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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라이딩 후드
사라 블라클리 카트라이트 지음, 나선숙 옮김 / 황금가지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빨간 두건(혹은 빨간 모자) 이야기는 어린 시절 그림 동화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몇 년전에는 빨간 모자의 진실이라고 해서 이 이야기를 패러디한 애니메이션도 있는데, 실제로 빨간 두건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변형을 거쳐온 민화이다. 동화책에서는 빨간 두건과 할머니를 공격한 것이 늑대이지만,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에서는 늑대가 아닌 오거나 늑대인간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누가 기록한 이야기냐에 따라 세부적인 내용이나 결말이 달라지기도 한다. 페로의 경우 빨간 두건이 늑대에게 잡아 먹힌다는 비극으로 끝을 냈고, 그림 형제의 이야기는 늑대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빨간 두건 이야기를 기본 얼개로 하고 있지만 내용은 상당히 많이 각색되어 있다. 각색이라기 보다는 이것저것 많이 덧붙였다고나 할까. 제목만 해도 빨간 두건의 원제는 Little Red Riding Hood인데, 여기에서는 Little이 빠진 그냥 Red Riding Hood이다. 그건 아마 주인공의 나이가 동화에 나오는 빨간 두건보다 많기 때문일 것이다.
숲속에 위치한 대거혼 마을. 이곳은 다른 마을과의 교류가 거의 없는 조금은 폐쇄적인 마을로 무시무시한 비밀을 안고 살아가는 마을이다. 그 비밀은 매달 보름달이 뜰 때 늑대가 나타난다는 것.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마을 사람이 공격당하기 때문에 매달 제물을 바치면서 불안한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런 불안한 평화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붉은 달이 뜬 밤, 늑대가 나타나 발레리의 언니 루시를 살해했다. 그리고 마을은 혼란과 공포에 물들어 가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늑대를 잡기 위해 늑대의 소굴로 향한다. 그 사람들 중에는 발레리의 아버지며, 발레리의 약혼자 헨리, 발레리가 어린 시절부터 좋아한 피터 등이 있었다. 늑대 한 마리를 잡은 마을 사람들은 비록 한 사람의 희생자가 있었지만 늑대에 대한 두려움은 끝났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 평화에 불과했으니...
빨간 두건 이야기에서 늑대를 죽이고 빨간 두건과 할머니를 구하는 건 사냥꾼의 몫이다. 이 작품에서 늑대를 잡으러 오는 것은 솔로몬 신부란 인물이다. 솔로몬 신부는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의 잡은 건 진정한 늑대가 아니라고 한다. 진정한 늑대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늑대인간이란 것이다.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공포를 조장한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이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것은 가족이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간에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정체가 불분명한 존재에 대한 공포가 인간들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에 있었다. 가족, 연인, 그 누구가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끝없는 의심을 낳게 하고 결국 서로에게 칼을 겨누게 하니까. 또한 솔로몬 신부의 늑대인간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만든 집착은 점점 부풀어가면서 무의미한 희생을 낸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고 했건만, 솔로몬 신부의 행동은 일종의 마녀사냥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이런 말 하기가 좀 그렇지만, 이런 미친 X. 뭐 이런 생각을 하기도.
솔직히 말해서 로맨스 부분은 별 거 없었다. 딱히 끌리지도 않았고 공감도 안되었달까. 난 그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어둠이 힘을 받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가 더 흥미로웠다. 결국 누가 늑대인간인가 아닌가 하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늑대인간이란 것이 등장하긴 하지만, 자신의 어둠에 마음을 먹힌 솔로몬 신부나 공포때문에 타인에 대한 의심이 만연한 마을 사람들 자체가 늑대인간이 되어 버린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뭐, 그렇게 보자면 솔로몬 신부의 '늑대인간은 당신들 중에 있다'는 표현이 영 틀린 건 아니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마지막에 발레리를 마녀로 몰아가던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나서서 발레리를 보호하는 걸 보고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갑자기 이야기가 왜 그리로 건너뛰는지. 어떻게 보면 전체적인 구성이 참 허술한 책이었달까. 번역도 좀 별로였고.
소설 레드 라이딩 후드 책에는 결말이 없다. 그래서 블랙 로맨스 클럽 카페에서 결말을 확인했는데, 이야기는 또다시 동화 빨간 두건 이야기의 이야기로 돌아간다. 이번에는 진짜 사냥꾼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리고. 늑대의 처분은 동화 내용과 같았다. 상세 내용은 말하기 그렇지만 결말은... 동화를 성인용 판타지로 각색한 결말이었다. (표현이 너무 무자비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