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설이 내 마음속에 남긴 무언가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건 정말이지 ‘무언가‘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하나의소설을 읽고 났을 때 각자의 마음속에 서로 다른 형태로 남는 고유한 자국이다. 소설마다 다르고 또 그 소설을 읽는 사람 각각이 다른, 두 지문의 결합같이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지닌 자국.
나는 ‘칼을 든 노파‘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내 마음속에 남아 있던, ‘무언가‘ 새겨져 있던 자국이 떠올랐다.
"혹시 구병모 작가님 말하는 거야?"
"맞는 것 같아!"
세상에. 한국에서도 만나면 너무나 반가운 한국문학의 독자를 핀란드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생각하지못했다.
"세상에, 그 소설 좋잖아."
평소라면, 한국이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텐데,
나는 주책맞게 휴대폰을 열었다.
"그 작가님이랑 나랑 인스타그램 친구야. 볼래?"
유명 인사와의 친분을 자랑하는 속물이 된 것 같아말하면서도 스스로가 너무 웃겼지만 그래도 왠지 그 행동을 멈출 수 없었다. 티나와 내가 비록 처음 만난 사이지만 실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다고, 우리가 책과 소설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다고 어필하고 싶었다. 동시에 그 순간만큼은 내가 이런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P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