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내 나이 예순아홉. 내년이면 일흔이 된다. 늘그막에먹고살려고 학력과 이력을 속인 내 인생은 아이러니하다. 결혼 후 시어른들을 모시고 남매를 낳아 기르는 동안 한 번도 나자신과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여유가 없었다. 그 벌을60대 초반에 톡톡히 치렀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온갖 일 다겪으면서 그 고초가 나의 몫이라 여겼다. 명절이면 100명의손님을 치렀고, 시동생 결혼식 음식도 시할머니 상을 당했을때도 집에서 300명 손님을 혼자 치렀다. 심지어 시외삼촌 상을 당했을 때도 그 집 딸과 며느리는 방 안에 앉아 울기만 해그 많은 손님 수발을 혼자 드느라 상이 나던 날 쓰러졌다. 그시절에는 관혼상제를 다 집에서 했다. 하다못해 친척들 돌, 백일, 약혼식, 결혼식까지. 시댁은 물론 시할머니의 친정, 시어머니의 친정 일까지 불려 다녔다. 그곳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 내인생이었다.
그 일들을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했다. - P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