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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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보는 건 좋아하지만, 별에 대해 공부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알아볼 수 있는 별자리는 딱 두 개다. 하나는 국자모양의 북두칠성이고 하나는 더블유(W) 모양의 카시오페이아 자리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문득 옛친구를 만난듯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밤하늘을 보지 않았구나. 가끔 보름이 되면 밤하늘을 쳐다보긴 했어도 별자리를 볼 생각은 안했었군.

제목부터 우주적인 냄새가 폴폴 풍겨나오고, 그림 역시 환상적으로 아름다워서 판타지인가 싶었는데, 반정도는 맞은 듯 하다. 그게 뭔 소리냐고? 성질 급하시긴. 이제부터 차근차근 이야기할테니 잘 들어보셔.

표제작이자 본문 수록 첫작품인<카시오페아 공주>는 과거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한 남자가 새로운 사랑에 눈뜨면서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인가,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 갈등하는 내용이다. 희준은 삼십대의 약사로 몇년전 집에 침입한 강도때문에 아내를 잃고 아이와 둘이서 살고 있다. 그의 취미는 격투기로 나중에 그 범인을 만나면 그때의 복수를 하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 이런 그에게 또다른 사랑이 찾아왔다. 딸의 유치원 부담임으로 스스로를 외계에서 왔다고 하는 그녀에 대해 희준은 난색을 표하지만 그녀의 순수함과 사랑스러움에 차츰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그녀를 두고 희준은 두 가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다지 길지 않은 내용인데 이 이야기는 참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이모와 이모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희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에 얼마나 집착하고 있는지, 그 집착때문에 소중한 무언가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준다. 사실 과거란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희준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있다면 더 그럴수 밖에 없다. 내 입장에선 희준의 선택이 바보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희준에 있어서는 그 선택이 불가피했을 수도 있다. 만약 그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동요 제목이기도 한 두번째 작품 <섬집 아기>는 공포물이다. 사실 섬집아기란 노래는 참 좋은 노래인데, 공포영화에 자주 사용되면서 공포 동요가 된 불운한 노래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 노래를 들으면 뒷골이 섬뜩해지는 느낌을 받으니 말이다.

이 작품은 어느 한 단란한 중산층 가정에 찾아온 파멸에 대한 이야기이다. 과거의 잘못을 덮어둔 채 갈아가던 한 남자에게 드디어 참회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근데 좀 마음에 안드는 점은 잘못은 남자가 했는데 왜 가족이 희생되어야 하는 거냐는 거다. 그리고 좀 구식이었어, 이야기가. 

<레몬>은 여기 실린 다섯편의 단편중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썩 내 취향이란 건 아니다. 우연도 이렇게 너무 많이 겹치만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는 것에 불과하단 걸 보여줄 뿐이니까. 사람이란 언제든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열렬했던 사랑도 언제든 끝나버릴 수 있다. 하지만 때로는 과거가 너무 선명해서 도통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서도 <카시오페아 공주>처럼 과거에 매달리고 있는 진이란 여자가 등장하지만, 그녀는 희준과는 달리 과거를 정리하기로 한다. 이 두 작품이 비교가 되어 재미있기도 했는데, 조금 다른 점이라면 희준의 아내는 타살, 진이의 남자친구는 사고사였다는 점이다. 둘 중 어떤 죽음이 과거에서 해방되기 쉽다는 말은 쉽게 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떨쳐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래서 진이의 선택에 손을 들어주고 싶었다.

또 다른 공포물인 <좋은 사람>역시 스토리가 구식이다. 과거의 나쁜 기억때문에 악몽이 시달리던 현주는 선을 봤다가 또다른 악몽과 마주한다. 이상하게 집착을 보이는 그 남자, 그리고 스토킹하듯 배달되는 선물들. 현주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지만 통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같은 직장을 다니는 선배 집으로 피산하지만 잠시 외출했다가 현주는 괴한에 의해 납치되고 만다. 그곳에서 현주가 맞닥뜨린 진실은....

좋은 사람의 기준은 무엇일까. 사람이란 건 자신을 기막히게 잘 숨기는 존재이기 때문에 겉모습만으로는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절대 구별이 안된다. 이 작품에도 그런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난 이 범인의 동기가 이해가 안된다. 도대체가 그런 이유로 그런 품이 드는 일을 저지르나? 납득이 잘 안된다. 하긴 내가 범인의 심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되긴 하지만 말이지. 게다가 여기에 로맨스까지 추가하니, 변태적인 범인 + 과거와의 연결점 + 로맨스라는 공포물의 흔하디 흔한 법칙과 연결된 그런 밍밍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마지막 수록작인 <중독자의 키스>는 정말 싫었다. 이런 신파는 정말 물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이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야지. 그게 비록 상처투성이에 구멍난 삶이라도 말이지. 사람은 태어난 이상 치열하게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단 말이다. 그래서 난 여기에 등장하는 남자가 정말 싫었다. 죽음을 사랑한 남자, 그 남자가 간직해온 사랑이 어떻든 간에 난 인정못한다. 그리고 그 사랑에 감동한 여자도 이해가 안되고, 스토킹하듯 그녀의 집을 바라보던 남자도 이해안된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도저히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될달까. 겉으로만 그럴듯하게 예쁜 포장을 한 이야기에 신물난다. 

여기에 수록된 이야기들을 보면 사랑을 다룬 로맨스와 호러, 그리고 호러와 로맨스의 짬뽕 세가지 이야기로 나누어볼 수 있다. 그리고 공통적인 것은 과거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들 중에는 과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개는 과거를 버리지 못한채 끌어안고 살아간다. 과거에 매달린 나머지 현재를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로맨스는 신파, 호러는 구닥다리. '헐, 레알, 님 좀 짱인듯' 등의 인터넷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내용은 올드, 아주 올드했다. 이런 기묘함이란. 헐~

판타지, 호러, 로맨스 등등의 장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의도는 좋았으나, 내용물은 기대에 못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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