 없었다. 사실 미친 건 아무것도 없었고 다만 시간이 정직하고 착실하게 흘렀을 뿐이었다.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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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지금까지 잠자코 들어주셨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런 믿음 또한 모순이겠지. 그러니 조금다르게 말해볼게. 이야기가 존재하고 그 이야기를 알고 나서혹시라도 오언을 이해하게 되어버리기라도 한다면, 내가 나를용서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고. 그래서 나는 가장 중요한 물음을 처음부터 건네지 않고 내내 외면했다고.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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