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에는 안개가 참 중요한 소재로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 안개라는 건 대기 중에 뿌옇고 습한 것인 동시에 상대의 진심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인공 눈물로 눈을 닦아 보아도 소용이 없지요. 안개는 눈이 아니라 마음 위에 드리워진 것이니까요. 살면서 두텁게 쌓아 올린 편견을 나만의 지혜로 착각하며세상을 이것과 저것 둘 중 하나로 판단하는 사람이 누군가가 하지 않은 것을 했다고, 혹은 한 것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을 때. 상대방은 얼마나 무력하고 외로울까요. 심지어 그들이 사랑하는 사이라면 말입니다.마음 위에 안개를 걷어내고 밝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볼수 있는 지혜, 그렇게 편견 없는 가슴으로 상대를 품을수 있는 용기. 꼿꼿하고 바른 자세로 살아간다는 건 단지 어깨를 펴고 허리를 바로 세운다는 게 아니라 바로그런 용기와 지혜를 실행하는 삶일 겁니다. - P35
나이를 먹는다는 건 제때 하지 못한 캐치볼이 늘어가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제때 고맙다고 말하지 못해 놓쳐버린 것들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여러분의 캐치볼을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기왕이면 당장이요. - P31
우리의 손가락이 단단히 얽혀 서로에게 제 자국을 남김과 동시에, 나는 내 이름을 말한다. 그리고 그는 그의 이름을 말한다. 계약서는 없다. 유일했던 가족의 어떤 서류에도 내 이름이 없었듯, 그와 나는 한 종이를 공유하지 않는다. 다시 마주 본 우리는 서로의이름을 엇갈려 입에 담았다. 생의 끝까지, 그리고 생 이후에도 함께할 수 있을 유일한 존재. 나는 지옥으로부터 얻어낸 남자를 향해웃었다. - P318
아버지랑 언니네 어머니의 무덤을 줄곧 혼자서 돌본 네 마음.네가 얼마나 아버지랑 누나를 좋아했는지.그 마음은 모두 언니한테 가 닿았어.따로 떨어져 살게 되고서야 너랑 언니는 천천히 남매가 된 거야. - P162
"너 말이야-왜 갑자기발길을뚝 끊었었어?""매년여름방학때마다왔었잖아.""심호흡을할 수 없게 돼서." - P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