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 기담문학 고딕총서 9
앰브로스 비어스 지음, 정진영 옮김 / 생각의나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앰브로스 비어스란 작가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뭉크의 절규가 앞표지를 장식하고 있는『악마의 사전』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아직 읽지는 않고(집에 잘 모셔두고 있다) 이 책부터 읽었다. 책 페이지 수가 250페여 페이지에 17편의 단편이 실려 있어서 쉬엄쉬엄 읽다가 이제서야 다 읽게 되었는데, 여기에 수록된 작품들은, 뭐랄까, 참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표제작이자 첫번째 작품인 <아울크리크 다리에서 생긴 일>은 미국의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남부에 살고 있는 한 남자가 처형당하는 상황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이 남자는 군인은 아니다. 우연히 만난 북군병사에게 속아 저질렀던 일이 그의 목을 조이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운좋게도 교수형에 처해지는 순간 밧줄이 끊어지고 이 남자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다시 맛본 자유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잠시. 무시무시한 현실이 반전처럼 기다리고 있었으니. 다른 작품을 읽으면서도 그랬지만 앰브로스 비어스는 마지막 순간의 반전을 기가 막히게 그려낸다. 남북전쟁을 다룬 또다른 작품인 <말 탄 자, 허공에 있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반전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대로 행동하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고지식하게 옮긴 한 젊은이의 모습은 쓴 웃음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래서 냉소적 위트의 작가란 별칭이 붙었나.

<개기름>은 잘못된 판단이 불러온 가족의 파멸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너무나도 순식간에 무너지고 붕괴되는 한 가정의 모습이 소름끼치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여기에 수록된 작품 중에는 가족의 붕괴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 많은데, <덩굴>, <메커저 협곡의 비밀>, <내가 좋아하는 살인>, <오른발 가운뎃 발가락> 등은 가족을 살해한 사람이 등장한다. 이 작품 중 <내가 좋아하는 살인>을 제외한 작품들에는 죽은 자들이 산자에게 보내는 메세지가 등장한다. 시체 모양으로 얽힌 뿌리, 집이 보여준 환상, 죽은 자 앞에 남겨진 발자국 등이 바로 그 메세지라고 할 수 있다. 

<헬핀 프레이저의 죽음>은 가장 섬뜩하고 가장 강렬한 반전이 있는 작품이다. 이렇게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테지만, 어쨌거나, 이 작품은 환생이란 것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하지만 그 환생이 무시무시한 악연의 윤회였다니. 이런 신비주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으로는 예지몽을 소재로 한 <심리적인 난파>도 있다.  

<시체를 지키는 사람>과 <인간과 뱀>은 인간의 두려움에서 파생된 착각이 불러온 무서운 결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시체를 지키던 사람이 진짜 시체가 되고, 가짜 뱀에 홀려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의 감각과 지각이 서로 충돌할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가 나올지, 또 인간은 정신적으로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느끼게 된다.

이외의 작품으로는 개척민의 고단한 삶이 가져온 비극을 그린 작품도 있고, 자신이 죽은지도 모르고 오랫동안 이승을 방황하는 남자의 이야기도 있고, 살인기계가 등장하는 조금은 SF적인 느낌이 나는 이야기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괴물에 죽임을 당하는 남자의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의 이야기들이 있다.

앰브로스 비어스의 소설은 장르상 호러라고는 하지만 눈에 보이는 유령이 등장하는 작품은 거의 없다. 오히려 인간이 인간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이 많으며, 남북전쟁이나 개척민의 이야기 등 당시 시대상황과 결부된 비극적인 이야기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짧지만 강렬한 반전의 결말을 제시해서 소름이 쫙 끼치게 만드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지만, 때론 어이없는 웃음이나 쓴 웃음이 나오게 하는 작품들도 있었다.

크툴루 신화를 바탕으로 한 공포소설을 써낸 러브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당대에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비운의 작가이자, 그의 작품만큼이나 수수께끼같은 삶을 살다간 앰브로스 비어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표현되는 인간의 광기와 인간 내부의 공포는 시대를 초월한다. 결국 인간이란 겉모습만이 변했을 뿐,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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