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녀자 취급설명서
고토 부키야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11년 2월
평점 :
품절


부녀자(腐女子). 한자를 풀이하면 썩을 부, 계집 녀, 아들 자로 썩은 여자라는 단순한 의미를 도출해 내기 쉽지만 후죠시라는 일본어 신조어로는 여자 오타쿠를 뜻하는 말이예요. 이제껏 오타쿠는 미소녀 게임, 미소녀 애니, 미소녀 피규어를 사랑하는 남자들을 일컫는 말이었지요.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오타쿠가 존재합니다. 철도 마니아라든지.. 뭐) 부녀자의 경우 원래는 남자 동성애물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으나 이제는 여자 오타쿠를 통칭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오타쿠라고 하면, 그리고 남자 동성애물을 그린 BL이나 야오이를 좋아한다고 하면 일단은 편견을 가진 눈으로 상대를 보게 되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저도 밖에 나가서는 동인녀라든지 부녀자라든지 이런 말은 안씁니다. 어차피 공유하지도 못하는 사람들과는 이야기조차 안되니까요.

그렇지만 블로그 활동을 통해 BL 만화나 노벨, 게임, 드라마 CD에 대한 감상을 적고 공개함으로써 예기치않게 나의 그런 기사를 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단 그런 경우에 대비해 BL물이란 걸 강조해 놓는 편입니다. 취향이 아니면 보지 말라고. (모든 블로그에는 적용을 못하고 개인 블로그에만 그런 말을 덧붙여 두었지요) 어쨌거나, 순수하게 즐기는 취미로서의 존중이 아니라 변태나 퀴어 취급을 받는 게 싫어서 그렇겠죠. 그런데 다행히 요즘은 개인성향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 것에 태클을 거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물론 회원이 아니면 덧글을 못달도록 하거나, 후승인을 받도록 해둔 장치도 있지만요.

제가 처음으로 BL을 접한건 5년전쯤 될겁니다. 경력으로 따지면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죠. 처음에 봤던 건 소프트 BL물로 스기우라 시호의『얼음요괴 이야기』였어요. 그때도 별 이상한 느낌없이 재미있다고만 느꼈는데, 어쩌면 난 나도 모르게 부녀자가 될 소질을 갖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후로 불이 붙기 시작한 건, 시미즈 유키의 러브 모드 원서를 읽게 되면서였다. 이 책은 원래 제 여동생의 책인데 말이죠 - 이녀석도 부녀자 소질이 있었습니다 -  읽기 시작하자 마자 푹 빠졌죠. 시미즈 유키의 책은 생각외로 수위가 좀 됩니다. 두번째로 접한 게 약간 수위가 높은 작품 부녀자들 말로 모에했죠. 그후로는 BL애니, 만화, 동인지, 게임 등을 두루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마구 보고 싶어지다가 싫증내다가를 반복하면서 여전히 부녀자로 살고 있는 접니다. 그런 제가『부녀자 취급 설명서』라는 책에 눈길이 간 건 당연하겠죠. 읽으면서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아, 나도 그런 망상을 해 본적이 있어라든지 난 이런 소재나 캐릭터에 끌려라든지, 공감할 이야기가 한가득 있었죠. 책 내용은 직접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궁금하시면 직접 책을 보시면 됩니다. 그대신 제 이야기를 좀 들려드리죠. 아, 궁금하지 않으시다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무슨 자신감!)(긁적긁적)


 

이건 책 표지입니다. 부녀자의 망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그림인데요. 전 저 부녀자와는 좀 다른 망상을 펼쳤습니다. 전 미소년으로 태어나기 보다는 미청년 혹은 꽃중년으로 태어나 미소년들을 사랑해주고 살고 싶다는 거죠. 물론 망상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으니까. 일종의 제 판타지랍니다.

이렇듯 일상에서도 가끔 망상을 즐기긴 하지만 역시 상대가 있어야 재미있죠. 저와 비슷한 취향을 가진 동생과의 이야기를 잠시 옮겨 보겠습니다.

사례 1> 성우 오덕질 1
이번에 나온 CD 들어봤어? (여기서 말하는 건 BL 드라마 CD입니다. 물론 일본판입니다) 로 시작하는 대화는 곧 성우 이야기로 이어지죠. 오노디가 어쩌구 저쩌구, 미도링이 어쩌구 저쩌구, 스즈켄… 노지켄… 이토켄… 토리밍…카밍… 모리링… 미야켄… 윳찌… 다이사쿠 … 사쿠뽕…(모두 성우 애칭입니다) 등 일반인들이 들으면 암호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누가 우케였고, 누가 세메였고, 누군 쿨뷰티고, 누군 여왕수, 누군 연하공, 누군 중년수, 누군 귀축 메가네, 츤데레, 헤타레, 데레데레... 등등등(여기에 나오는 용어는 캐릭터 성격입니다) 그리고 새로 나온 애니 성우진은? 이라든지, 새로 나온 캐릭터송은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성우 오덕질을 즐깁니다. 이건 직접 만나서 대화할 때 가능하지요.

