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속삭임 - 합본개정판
기시 유스케 지음, 권남희 옮김 / 창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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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신을 지구의 주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를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미숙하고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현재 지구에 몇종의 생물이 얼마나 많이 분포하고 있는지도 모르며, 그들의 생태도 모르는 부분이 더 많다.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을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미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은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일컬었고 지구를 정복했다는 믿음을 가지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인간은 감기 바이러스조차도 정복하지 못했다.

『천사의 속삭임』은 아마존 원정대에 다녀온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상한 방법으로 자살하는 사건에 감춰진 커다란 비밀과 그것이 가진 끔찍한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곳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을 직접 저지르게 된 것일까. 정신과 의사 기타지마 사나에의 연인이자 작가인 다카나시는 병적일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아마존 원정대에 다녀온 이후 그는 사람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이상한 변화를 보인다. 식욕의 증가, 성적 욕구의 증가를 비롯해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던 죽음에 대해 찬미하고 매료된 듯한 태도를 보이다 자살하고 만다. 그는 죽기전에 천사의 날개짓 소리가 들린다는 이해하기 힘든 말을 남겼다. 도대체 그것은 무슨 뜻일까.

그외에도 고양이과 동물을 두려워하던 한 남자는 사파리 파크안에서 호랑이에게 스스로 다가가 물려 죽고, 영유아 돌연사망증후군으로 아들을 잃은 한 여성은 자신의 딸과 함께 지하철로 뛰어들어 동반자살을 하고 만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비극의 서막에 불과했다. 탐험대 조사원 다섯명 중 세명은 사망, 두명은 실종. 그러나 실종된 듯 보였던 두 사람은 <가이아의 자식들>이란 웹사이트를 만들고 회원을 모집한다. 그곳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의 상처를 이야기하면서 치유를 해나가는 듯 보이지만, 그들 역시 이상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나 둘 씩 기묘한 자살 방법으로 - 그들의 가장 두려워한 것들에 의한 - 죽어 간다. 사나에는 다카나시의 죽음을 조사하면서 알게 된 요다와 함께 그 사건들과 관련된 비밀을 파헤쳐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들은 경악할 만한 단서를 잡게 된다.  

천사의 날개짓 소리, 천사가 속삭이는 소리 등 어떻게 보면 오컬트적인 요소가 있지 않을까 싶은 작품이었지만, 이 작품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호러다.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인간들에게 내려진 것은 단순히 그곳 원주민들이 이야기하는 저주가 아니었다. 물론 그들은 그 일에 대한 과학적인 해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저주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원인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영화 <아웃브레이크> 등에 등장하는 신종 바이러스는 인류를 죽음의 공포로 몰고 간다. 예전 같으면 인간의 행동반경이 아주 협소했기 때문에 번지지 않았을 질병도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짐에 따라 급속도로 퍼지게 되는 것이다. 몇년 전 크게 유행했던 사스 역시 마찬가지이고, 신종플루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금 다르지만 구제역 역시 인간의 행동반경이 넓어짐으로 인해 퍼지게 된 질병인 것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존재의 습격으로 인간이 죽어간다는 것, 그것은 커다란 공포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미개하다고만 생각한 그 존재가 실은 아주 조직적으로 인간을 공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커다란 공포이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것이 낫지, 눈에 보이지도 않으면서 인간을 잠식해간다는 것은 두려운 일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공포를 쾌락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그 작은 존재. 그것이 인간을 파멸로 죽음으로 몰고 간다. 하지만 그 존재가 인간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번식 프로그램을 위한 행위일 뿐이다. 그래서 더 끔찍하다. 인간을 살아 있는 배양기로 삼은 그 존재들. 특히나 끔찍했던 장면은 연수원의 공동 목욕탕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죽은 사람들을 묘사한 부분이 아닌가 싶다. 비위가 강해 웬만한 장면에서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내가 그 장면에선 욕지기가 치밀어 오를 정도였다. 그 장면 자체가 끔찍해서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그 존재 자체가 끔찍해서이다. 그런게 온몸을 잠식하고 다른 숙주가 다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이 작품은 의학, 생물학 등 과학적인 부분을 비롯해, 신화와 전설, 컴퓨터 게임과 오타쿠, 환경오염, 바둑이나 장기같은 취미생활 등 다양한 소재를 바탕으로 씌어졌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취재를 했으며 얼마나 많은 관련 서적을 읽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한 혈액보관 시스템의 관리 소홀로 인한 에이즈 2차 감염 문제를 비롯해 후생성에 대한 비판과 언론에 대한 비판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종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한 호러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이제껏 발을 들여 놓지 않았던 그곳에는 무엇이 존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섣불리 발을 디디고 정복했다고 믿지만, 역으로 인간이 다른 생명들에게 정복당할 수도 있다. 인간은 너무나도 약한 존재이다. 도구와 장치로 자신을 부풀려 놓았지만 맨몸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자연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 봐야 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미지의 것들이 인간 세상을 잠식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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