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공포에 관한 11가지 짧은 이야기
앰브로스 비어스 외 지음, 오경희 옮김 / 글읽는세상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공포문학을 좋아하면서도 이제서야 발견하게 된『괴담 - 공포에 관한 11가지 짧은 이야기』는 엠브로스 비어스의 작품이 실려 있는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책이다. 이 책이 처음 나온 것은 11년전. 그때는 다른 장르의 책들을 읽느라 공포장르에서 손을 뗀 시기였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는 종종 보곤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이라도 만나게 되어 무척 반갑다.

목차를 살펴 보니 사실 엠브로스 비어스 외에는 아는 이름의 작가가 한 명도 없다. 그렇다 보니 좀 걱정되기도 했는데, 첫 작품을 읽으면서 그런 걱정은 깡그리 날아가 버렸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폐광산에서 노다지를 캔 기분이랄까.

이 책에는 총 11명의 작가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것은 또다시 세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는데, 첫 카테고리는 '미지의 존재'와 관련된 것이다. 마리오 조르다노의 <지하의 집>은 뱀파이어, 아데라이데 네레프의 <늑대인간의 냅킨>은 제목 그대로 늑대인간이 등장한다. 귄터 잘만의<은을 자아내는 거미>는 구전으로 내려오는 이야기와 관련한 것이다. <지하의 집>의 경우 과학과 논리를 신봉하는 의사가 자신이 인식하고 있던 범위 밖의 세상을 마주했을 때, 그 공포는 어떤 것을 의미할까, 를 생각해 보면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인들은 더이상 전설을 믿지 않는다. 그저 옛이야기로 치부해버린다. 하지만 그것이 여전히 현실 속에 존재한다면, 그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실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믿지 않았던 것이 현실로 존재하는 것이 주는 공포만큼 가장 큰 공포는 없을 것이다. 

<늑대인간의 냅킨>은 저주란 것이 기본으로 깔려 있다. 보통 늑대인간이라고 하면 늑대인간에게 물렸을 때 늑대인간이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 작품은 늑대의 저주가 그 시작이었다. 가련한 동물을 재미로 학대하고 죽이던 조상의 업이랄까. 어쨌거나 이 냅킨이란 것이 이 작품에서 아주 흥미로운 포인트다. <은을 자아내는 거미>는 구전되어 내려오는 일종의 전설같은 것이다. 그 전설이 실제였다면? 구원을 기다리는 이들과 그 구원의 실마리가 되는 아이. 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두번째 카테고리인 '혼돈이 낳은 기이한 아이들'에 속하는 작품은 총 네작품이다. 헨키 헨첼의 <메피스토펠레스의 오류 수정>은 SF적인 공포물이다. 인공지능 컴퓨터 메피스토텔레스. 사실 나의 경우 컴퓨터를 인간에 가깝게 만든다는 것 자체가 공포다. 기계는 기계로만 존재하면 된다는 입장이랄까. 그것이 뒤집어질 경우, 그 끝은 파멸뿐이다. 헤닝 파벨의 <완성하라!>는 매일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한 남자의 이야기인데, 그 꿈의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된 후, 무릎을 치며 감탄했던 작품이다. <개와 바다>는 조난당해 바다를 표류하는 한 남자와 한마리의 개의 이야기로, 남자의 이기심에 분노하다가 마지막 부분의 인간의 착각에는 쓴웃음이 나와 버린 작품이다. 엠브로스 비어스의 <폐쇄된 창>은 다른 작품집에서도 읽었었는데, 역시나 마지막 문장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세번째 카테고리인 '홀로 남겨진 밤들'은 소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혼자'라는 것이 포인트이다. 원래 무서운 일은 혼자 있을 때 잘 벌어지지 않던가. 한스외르크 마르틴의 <13일의 금요일 밤>은 잠을 이루지 못한 한 아이의 이야기인데, 누군가 곁에 있어도 혼자만 잠들지 못하는 것도 공포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난 무서워서 미칠 지경인데,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만 잔다면? 이 작품 역시 마지막 반전이 압권. 헤닝 클뤼버의 <톰 홀로 집에>는 부모님이 한 집안에 같이 있지만 톰에게만 공포가 찾아온다는 이야기이다. 누군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공포를 혼자 감당해야할 순간,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베레나 C. 하르크센의 <트롬벨리이 피튼 뱀>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으로 인해 고통받는 한 아이의 이야기이다. 고통과 분노를 안고 죽어간 무엇인가가 잠든 아이를 노린다. 클라우스 뫼켈의 <물고기들과 지낸 밤>은 복수를 하는 물고기들의 이야기이다. 보통 물고기는 머리가 나빠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세 잊어버린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물고기가 존재한다면? 그래서 자신들을 괴롭힌 누군가가 혼자 있는 때를 노린다면? 앞으로 낚시는 절대로 못할 것 같다. (지금도 낚시는 하지 않지만...)

전설속의 존재들, 구전으로 전해오는 존재, 인간의 우위에 선 컴퓨터, 악몽속으로 찾아오는 존재들, 혼자 있을 때만 찾아오는 두려운 존재들. 우리는 이것을 혼돈이 만들어낸 환상과 악몽이라고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들이 절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낯선 작가들의 작품으로 이루어진 앤솔로지『괴담』. 이렇게 스토리의 짜임새와 구성이 좋은 책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안타깝다. 낯선 작가들에 대한 조심스러움이 존재하겠지만, 때로는 용기를 내서 선택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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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3 1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이 작품 보관함에 담아둬야 겠습니다~

스즈야 2011-03-14 23:26   좋아요 0 | URL
이 책은 전 참 인상깊게 읽었거든요. 저도 엠브로스 비어스를 검색하지 않았으면 모를뻔 했어요. 교님께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