사례 2> 성우 오덕질 2
띠리리리링(전화왔숑) ☎ (친한 여동생의 전화입니다) 언니, 들었어요? 요번에 성우 이벵한다는 거. 어? 정말? 누가 와? 미도링이랑.. 등등등.. 글쿤. 근데 미도링은 별로 안땡긴다. 오노D가 와주면 갈텐데, 왜 안오는 거야? 그래도 언니, 이 성우들이 소속된 소속사엔 노지켄도 있어요. 오, 노지켄 좋다. 근데 역시 미도링은... (실제 전화이야깁니다)

사례 3> 웹게임을 하며 만난 일본 친구들과의 채팅
부녀자들이 모이면 망상 폭주 사태가 벌어집니다. 제가 즐겨했던 웹게임에서 만난 일본 친구들 중 귀축안경이란 BL게임을 함께 즐긴 친구들과 망상 수다를 떨지요. 물론 이럴 경우 공개 채팅이 아니라 비밀 채팅방에서 만나든지 아니면 친구끼리만 볼 수 있도록 하지요. 이런 건 우리가 망상하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부녀자가 아닌 사람을 위한 배려라고 보면 됩니다. 제가 즐겨했던 웹게임은 가상의 남친을 만드는 게임으로 남자들이 즐기는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과 비슷한 게임입니다. 이 가상의 남자친구들은 부녀자들에게 있어 좋은 소재가 됩니다. 학생 회장과 센세 커플링, 센세와 남동생 커플링 등 망상 수다를 떨다 보면 시간 가는줄을 몰랐죠. 특히 센세의 학창 시절을 상상하며 수영부였다든지, 스모부였다든지 부녀자스러운 망상을 하지요. 좀더 덧붙이자면 쿄다이동도 만들기도 하지만... 그러면서 덧붙입니다. 모에! 변태같다구요? 그저 상상일 뿐 입니다. 다른 사람에겐 피해를 주지 않아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망상입니다. 모두 2차원적 망상 판타지이지요.

그래요. 전 부녀자입니다. 하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녀자이지요. BL관련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도 하지만 제 정체는 제 닉넴과 게임 캐릭터의 얼굴로 감춰져 있죠. 밖에 나갈 땐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다닙니다. 뭐랄까,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한달까요. 굳이 드러낼 필요가 없으니 드러내지 않지만 마음이 통하는 친구와는 암호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수다를 떱니다. 먼저 혹시 동인녀?라는 질문도 하지 않고, 일반인을 동인녀로 끌어들일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저 혼자 즐기거나 마음맞는 친구들과 즐길 뿐.

그런데도 우리같은 부녀자를 변태취급하거나 머리 텅빈 여자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이런 방법을 쓰지요. 제가 여러분에게 보일 수 있는 모습은 블로그 한정이니까, 다양한 책을 읽음으로써 부녀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없애고자 하는 노력을 합니다. 무턱대고 부녀자를 색안경 낀 눈으로 보지 마세요, 이런 항의는 할 생각도 없어요. 그저 BL을 좋아하고 판타지를 좋아하며 망상을 즐기긴 해도 평범한 사람이란 걸 말하고 싶은 생각이지요. 물론 저의 다른 모습을 모르고 그저 남자동성애물을 즐기는 이상한 여자라 취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의 자유니까 저로서는 할 말이 없습니다.

이해해달란 말은 안합니다. 나도 어쩌면 그쪽이 숨기고 있는 취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다만 그 사람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블로그에서 보이는 약간의 모습만 보고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은 안가졌으면 좋겠어요. 부녀자의 올바른 취급 방법은 바로 그런 게 아닐까요.

이 책은 부녀자들의 다양한 생태에 대한 책이고 부녀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마이너한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속 망상과 애환에 관한 내용이지요. 그런 면에서 저도 공감을 많이 했답니다. 일본은 아무래도 우리나라 보다 이런 면에서 좀더 자율적이라 좀 부럽기도 합니다. 특히 코미케가 젤로 부러워요. 우리나라의 경우 동인녀들은 꽁꽁 숨어서 활동을 하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언젠가 이 또한 하나의 문화로서 받아 들여질 날이 오길 바라봅니다. 

 

사진 출처 :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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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03-31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저도 부녀자! 그렇습니다*^^* 책꽂이에 잘보이게 러브모드 애장판이 있구요~ 러쉬노벨책들이랑 '인간의증명'이 나란히 있습니다~
구찮아서 절대 표지제목-귀축안경,광견의 사랑하는 법등등'을 감싸지 않아요~ 가끔 집에 온 친척 남자들이 깜놀이랍니다ㅋㅋ;

스즈야 2011-03-31 23:44   좋아요 0 | URL
오오. 그러시군요. 여기에서 동지를 만나다니, 반갑습니다.

음.. 전 뭐 혼자 살아서 그냥 BL책꽂이가 따로 있어요. 책장 하나를 가볍게 넘는 수량이랄까요. 만화책이 몇백권은 되는데 그 중에서 반이상이 BL일지도?? 그리고 핸드폰 화면이 귀축안경 화면이예요. 알게 모르게 부녀자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딱히 밖에 나가서 티는 안내는데 안보이는 곳에 틀림없이 부녀자 관련 물품이 있는 1人입니다.. ^^;

2011-04-10 1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