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저는 그 사람의 과거를 좋아왔어요. 등장하는 사람들의 직업이나 이름, 지명, 시기, 연도가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었지만.
결국 그 일기는 그의 생의 기록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아이와내가 거짓말에 취해 잠든 벽 건너편에서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분노가 치밀어올랐고, 나중에는 맥이 풀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더군요. 시간이 지나자, 제게는 한 가지의 질문만 남았어요. 그 사람이 어디로 도망갔는가, 왜 나를 제물로 삼았는가, 계획적인 접근이었나.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어요. 그보다 제가 묻고 싶은 건 그가 대체 왜 그 일기를 내게 보여줬는가예요. 마음만 먹는다면 떠나기 전에 얼마든지 그걸 없애버릴 기회가 있었을 텐데, 전시라도 하듯 책상 위에 올려두었거든요. 마치 날더러 이걸 읽으라는 듯이 말이에요. 그건 또다른 기만이었을까요. 아니면 일말의 참회였을까요? - P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